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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슬의 詩내기

이름에 대하여

by 정소슬 posted Apr 1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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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에 대하여

 


[1]


서울의 진란 시인은 내 이름을 보고 여자인 줄 알았다 한다.
그럴 만도 하다. 인터넷 검색엔진에다 '정소슬'을 쳐 넣으면 주로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애들 몇 나오는데 온통 여자 애들이다.


나의 본래 이름은 '정정길'이다.
이 멋대가리 없는 이름도 임자가 많아 현, 울산대학교 총장도 '정정길'이다.
울산에만도 다섯 명이란다.


그래서인가, 문제가 생겼다.
모 문단에 가입 절차를 거쳐 이름을 등재하려 하니 등록이 안 된다는 거다.
같은 이름이 이미 등록되어 있어서란다. 그러면서 새 이름을 지어 보내라 한다.


나는 그날부터 고민에 빠졌다.
언젠가, 몸을 버려 직장도 그만 두고 뭐 할 거 없나 하고 돌아다니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철학관이란 델 들어가게 되었는데 내 이름과 생년월일시를 넣자 이름이 나빠 중년기에 큰 액을 당할 거 같다는 거였다.


나는 짐짓 놀랐다.
서른 여덟이란 젊디젊은 나이에 뇌졸중이란 병마와 마주한 나였기 때문이다.
당시까지도 장애가 남아 한쪽 다리를 절고 다닐 무렵이었다.
그러면서 그 양반 슬쩍 견적부터 내놓는 거였다.
아차, 이거 잘못 왔구나 싶어 당장 나와버렸다.


그런데 이번엔 이미 그 불운하다는 이름조차 앞사람에게 뺏겼으니 새 이름을 지어 오라 한다.
이름짓는 게 그리 쉽던가?
이 이름, 저 이름 생각해 봤으나 마음에 담기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시가 그렇게 떠오르듯 어느 날 갑자기, 불현듯이
새벽 강에 안개가 피어오르듯 내 이름도 그렇게 떠오르리라 생각하면서......


그런데 전화가 왔다.
수화기에서 굴러 나온 어여쁜 목소리는 바로 그 목소리였다.
새 이름을 보내라 하신...


"아, 그거요..."
"네, 준비되었으면 불러 주세요!"
"그러니까... 아- 아직..."
"선생님, 오늘 등록 못하시면 1년을 더 기다려야 해요!"
"1년......?!(1년은 너무 긴 세월이 아닌가? 늦은 나이에 시작한 나로선... )"


때는 막, 온 거리가 술렁대던 연말이었다.
아래층에서 울려 퍼지는 징글벨 소리가 계단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그때 실내 환풍을 위해 빼꼼 열어둔 창 틈으로 한 줄기 바람이 내 콧등에 와 닿았다.
흔히 소슬바람이라 하는 그 상쾌한 바람이었다.
소슬...!


"아가씨! '소슬'로 할래요!"
"호호... 소설이라고요?"
"소설이 아니라 소슬... '소슬바람의 소.슬' 말요!!"


그날 부로 나는 '정소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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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군에 있을 때의 일이다.
그 지긋지긋하던 논산 뻘에서 벗어나 자대(경기도 파주)로 배치 받았건만, 온통 고참뿐인 그곳에서의 생활 또한 나날이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뒤에서 나뭇잎 하나만 와 닿아도 "넷, 이병 정정길!"이라 외쳐야 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내무반 옆자리의 상병 한 분이 여자친구를 소개해달라고 자꾸 들쑤시는 거였다.
그 상병 생긴 꼴이 꼭 족제비 같아서 내 동생 소개해 주기도 뭣하고, 아는 여자들에게 소개해 주려해도 후환이 두려웠다.
그는 끊임없이 압박을 가해왔다.
말이 압박이지 거의 협박이었다.


그러다 내 후배 중에 마땅한 애 하나가 떠올랐다.
이름은 '이경순'이었다.
나는 먼저 경순에게 편지를 썼다.
선배 하나 구하는 셈치고 네가 적당히 갖고 놀다 버리라고...
답이 왔다. 안 그래도 심심하던 차라는 거다.


나는 야호!를 외치며 그 상병 앞에 '경순'의 주소를 상량(上樑)했다.
그 상병, 입이 귀까지 찢어져 나의 호위무사가 되겠다는 맹세를 했다.
그날부터 나의 내무반 생활은 180도로 달라졌다.
상병 중에도 최고 고참이었던 그가 나의 뒤를 봐주고 있었으므로 아랫것들이 감히 나를 집적대지를 못했다.


세월이 흘러 나는 일병이 되었고, 그는 병장이 되어 마지막 휴가인 말년 휴가를 나갔다.
그는 의기양양 내게 윙크까지 하고 나갔지만 반대로 나는 생가슴을 앓아야 했다.
처음 경순에게 적당히 갖고 놀다 버리라 당부했건만 버리기는커녕 하루가 멀다하고 편지를 주고받더니 이번 휴가 때 기필코 사고(?)를 칠 것만 같은 예감이 엄습해오는 거다.


아니나 다를까, 그 상병(병장) 휴가 갔다 돌아오자마자 날 탄약고 뒤로 불러내는 거였다.
안 갈 수도 없고, 가자니 무쟈게 얻어터질 거 같고...
애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마음을 굳게 먹고 탄약고 뒤로 갔다.
그는 생 담배만 연거푸 빨고 있었다.


"김병장님 죄송합니다. 미리 말씀드려야 하는데..."
"얌마 그래도 그렇지, 내 외사촌 동생을 소개해줌 어떡해!"
"외사촌 동생요?"
"그래. 이경순 걔, 내 외사촌 동생이야!"
"언제부터......?"
"언제부터긴... 걔 태어나면서부터지!"


도대체 어찌된 영문일까? 얘기를 하자면 좀 복잡하다.
내가 소개해준 '이경순'은 내 후배가 분명하며 단지, 여자가 아닌 남자다.
그래서 큰 사단이 날 거라는 걸 미리 예감하고 늘 두려워 해왔었다.
그런데 김병장이 만나고 온 '이경순'은 여자로 내 후배 이경순의 회사 동료였다.
그리고 요상스럽게도 그녀는 김병장의 외사촌 동생이었던 것이다.


모든 음모는 후배 '이경순'의 대갈팍에서 나왔고
지휘, 감독, 코치, 주연, 조연을 모두 혼자 소화한 웃지 못할 실화다.
그때 그놈의 "심심하던 차다"란 말을 진즉 새겨들었어야 했다.


(2004. 6. 5)

 

Who's 정소슬

profile

브랜드 : 정소슬
메이커 : 1957년식 울산 産
성능/직업 : 비정규직
취미 : 긁적이기, 똥폼으로 사진 찍기
잡기 : 음치, 몸치, 길치... 등 중증 치과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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