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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슬의 詩내기

부끄러운 시 하나가

by 정소슬 posted Sep 18, 2016

도시의 추석 - 정소슬 / 감상 - 류윤모, 박정옥

 

 

 

길었던 추석 연휴가 끝나는 날, 아는 분으로부터 문자 하나가 날아 왔다.

 

"쌤, 신문에 쌤의 시 하나가 연달아 소개되었는데

아는지요? 도시의 추석.

저도 오늘에야 봤어요. 추카... ㅋㅋ^^"

 

과연 그랬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오래 전부터 이 시가 인용되어 돌아다닌 흔적들이 여기저기 나열된다.

'도시의 추석', 언제 써서 어디다 발표한 지도 기억나지 않는 오래 전의 시인데

척 봐도 아마추어 쩍 습작 시 같기만 한 이 졸시에

울산의 류윤모, 박정옥 두 분 시인께서 분에 넘치는 오색 비단을 입혀 놓으셨다.

 

물론 작금의 암울한 울산경제 시황을 감안한 시 찾기였을 것으로 짐작은 가지만 참으로 황망하고 부끄럽다.

''란 아무렇게나 써서 아무렇게 내던질 일이 아니라는 점을 새삼 각성하게 하는 아침이다.

 


 

도시의 추석

                  - 정소슬

 

 

 

여기서 30년 살았으니

이제 여기가 고향이제!

하던 김씨도

고향 찾아 떠났다

 

집 팔고 논 팔고

광 속의 종자 씨 까지 모조리 훑어왔다던

이씨도

홀린 듯 훌훌 나섰다

 

다 떠나버려

졸지에 유령의 城이 된 도시

 

그간

욕심이 너무 컸던 거야!

너무 메마르게 대했어!

수치심과 이기심만 가르친 꼴이지…

 

회한이 번지는

회색 지붕 위엔

달마저

어느 놈이 챙겨 가버리고 없다.

 

 

● 정소슬 시인 - 1957년 울산 출생. 2004 시 전문계간지 '주변인과 詩'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네 속에 너를 가두고』(2006), 『사타구니가 가렵다』(2014) 등. 한국작가회의 회원.

 

정소슬.jpg

 

 

투자하라는 꾐에 넘어가 집 팔고 논 팔고 광속의 종자씨까지 탈탈 털어 신기루 같은 부푼 꿈을 안고 대처로 나왔다.

30여 년 만에 반들반들하고 영악한 치들에게 걸려 줄 사기를 당하고 하는 일마다 다 말아먹었다. 그래도 수구초심이라고 믿고 기어 들 곳이라곤 탯줄을 묻어 둔 안태 고향뿐이라는 주변인들의 비통한 인식.

 

이건 분명 괭이자루 호미자루 내던지고 도시로 도시로 공장을 찾아 휴거하듯 떠나온, 농경을 거쳐 산업 사회를 살아온 꼴통마초로 통칭되는 기성세대들의 자화상이다. 경기가 곤두박질치면서 정리해고니 구조조정이니, 먼 나라일이 아닌, 발등의 불같은 현실로 닥치면서 무풍지대나 다름없었던 소문난 잔치의 울산공단도 전전긍긍하는 처지에 처하면서 시인의 시가 요즘 절박하게 와 닿는 것이다.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다고 가슴을 쥐어뜯으며 흙바닥을 마구 뒹굴고픈 통곡 같은 밑바닥 인생들의 대곡이 아니겠는가.

 

시인은 분명 이 시를 쓰며 속으로 울고 있었을 것이다. 흔해 빠진 프로파간다와는 차별화되는 시의 주체로서의 미학적 전복, 외피는 거칠지만 그 각질을 한 겹만 벗기고 보면 상처투성이인 따스한 속살이 만져 질 것이다. 그런 공통분모의 속울음도 없이 이런 통절할 시가 피 터지듯 분출할 수는 없는 것. 그런 처지에 처해 보지 않은 자라면 꾸며서내는 거짓 울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산전박토를 일구어 먹고 살던 순박한 인심들이 나남 없이 각박한 도시 생활을 흉내 내는 가운데 탐욕으로 가득 찬 이기와 사치만 남았다는 회한어린 자탄, 행간 속 시인의 헛웃음 속에 담겨 있다.

 

부도나서 텅텅 비어버린 미분양의 신도시, 인간들의 무한탐욕의 마천루의 꿈. 회한이 번지는 회색 지붕위엔 달마저 어느 놈이 챙겨 가버리고 없다는 씁쓸한, 추석을 앞두고 쓰디쓴 담배 한 모금 빨며 처참한 심정으로 귀향을 고민하는 민초들의 피 맺히고 한 맺힌 노래다.

 

류윤모 시인

- 울산신문 2016.9.7일자 : http://www.ulsanpress.net/news/articleView.html?idxno=217700

 

 

 

우리에게 추석은 커다랗고 둥근달을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그런 연유로 달빛더미에 깔리고 싶은 사람들의 행렬은 해마다해마다 이어집니다. 달동네에 안착하고도 명절이면 두레밥상 위에 놓인 음식으로, 조상이 잠든 둥근 집으로, 하나가 되는 그 둥글음을 못잊어 귀성하는 노마드족.

 

다시는 오지 않을 거라고 모조리 훑어 온 세간을 꼭꼭 여미어 몇 십 년 토박이로 살았으나 저 달이 이 달은 아니어서 그런가. 텅 빈 도심은 유령이 사는 동네처럼 ‘회색 지붕 위엔 /달마저 /어느 놈이 챙겨 가버리고 없다.’는 진술에서 시의 묘미는 한껏 살아납니다. 고향을 떠나도 저마다 가슴속에 돋을새김으로 그려 넣은 달입니다. 힘들어도 넉넉한 모양의 동그란 보름달이 떠오르고 푸근한 달빛에 젖어들면 당신의 망가진 눈은 더는 외롭지 않을 것이므로. 토끼가 방아 찧던 그때의 사람들이 다시 달덩이 같은 토끼들을 만나러 도시로 가는 긴 행렬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박정옥 시인

- 경상일보 2016.9.12일자 : http://www.ks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558177

 

 

 

가져온 곳 : http://cafe.daum.net/dobongpoem/10ni/1493?q=%C3%DF%BC%AE%20%C1%A4%BC%D2%BD%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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