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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슬의 詩내기

도대체 이 나라는 언제까지...... (임윤의 <디아스포라> 감상평)

by 정소슬 posted Sep 2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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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시 전문지 [사이펀 2016 가을호] 내가 읽은 변방의 시 한편


     디아스포라 / 임윤



꼬리는 무거운 그림자만 남기고 사라집니다

덜컹대는 걸음으로 역사를 지나가는 기차

시베리아 거쳐 우랄 넘어 모스크바에 닿아도

우수리스크역 급수탑의 고드름에는

햇살 몇 가닥 굴절되어 갇혀있습니다

수형 기간 끝나서도 석방되지 못한 빛은

끈질긴 집념이 연분홍으로 익어

봄의 언저리에서 함성을 지르는 들꽃처럼

언젠가는 뭉텅 피어날 겁니다

눈 위에 눈이 쌓여

절개지 단층마냥 잘린 눈벽

선명한 먼지 층은 단절된 시간을 기록한 증거물인가

억압 정책이 남긴 고통의 잔해들

푸칠로프카 평원에 선뜻 발 디딜 수 없어

눈밭에 서성대는 이방인이 됩니다

주인 잃은 어처구니없는 맷돌

모질게 날아드는 눈보라에 얼굴을 지워갈 뿐

눈벽의 창살에 갇히더라도

층층이 선명한 기억은 언제쯤 녹아내릴까요

황무지에라도 죽은 나무를 심고

꽃이 만발할 때까지 물을 주고 싶어도*

분노와 평정 사이의 마음이 애타게 끓어

잿빛구름 뒤덮인 시베리아에서

아직은 봄을 싹틀 줄 모르는 계절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 타르코프스키 영화「희생」에서 빌려옴


- 임윤 시집 『서리꽃은 왜 유리창에 피는가(2015, 푸른사상)』에서




<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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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경북 의성 출생. 2007년 <시평>으로 등단. 시집 『레닌공원이 어둠을 껴입으면(2011, 실천문학사)』, 『서리꽃은 왜 유리창에 피는가(2015, 푸른사상)』.

   


<감상>

전염병처럼 번지던 전 세계적 팽창주의가 언제쯤 멈출 건가,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던 이들의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이른바 '브렉시트(Brexit)'라 불린 영국의 EU 탈퇴 결정으로 온 지구가 공포의 회오리에 휩싸여있다.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던 옛 대영제국(United Kingdom)의 위상은 사라지고 결국엔 우리 한반도 반만 한 크기의 잉글랜드만 남을 것이라는 극단적 분리 축소론까지 일고 있다. 일이 이 지경이 된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타 인종과의 융합을 거부하려는 순혈주의(純血主義)가 밑바닥 짙게 깔려 있는데


결국 피(血)의 문제다. 외부와 섞이길 거부하는 피의 본질이 오롯이 작용한 결과이다. 현 최악의 화약고가 되어 있는 IS 문제 또한 급진적 종교이념을 볼모로 잡은 폐쇄성 피의 논리, 그 더러운 광기가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고 있는 셈인데
이토록 배타적 속성이 강한 피가 서로 섞여 무난히 융합을 이루게 되면 비로써 가족이 되고, 씨족이 되고, 민족 혹은 동족이란 거대 혈연 군집으로 불리게 되는데


그리스어로 '흩어진 사람들(실향민, 유민)'이라는 뜻의 <디아스포라(Diaspora)>,
팔레스타인을 떠나 온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 유대교의 규범과 생활관습을 유지해온 유대인을 지칭해오던 말로서, BC 5세기경부터 유랑이 시작되었다는 세계의 유대인 수는 대략 1,50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는데 2차대전 후인 1948년 팔레스타인 지역에 국가를 선포한 이스라엘로 지금까지 그 반 정도가 유입(귀환)되었고 나머지 반은 아직도 세계 도처에 흩어져 살고 있다 한다.


우리의 유민 역사는 어떠한가?
인접한 중국과 일본으로 스며든 '배달韓족(흔히 조선족)'을 비롯한 유라시아로 흩어져나간 '까레이스키', 멕시코 이주 한인 '에니깡'에 이르기까지 우리 또한 유대인 못지않은 천 만에 달하는 <디아스포라>의 역사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동방의 등불'이라 칭했던 한반도는 예부터 우리 웅비를 막으려는 중원 대륙에 의해 끊임없는 침략과 속국을 강요받으며 토막을 획책 당해왔고, BC 7세기경에 이른 당나라는 한반도 남단 소국에 불과했던 신라에게 '삼국통일'이라는 선물(?)을 안겨주면서 우리 땅의 2/3에 해당하는 북부의 만주와 연해주 일대 광활한 땅을 찬탈해버렸다. 대범한 기개의 영지였던 상반신이 잘려나간 한반도는 그 후 약소국으로의 갖은 수난과 굴욕을 감내해야 했고, 근세에 들어 일본에 국권이 뺏기는 수모까지 겪어야 했는데 이를 회복(해방)시켜준다는 명분을 앞세운 美와 蘇 또한 남은 땅마저 또 반으로 토막내 놓았다. 이것이 치욕스런 우리 민족의 수난사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한반도 디아스포라>의 실체이다.


눈 위에 눈이 쌓여/ 절개지 단층마냥 잘린 눈벽/ 선명한 먼지 층은 단절된 시간을 기록한 증거물인가/ 억압 정책이 남긴 고통의 잔해들/ 푸칠로프카 평원에 선뜻 발 디딜 수 없어/ 눈밭에 서성대는 이방인이 됩니다


우리 한인들이 마을을 이뤄 육성촌(六城村)이라 불리었다는 연해주의 '푸칠로프카' 지역을 여행이 아닌 역사 탐사자의 눈으로 다녀오신 시인,
굴욕의 실체를 확인하면 할수록 '분노와 평정 사이의 마음이 애타게 끓어' '눈밭에 서성대는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시인,


주인 잃은 어처구니없는 맷돌/ 모질게 날아드는 눈보라에 얼굴을 지워갈 뿐/ 눈벽의 창살에 갇히더라도/ 층층이 선명한 기억은 언제쯤 녹아내릴까요


어쩌면 '주인 잃은 맷돌'은 일제 하 시베리아로 끌려간 까레이스키 그 훨씬 이전의, 신라 김유신이 唐 소정방에게 갖다 바친 그 '맷돌'일는지 모른다. 하여 시인은 '어처구니없'다는 말로 누군가 매몰시킨 비굴(卑屈)의 역사를 방증(傍證)하려 한 게 아닐까?
단군이래 누천년 피로 빚고 땀으로 다듬었을 고유 영지(領地)의 '맷돌' 하나 지키지 못하고, 되려 천 만 <디아스포라>만 유랑케 만든


'김유신의 삼국통일'을, 명명백백한 이적성 반민족(반역) 행위를,


도대체 이 나라는 언제까지 자랑스러운 역사로 가르치려는지 모르겠다.
무려 십 수세기 동안 이 나라 등골에 기생하며 그들 뱃대지만 채워온 종파사대(宗派事大)의 더러운 피가 더 이상은 민족의 정기를 농락하지 못하도록 우리의 생각이 깨어날
'봄'을
도대체 언제까지 '싹틀 줄 모르는 계절'이라 불러야 한단 말인가?  - 정소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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