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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슬의 詩내기

​​​​​​​호랑이 담배 피던 마을, 한실 / [반구대 암각화2] 신화 바다 대곡천

by 정소슬 posted Jan 01, 2022

호랑이 담배 피던 마을, 한실

- 제2 제3의 반구대 암각화 발굴을 고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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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망성리에서 고개 하나만 넘으면 한실이다. 거기 왕고모할머니 살고 계셔서 아주 어릴 적부터 아버지 등에 업히거나 손에 이끌려 종종 넘어 다니곤 하였다. 고개 하나라지만 반나절이 더 걸리는 꽤 높고 긴 산길이었다.

할머니 생신이거나 잔치가 있는 날, 먼 산길을 걸어 마을로 내려서면 어김없이 곰방대 톡톡 두들기며 나무 턱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 담배통에서 주섬주섬 뭔가 꺼내 건네시는데 싯누런 엿이었다. 담배 냄새는 이미 호랑이가 다 채가고 없고 달달한 단내만 입안을 채워오곤 하였다.

 

좀 자란 초등학생이 되어 찾아갔을 땐 집은 산자락으로 옮겨져 있었고 마당 앞까지 물이 차 올라 찰랑찰랑 신기하였다. 평생 농사만 지으시던 아재는 그새 어부가 되어 계셨고 잡아온 잉어와 장어로 거나한 밥상을 차려주었다.

한실은 크다는 뜻의 '한' 그대로 꽤 큰 마을이었다. 당시 88가구나 살았다 하고 동네 안에 초등학교 분교가 있을 정도였으니 짐작 가고도 남는다.

 

1962년 1월, 울산이 특정 공업지구로 지정되어 공업용수 확보를 위해 댐(사연댐. 1962년 10월 착공하여 1965년 12월 완공하였음)이 건설되면서 마을 전체가 수몰되고 말았다. 옹기종기 모여 살던 원주민은 대부분 떠나고 12가구가 남았는데 물이 차 오르면서 반이 더 떠나 산 중턱으로 집을 옮긴 6가구만 남게 되었다. 그 중 한 가구가 할머니 집이었던 거다.

 

밤이면 할머니와 아재께선 호랑이 얘길 종종 하셨는데 나물 뜯으러 나갔다가 으흥 하는 소리에 놀라 돌아보았더니 호랑이였다는 할머니 말씀과, 논일 나가다보면 논두렁에 찍힌 큼지막한 발자국을 숱하게 보았다는 아재 얘기는 어린 우리에겐 살아있는 동화책이었다. 그 동화가 조목조목 그려진 바위 책이 거기 어디 있었다는 얘긴 결코 하지 않으셨다. 일부러 숨겼는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수몰의 주범 사연댐으로 소풍을 가게 되었는데 까마득 높게 쌓아진 댐의 바윗돌 틈에서 남폿줄 줍는 일로 우린 정신이 팔렸다. 그걸로 별의별 공작물을 만들 수 있었으니까. 인근에 사는 친구들 중엔 그걸로 호랑이와 고래를 만드는 친구가 있었는데 창의력이 뛰어나서일까, 아니면 그 바위 그림을 미리 보았던 걸까? 나는 호랑이도 고래도 본 적이 없어 그들이 알려주기 전까진 그저 상상 속의 동물이었다.

 

이미 할머니는 돌아가신 지 오래고 아재께서도 요양원으로 떠나셨다는 소문이고 그때 그 친구는 연락할 길이 막막한데, 산업화라는 시대적 명제가 수몰시킨 동화는 언제쯤 수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낼까?

그 날이 온다면 호랑이와 고래가 나란히 앉아 담배를 나눠 피는 모습이라든지, 그들 사이에 태어난 '고랑이'의 그림까지도 보게 될지 모를 일 아니던가, 아니던가, 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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