이 미친 열병을 어쩔꼬?
지난 달 전국 문화인들이 <우리 모두가 블랙리스트 예술가다!>란 시국 선언을 한 다음날인 11.5 광화문 집회에 상경하여 뜻을 같이하는 여러 동지들과 함께 촛불로 밤을 지샜다.
그날로부터 제대로 불붙기 시작한 촛불이 전국으로 번져 100만을 넘고 200만을 넘더니 초유의 232만이라는 기록까지 세워 내일로 다가온 올해 마지막 집회까지는 연인원 총 1,000만을 넘길 거라 예견하고 있다.
거대하다는 말 정도로는 표현하기 민망한 무섭고도 엄중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이걸 가능케 하는 동력은 정권 부패의 심각성이라기보다 내 권리에 대한 강한 자각 때문이라는 나의 판단이다.
제 졸시 중 하나를 붙여보자면
틔눈
- 티눈
발바닥 굳은살이
살 속으로 파고들어
도저히 걸을 수 없게 되고서야
알았네
내 밑바닥에 잠자고 있던
없는 듯이 감겨있던
이미 퇴화한 걸로 착각했던
바닥의 눈에
핏대가 서서
틔눈 하게 되면
얼마나 무서운지를
(준비중인 시집 『걸레』에 실릴 예정)
드디어 국민들이 '틔눈'하게 된 거다.
'틔눈'으로 인한 희열, 즉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강하게 작용한 결과랄 수 있다.
2002년에 맛보았던 광장 문화의 희열을 또 만끽하고 있는 셈이다.
나는 이 경이로움을 확인하고자 서울, 부산, 울산을 미친 듯이 돌아다녔다.
주야 교대가 연이어지는 경비원이라는 제 직업상 시간 내기 그리 쉽잖지만 주말만 되면 여길 못 나가 안달복달한다.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이리 심장 쿵쾅거리고 뜨겁게 달까?
지난주엔 광화문 성탄 미사를 사탕으로 내걸고 아내(천주교 신자인 아내는 광장에 열광하는 나를 미친이 정도로 여긴다)를 설득하여 함께 서울행 기차표까지 끊었으나 갑자기 전달된 집안 어른의 변고 통문에 표를 반납해야 했다.
일찍이 썼던 제 졸시 중 이런 시가 있다.
사철 늘푸른
솔이고 싶어도
벌린 팔 사이 파고드는
소슬 홑 바람에
반한 걸 어쩔거나
봄 내 널린
꽃 사이 피어 살고 싶어도
꽃 다 진 벌판에
홀로 피어 나부끼는 도린곁살이
좋은 걸 어쩔거나
가슴팍 찌르고 가는
냉랭한 시선에 흐느껴 울어도
길게 목 빼고 기다리는 짝사랑에
이 몸 이렇게 다는 걸
난들 어쩌나
(코스모스 연가/ 시집 『내 속에 너를 가두고』)
이 미친 짝사랑 때문에
남들은 해맞이 관광을 떠난다 난리 굿들이지만 나는 다시 차가운 광화문광장 행 기차표를 예매해 놓고서 밤 근무에 들어와 뜨거운 눈으로 지샐 결심이다.
이 몸 이렇게 다는 걸
난들 어쩌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