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우연히 만났다.
인터넷 검색 중 정말 우연히 발견한, 까맣게 잊고 있었던 12년 전 그 날의
말!
시민들의 정치 참여가 봇물처럼 일었던,
그 작은 힘들이 모여 당당히 대통령까지 만들어 놓았던,
그러나 시작하자마자 기득권 세력의 저항에 부딪혀 탄핵으로 내몰렸던,
그래서 다시 들불이 되어 시뻘겋게 일어서야만 했던,
그 힘 힘들이 기어이 역사의 바퀴를 되돌리게 만들었던,
참 거룩한 경험이었다.
(정반대의 상황이긴 하지만, 또 다시 우린 그 거룩한 경험의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 조직의 제목은 《국민의 힘》이었다.
나는 '힘'이란 말에 묘한 매력을 느끼긴 했으나 이 조직을 누가 만들었는지? 누가 대장인지? 누가 뒤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등은 알려고도 알 필요도 없었다.
여태 살아온 내 인생의 불명확했던 목표의식과 표리부동에 가까웠던 이념과 가치관을 정립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였다.
공자께선 서른의 나이를 이립(而立)이라 하였거늘 나는 마흔 후반에 들어서야 이립을 꿈꾸기 시작한 거다.
그 때가 '시인'으로 살겠다 마음먹은 지 갓 몇 해가 안 된, 본격적 시 활동에 열중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소원대로 헌법재판소는 탄핵을 기각하였고, 다소 마음이 홀가분해진 동지들 몇이 뜻을 모아 광주로 5.18묘역 순례를 떠나게 되었다.
캄캄한 그 시대를 고스란히 밟고 지나온 나로선 참으로 아픈 현장이었다.
5.18이 발생하기 전, 부하 김재규(정보부장)가 그의 보스 박정희(대통령)를 살해한 10.26과, 전두환 노태우 일행이 상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계엄사령관)을 체포 구금한 12.12 하극상, 그들 신군부에 의하여 자행된 5.18 광주시민 학살에 이르기까지의 긴박한 시대를 오롯이 총검을 거머쥔 군홧발로 지내야했던 나로썬 참으로 곤혹한 현장일 수밖에 없었다.
그 현장, 아마 구 묘역의 어느 비석 앞이 아니었나 싶다. 어떤 아가씨(학생이었음을 이제야 알겠다)가 다가와 자신은 기자라며 인터뷰에 응해줄 수 있냐고 묻길래 그녀가 내민 녹음기 앞에 두서 없이 몇 말 지껄였던 거 같다. 그리고 다음 일정에 쫓겨 총총 자리를 떠났었는데
까맣게 잊고 지냈던 그 때의 말을 12년이 훌쩍 지나 인터넷 지면을 통해 발견하게 되다니
감개무량까지는 아닐지라도 옛 애인을 만난 듯 기분이 묘하다.
인터뷰 내용은 지면 5페이지에 들어 있다.
위로는 김남주 시인의 시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라'는 시의 일부가 실려있고,
그 아래 <5·18은 죽은 역사가 아닌 현재 진행형>이라는 제목의 기사 중에
// 구묘역에서 눈시울을 붉히며 참배를 하고 있던 울산에 사는 정소슬(48세)씨는 자신을 시인이라고 밝혔다. 정 시인은 "그 때 당시 총, 칼에 맞서 싸우며 가신 분들은 가셨지만 오늘날과 같이 민주화가 되기까지 그들의 죽음은 헛된 것이 아니다"고 굳게 말하며 "5.18정신이 국민화합의 밑거름이 되어 월드컵과 촛불집회의 단결력을 보여 줬다. 이 여세를 몰아 우리는 통일을 완성시켜야 한다"고 전했다. //
라 적혀 있다.
돌이켜보면 그간 결코 잊은 적 없었던, 냉정하기 짝이 없는 그녀에게로의 지독한 연심(戀心)이었던 거 같다.
그럼에도 기꺼이 여기 올릴 수 있는 건 내 연모가 결코 헛되지 않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모쪼록 뜻을 세워 연모하며 살 일이다!
기사 : http://dgac-paper.webpot.co.kr/newspaper/pdf/56c6dde6017d2.pd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