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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슬의 詩내기

이 시대의 시인으로 산다는 천형(天刑)

by 정소슬 posted Mar 1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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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文

이기철 제5시집 『별책부록』의 발문

 



 

이 시대의 시인으로 산다는 천형(天刑)

  

정소슬(시인)

 




 

이런 난감한 막걸리

 

 

차를 몰고 다니지 않는 이기철 시인(이후 읽기 편하게 '그' 혹은 '시인'이라 칭하겠다)은 아무 때나 아무 장소에서나 술을 마실 수 있는 '술꾼'의 기본 조건을 갖춘 셈이다. 더구나 집이 시 외곽이라 밤새워 퍼마실 염려가 차단되어 절제된 주락(酒樂)이 보장되므로 그는 늘 생기 양양하다. 그는 또 낭만 시인 천상병 선생께서 '즐거움을 더해주는 하나님의 은총'이라 극찬하신 막걸리 애호가이기도 하다. 좋은 막걸리가 있다 하면 박스째 사다 두고 마신다는 걸 보면 그는 천성적 애주가임이 확실하다.

 

그런 시인이 파발을 보내왔다. 모일 모시 모처에서 막걸리 한잔 어떠냐고? 마다할 이유가 없는 오랜만의 호의에 나는 쾌히 자리에 나갔고, 그는 서류 뭉치 하나를 들고 나타났다. 그 광경이야 늘 봐오던 모습이라 별달리 생각지 않았는데 그 서류를 냉큼 내게 건네는 거였다.

 

"이거 하나 해줘! 읽어보고 '발문' 하나 써줘야겠다."

"에이, 나 그런 거 못 해. 안 해봤어. 못 혀!"

"맘 가는 대로 쓰면 돼. 꼭 해줘야 해, 끝! 아줌마 막걸리 빨리 안 줘요?"

 

막무가내였다. 다짜고짜 턱밑으로 쑤셔 넣는 술잔을 덥석 잡고 말았다.

사실 시인과 나는 20년 지기다.

90년대 후반 매서운 IMF를 전후하여 그는 실직하여 '은현리'라는 낯선 시골로 이주해온 상태였고, 나는 불의의 사고로 오랜 병원생활을 끝내고 고향인 '망성리'로 낙향한 몸이었다. 당시 막 불기 시작한 인터넷 동호회 붐을 기웃대며 무료한 세월을 보내고 있던 내게 <달님별님 인터넷문화공동체>라는 다소 호기심 동하는 곳이 발견되었는데 같은 울산이라 긴가민가 찾아가게 되었다. 그게 이기철과의 첫 만남이었다.

 

첫 대면은 말 그대로 데면데면했다.

유행가 가사처럼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았는지?" 따윈 서로 묻지 않았다. 그저 내가 가져간 술을 그가 구워낸 삼겹살을 안주하여 주거니 받거니 마시고 취했다. 당시 유행하던 '1촌 맺기'나 '도원결의' 같은 거창한 다짐은 없었지만 둘은 그 날로 친구가 되었다.

아래는 그 날 내가 썼던 졸시인데, 남의 시집 발문을 쓰면서 내 시부터 깐다는 게 참으로 결례이지만 그 날의 풍경(<달님별님 인터넷문화공동체>의 풍경)이 가감 없이 표현된 거 같아 비난을 무릅쓰겠다.

 

 

    이러다, 이러다 가지!

    - 은현리 이기철 시인 집에 놀러 가서

     

     

    이러다, 이러다 가지

    달빛 별빛

    뚝뚝 떨어지는 뜰

    거닐다 거닐다 가지

    살랑살랑 솔바람

    마시다 마시다 가지

    마당 한켠에 퍼질고 앉아 상추 쌈

    즐기다 즐기다 가지

    찾는 벗들과 파전에 막걸리

    나누다 나누다 가지

    널러서, 널러서 작아 보이는 밤하늘

    반짝이다 반짝이다 가지

    달님 별님

    초롱초롱 초롱대는 은현리에서. (정소슬의 졸시)

 

 

얼마 후 내가 <울산작가회의>에 가입하면서 이미 회원이었던 그와 보다 자주 만나게 되었지만 서로 새로운 직업들을 갖게 된 뒤라 별달리 깊은 시간을 갖지는 못했다. 시인은 울산 북구청의 문화홍보과 편집장(주무관급)이라는 번듯한 명함으로 수년간 일했고, 그 발판으로 하여 그곳 관하의 <인문학서재 몽돌> 초대 관장을 역임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의 문화적 끼가 한껏 발휘되어 지역 문화의 틀을 공고하게 기초한 것은 물론 전국적인 인문학 붐을 일으킨 한 주역이기도 했다.

 

마침 지난해, 내가 시집을 내자 손수 자리를 깔아 독자들과의 소통을 마련해주었는데 그 자리에서 위 졸시를 낭독하였고, 그 화답인 양 이번 난감하기만 한 '발문'을 떠안게 되지 않았나 싶다.

어쩌겠는가? 술(毒酒)은 얻어 마셨고, 제2의 발효를 끝낸 구리구리한 그날 밤의 이상(理想)은 이미 내 학문(다들 그리 씁디다. 학문외과)을 빠져나가 우주로 활공해간 지 오래인데…….

 

 

 

 

친절함에 대한 나의 불편함

 

 

시인의 이번 시집은 제1부 제목이기도 한 '친절함에 대한 나의 불편함'에 방점이 찍혀 있는 듯 보인다.

그는 그간 무척 바빴다. 그리고 몹시 고독하였다. 별다른 직업 없이 <인터넷문화공동체>라는 다소 황당한 조직을 운영하면서 한창 커 가는 자식들과 막막해 하는 아내의 시선까지 부양해야 했던 가장으로의 고뇌가 얼마나 컸겠는가? 유사한 시점, 나도 못지않은 비탄의 세월을 보냈기에 더 뼈저리다.

 

'인터넷'이란 즉문즉답(卽問卽答)이어야 하고, 이해상응(利害相應)하여야 하고, 다소 판타지(fantastic)해야 하는 기본 생리를 갖고 있다. 그러니 '은근과 끈기'를 시대적 좌우명으로 삼아온 기성세대로선 도저히 따라잡기 힘든 범주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당시 <달님별님 인터넷문화공동체>의 회원 수가 최대 5천을 오르내린 걸로 기억되는데, 그 많은 회원이 보내온 글 사진 쪽지들을 언제 다 읽으며 또 어찌 다 답해줄까 난감했을 터인데 그걸 유유히 즐기고 있었고, 그 속에서 '문화'라는 공통이념을 장마당 화하여 그 체온(열기)만으로 무려 10년간이나 밥을 지어먹었다는……, 더 적절한 표현을 도저히 찾을 수 없다.

 

기막힌 그 세월을 보상시켜준 곳이 울산 북구청이었다. 공무원도 아니고 관련 이력도 변변찮은 그를 구청장(민선)이 손수 특채한 거였다. 구(區) 내에 일어나는 문화 관련 사업들의 기획 홍보를 떠맡긴 거였다. 쉽기야 했겠는가? 직업 속성상 철저하게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기존 공무원들의 저항과 투기가 어찌 없었겠는가. 나이도 들 대로 든 데다 어느 날 갑자기 공수된 낙하산이고 보면 결코 고운 시선은 아니었을 터, 오로지 결과물로 난관들을 헤쳐나가야 했을 것이다. 그 일을 4년간 수행한 후 관하의 <인문학서재 몽돌> 초대 관장으로 옮기게 되어 또 4년여에 가까운 기간 이끌게 된다. 그때 시인이 내건 설립 이념을 보자.

 

 

    처음부터 둥근 돌은 없다. 모난 돌이 바람에 세월에 파도에 씻겨 둥글게 되었듯 이 공간에서 문화를 나누고 소통하며 그렇게 서로의 인격을 바르게 나누자는 의미를 입혔다.

     

    칼럼 「인문학 서재 몽돌?」 부분

 

 

그러고 보면 <달님별님 인터넷문화공동체>와 <인문학서재 몽돌>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문화'라는 무형의 주제를 '공동체'라는 틀 속에 넣어 불특정 다수의 대중과 '소통'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그 '소통'이 성공했는지는 아직 미지수다. 지나가는 바람처럼 한때의 유행이었을 수도 있고, 곰보 자국만 남긴 열병일 수도 있다. 문화란 것이 단숨에 결과가 추출되는 것이 아니어서 보다 긴 숨의 평가가 필요하겠지만 누군가는 시도했어야 할 시대적 과제였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러한 선제적 과제를 수행해내자면 난관이 만만찮을 건 뻔하다. 앞선 이 뒤를 졸졸 따라가는 것이 아닌 손수 앞에 서서 난관들을 헤쳐나가야 하므로 무척 고달프다. 그리고 고독하다. 업무상(문화인은 순수 감정노동자이므로) 수없이 위로를 남발할 도리밖에 없지만 정작은 힘든 자신이 먼저 위로 받고 싶은 심정이었을 거다.

그런 속내가 오롯이 읽히는 시 하나를 보자.

 

 

    집 밖, 너 홀로 밝힌,

    외로움의 파수꾼

     

    오늘처럼 비 오는 날이면

    데리고 들어와

    함께 환한 별빛 만들고 싶다

    새벽이 지도록 지켜줄 쓸쓸한 기쁨 누리게

    잊지 않고 잊히지 않게

    네 옆에서 찬바람과 비,

    그리고 속 쓰림의 신산(辛酸)을 나누게

     

    고맙다

    외로운 불빛 하나

     

    「외등」 전문

 

 

시인과 문자(요즘은 주로 카톡)나 메모를 주고받다 보면 어찌 그리 빨리 답이 오는지 깜짝 놀랄 지경이다. 요즘 젊은이들의 톡(talk)에 결코 뒤지지 않을 거다. 시인의 나이 내년이면 이순(耳順)이라 대충 흘려보낼 말에도 일일이, 또 즉각 답을 보내온다. 그 친절함, 그 신속함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부산 태생인 그는 그곳 고신대를 나와 전도사로부터 사회생활이 시작되었다 하니, 그래서일까? 첫 직장 경북매일 등 언론계에 발을 들여 10여 년 그 일이 천직이리 일했다 하니, 그래서일까? IMF 광풍에 해직되어 아무도 시작한 적 없는 <인터넷문화공동체>라는 걸 만들다 보니, 그래서일까? 아니면 얼마 전 물려주고 나온 불모의 <인문학서재>를 꾸려나가려다 보니, 어쩔 도리 없이 그리된 걸까?

 

그 모두일 거다. 어느 것 하나 손수 나서지 않고서야 결과를 낼 수 없는 것들이다. 능동적이고 선행적(先行的)이지 않고선 성과를 도출 못할 일들이다. 그리고 회원관리가 필수적인 불특정의 대중들과 맞닥뜨려야 하는 민감한 일들이다. 오가는 작은 말(言) 하나가 서로에게 살(肉)이 될 수도 뼈(가시)가 될 수도 있는 첨예한 일들이다.

 

그러니 얼마나 아슬아슬했겠는가? 평생 그 일을 해왔으니 전화기(스마트폰)가 뒤척이는 소리만 들려도 벌떡 일어나 그 소리부터 다독여야 했을 거다.

옆자리 나란히 누운 사람, 어디 잠이나 제대로 잤겠는가? 코 고는 소리, 기침 소리 시원하게 한번 내뱉을 수 있었겠는가?

 

하여 요즘은 "나 잔다!"란 글을 큼지막하게 띄워놓고 잠자리 들 정도이고 보면…….

 

시인이 여태 상재(上梓)해온 시집들을 볼라치면 『바람 소리여(1981)』, 『쓸쓸한 당신(1998)』, 『당신(2010)』, 『그리움의 끝(2014)』과, 이번 시집 『별책부록)』까지 모두 다섯 권이다. 결코 작은 수가 아니다. 그런데 대학 시절 낸 첫 시집 『바람 소리여』를 빼면 모두 당신, 당신…… 오로지 한 곳을 향하여 있다. 그의 '당신' 신정희 여사를 향하고 있다. '앞서 나가야 하는 자'의 고독과 고단함을 부축해줄 절대적 원군에 대한 배려이며 간곡한 독려가 아니었던가 여겨진다.

 

 

    나를 위해 기도하지 마라

    난 이미 그대들의 간절함에 벗어나 살고 있다

    날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대들의 간절함과는 다르다

     

    난, 한 사람의 걱정에 만족한다

    당신.

     

    「친절함에 대한 나의 불편함」 전문

 

 

시인은 이미 많은 이들에게 '앞서가는 자'로서의 당연한 권리인 '우상'이 되어 있고, 그래서 많은 '기도'와 극성맞을 정도의 '관심'과 '열광'을 한몸에 받는다. 그것이 때론 불편함으로 다가오는 것이고, '당신'에겐 말로 다 못할 미안함인 것이다.

그리 보면 이번 시집 또한 앞서낸 시집들의 연장선상임이 명료해진다.

 

 

 

 

짧지만 긴 여운의 궁극(窮極)

 

 

    나중 갚는다며 도망친 밤

    겨우 다시 갔더니

    그 밤이 잠겼네.

     

    「외상」 전문

     

     

    말해 봐요 바람보다 못한 당신.

     

    「휘파람」 전문

     

     

    직선이 아니었다

    비스듬히,

    늘 그랬다

    직선의 일상에 대한 위로.

     

    「비」 전문

     

     

앞서낸 시집 『그리움의 끝』에서 몇 편 더 옮겨와 보자.

     

     

    그대 가시면, 바람 불겠죠

    비 나리고 차곡차곡 울음 재우겠죠

    ……

    문 닫아걸고 눈 기다리겠죠.

     

    「가을 끝에」 전문

     

     

    시시한 사람과 만나고 싶다

    그래서 밤새 시시덕거리다

    새벽, 나를 묻는 순간

    시발놈, 잘 가라고 하면 좋겠다

    시,

    눈물 나는 밤이다.

     

    「내가 죽으면」 전문

     

     

    아부지 술잔 자주 채워줘

    나중 그립데이.

     

    「아들에게」 전문

     

     

    몸에 맘에 화살 맞았으니 당연하지.

     

    「몸살」 전문

     

     

    꽃이다

    라고 읽지 말고

    꽂히다

    로 느껴라

     

    「너 혹은」 전문

 

 

수십 년 면벽 수행한 도인 같은 선시(禪詩)로도 보이고, 농익은 능청의 풍자시로도 보인다. 일본의 전통 단시 하이쿠 같기도 하고, 요즘 장안의 화제로 등장한 하상욱 시인의 SNS시 같기도 하다.

 

하얀 화선지 위에 먹물 한 방울 뚝! 떨군 것 같은,

조금씩 스며들며 아슴아슴 번져오는 여운의,

 

그의 이런 시가 나는 좋다. 눈 내린 아침 누군가 조심스럽게 지나간 발자국을 큰 가슴으로 품어 안은 듯한 여백이 참 편안하다.

툭 건드리면 와르르 무너져버릴 것만 같은 느슨한 시구(詩句) 몇이 오종종 서 있는 모습, 왠지 내 속의 순수(純粹)를 꺼내보게 된 양 위로가 된다.

그리고 진솔하고 순박한 표현들이 더없이 따듯하다.

 

이렇듯 짧지만 긴 여운의 시는 시의 본질이며 그 목적이다. 시인이라면 누구나 다다르고 싶은 로망이기도 하고, 각고면려(刻苦勉勵)해야할 천형의 멍에이기도 하다. 그래서 "옥이나 돌 따위를 갈고 닦아서 빛을 낸다"는 뜻의 '절차탁마(切磋琢磨)'란 고사성어가 시인들에게 딱 맞는 궁극의 덕목일지도 모르겠다.

 

 

 

 

왜 시를 쓰는가?

 

 

왜 시를 쓰는가?

왜 시를 써야 하는가? 하필 왜 시여야 하는가?

이 해묵은 질문은 시인들에게 수없이 회자되어 온 화두다. 이 질문에 대한 이기철 시인의 명료한 답이 칼럼 「시인과 잠수함 속의 토끼」 속에 보인다.

 

 

    루마니아 작가 콘스탄틴 비르질 게오우르기(Constantin Virgil Gheorghiu, 1916년~1992년)는 시인을 '잠수함 속의 토끼'로 비유했다.

    (중략)

    즉 시인은, 작가들은, 이 사회의 상황을 먼저 알아차리고 이를 알리는 존재라는 것이다.

    (중략)

    게오우르기가 자신을 잠수함 속의 토끼로 비유해 글 쓰는 이들의 사명을 강조한 것처럼 (중략) 나 또한 '시대의 자명종'이 되고 싶은 것이다.

     

    칼럼 「시인과 잠수함 속의 토끼」 부분

 

 

'잠수함 속의 토끼'이길 마다하는 시인이라면 시인의 자격이 없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공무원이 현장엔 나서지 않고 탁상공론만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려 한다면 그 자격을 회수해야 한다는 법 논리처럼 무릇 시인도 그런 회수 법이 있어야지 않겠냐는 과격한 발언까지 덧붙이고 싶다.

 

수십 만에 달한다는 우리나라의 적잖은 시인들, 그 중 위 '잠수함 속의 토끼'의 역할에 충실하는 수는 얼마나 될까? 10%, 5%, …… 상당히 회의적이다. 민족시인 윤동주 선생의 '동주'라는 영화의 돌풍이 시사하는 바처럼 시인으로의 사명이 그의 명예에 얼마나 절대적 가치인지를 입증하며 경고를 보내고 있음에도, 상당수 시인은 아직도 시(詩)를 그저 음풍농월(吟風弄月)을 추구하는 도구 정도로 여기는 실정이다.

 

보라, 작금 시인들이 난잡스런 말장난과 음풍농월의 흥취에 빠져있는 사이 이 나라의 정의(正義)가 얼마나 피폐해졌나를!

 

불과 한 세기도 안 지난 시점, 나라가 치욕적 누란에 빠졌을 때 나라를 구하는 데 앞장서야할 이들이 도리어 침투 권력에 빌붙어 앞잡이 노릇을 자임하며 반민족 행위를 일삼던 시인들이 있었다. 우리 학창시절만 해도 그들이 교과서를 독점 독식하며 영혼 없는 요사(妖邪)한 말 재롱으로 어린 지성들을 세뇌시키고 있었다. 이 얼마나 통탄할 일이었던가.

 

훗날 그들의 반역사적 행위가 낱낱이 드러나(필자가 회원으로 있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역할이 지대하였다. 지난 50년 정권들이 해내지 못한 일을 진쇄토벌盡刷討伐 해낸 데 대한 회원으로의 자부심을 기꺼이 자랑삼는다) 그들의 흔적 대부분 지워진 걸로 알지만 지금도 또 다른 얼굴을 한, 혹은 아예 얼굴을 없앤 동종의 드라큘라 문학인들이 이 나라 문화의 정기(精氣)에다 빨대를 꼽고 있는 모습 보인다. 아직도 그 추종세력들은 선후배 제자 혹은 동향인이라는 명분을 못 버리고 오욕의 그 이름들을 내건 버젓한 문학제까지 만들어 치욕을 연장시키려 안간힘이질 않은가. 심히 안타깝다.

 

 

    자꾸 잊으라 한다

    유린(蹂躪)의 현장에서 비켜서라 한다

    섣불리 용서하자 한다

     

    군수 공장에 취직시켜 주겠다며,

    잠시 물어볼 게 있다며,

    물 길어 집으로 돌아오던 그 아이에게도

    주재소에 갇힌 아버지 석방시켜 준다는 꾐에 빠져

    끌려간 조선의 꽃들은 그렇게 스러져 갔다

     

    사죄한다는 말 한마디 듣기가 그리 어려운가?

    핏빛 동백만이 진실에 목말라

    목숨을 거두고 있다

    아니, 누구나 아는 사실을

    아무도 몰라야 한다고 문단속을 한다

     

    아니야, 잊히는 것은 없어

    잊혀질 리 없어

    꽃은 지려고 피는 것이 아니라

    기어이 피려고 때를 기다리는 것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그리움의 재생산

    울산대공원 동문 입구에서 만난 소녀

    그녀는 영원히 꽃이어야 한다

    그래서 살아있는 양심들에 꽂혀야 한다

    바꾸지 않을 것이란 절망은 내다 버린다

    종내(終乃), 부둥켜안을 일만 남지 않았는가.

     

    「꽃이어야 한다 -소녀상에 바침」 전문

 

 

누가 저 어린 소녀를 바람막이 하나 없는 울산대공원 입구의 허허벌판에다 세워 두었나? 공원을 만든 업자인가? 울산시인가? 시민들인가? 그도 아니면 저걸 빚고 다듬은 조각가인가?

아니다. 앞의 친일 부역자들의 요사한 펜 끝이 저기 저렇게 세운 거다. 지금도 그녀는 그 날의 선동과 부추김이 두려워 꼼짝 못하고 서 있다. 아마 그녀는 누천년 더 서 있을 거다. 이제 어느 누가 말린다한들 꿈쩍하지 않을 거다.

 

그녀가 왜 거기 서 있는지를 두고두고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으라고!

철마다 갈아 피는 꽃처럼 우리의 마음이 바뀔 때마다 따끔한 느낌표가 되기 위해!

 

실은 이 일로 잠시 시끄러웠다. 이 건에 한해서만은 강경 일변도였던 현 정권도 끝내는 美의 요청이었는지 日의 술수였는지 피해 당사자(위안부 할머니)들이 전혀 납득하지 못하는 일방적 합의를 했고, 이제 몇 남지 않은 할머니들은 가라앉는 잠수함 속에 그대로 버려진 토끼가 된 채 숨이 점점 미약해져 가고 있다.

 

우리 모두 70년 동안 유린 되어온 '거대한 뿌리(김수영 시인의 시)'의 실체를 목도하고 있다. 또 다른 형태의 '세월호' 침몰 현장인 것이다. 현 정권은 그 할머니들을 건져낼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고, 가끔씩 "이미 끝났어! 충분히 청산되었어!" 하는 손사래만 美日과의 수신호처럼 흔들어댄다. 아직도 수천 수만 척의 '세월호'가 더 있다는 겁박용 수신호일는지도 모르는…….

 

우리는 깨어나야 한다.

내 차 앞을 끼여들어도, 뒤에서 경적만 울려도 분노를 참지 못하는 당신.

반민족적, 반국가적, 반사회적 불의와 부도덕과 불공정에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당신.

시 속의 '살아있는 양심'이 한없이 그리운 이 시점, 과연 내 모습은 어떤 얼굴로 어디쯤 서있는지 수시 거울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내 양심의 위치를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저만치 물려둔 '희망'이란 촛불을 끄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당겨 끌어안아야 한다.

시인도 '부둥켜안을 일만 남지 않았는가'라 하지 않았나.

요즘처럼 시가 범람하는 시대에 단재 신채호 선생의 "시가 성하면 나라가 흥하고 시가 쇠하면 나라가 망한다"라는 말에 그나마 '희망'을 걸어보면 어떨까?

 

 

    기다림은 항상

    내 마음이 포기하는 순간 찾아온다

     

    사는 일이란 기다림의 연속

    농부는 적당한 햇볕과 구름과 비를 기다리고

    실연한 남자는 떠난 연인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사랑하는 이들은 전화를 기다린다

     

    하지만 이 모두는 더디 오는 법

    시간과 시간 사이의 터널은

    깜깜함이 지나야 밝음을 얻을 수 있음을 가르친다

    오지 않을 것이란 절망감과

    올 것이라는 불투명한 희망이 겹치는 지점

    거기가 희망점이다.

     

    「기다림」 전문

 

 

지식이 미천하고 편협하여 시인과의 인연 등 잡설만 길어졌다. 그리고 다분히 주관적인 과격 일변도의 글이 된 거 같아 송구스럽다.

아무쪼록 이기철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별책부록』 상재를 한없이 축하하며, 앞으로도 좋은 작품 많이 생산하는 훌륭한 시인이기를 두 손 모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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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대의 시인으로 산다는 천형(天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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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정소슬 Views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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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10
    Apr 2015
    13:41

    정소슬과 함께 하는 힐링 포엠

    <<인문학서재몽돌 詩 콘서트>> ... 강의 : 1시간 30분 === 정소슬과 함께 하는 힐링 포엠 === 정소슬 : · 1957년 울산 망성리 출생. (본명 정정길) · 2004년 계간 <주변인과 詩>로 작품활동 시작. · 2006년 ...
    By정소슬 Views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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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16
    Dec 2014
    22:22

    시집을 부치며

    시집을 부치며 - 비주류가 주류에게 오래 간 준비해온 시집을 냈다. 이 홈페이지에 책을 내겠다고 시집 제목까지 붙여 방을 만든 지(2010. 8. 8)가 어느덧 4년이나 지났으니 꽤 묵혀진 시집이랄 수 있겠다. 2006년 『내 속에 너를 가두고』를 내면...
    By정소슬 Views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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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08
    May 2014
    23:26

    오늘은 어버이 날!

    오늘은 어버이 날! 나도 가슴에 카네이션 달아줄 자식이 둘이나 있는 엄연한 어버이! 그러나 내 가슴에 달 카네이션보다 내가 카네이션 달아드려야 할 어머니께서 살아 계시는 그저 한 자식일 뿐인 날입니다. 올해 여든 셋의 연세건만 아...
    By정소슬 Views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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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19
    Jan 2014
    12:54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정호승 시인은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며 시를 썼고 안치환이 그걸 노래로 만들어 술자리마다 흉금을 풀어놓았는데 나는 그만한 시도 못 쓰고 그만큼 노랠 부를 재간도 못 가졌는지라 해마다 ...
    By정소슬 Views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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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12
    Dec 2012
    19:12

    "첫눈이 왔네요"

    "첫눈이 왔네요" 날씨가 조금 풀렸나 싶어 미루고 미뤘던 이발을 하고 돌아오는데 우체통에 낯선 엽서 하나가 꽂혀 있었다. "정소슬님 첫눈이 왔네요" 잊고 살았던 옛 그 엽서는 분명 아니었지만 그래도 일순, 구들목 이불 밑에 몸을...
    By정소슬 Views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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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3
    Jul 2011
    17:04

    詩는 抒情이다.

    모처럼 무거동 모 삼계탕 집에서 대학교수인 Ahn, 모 기업 부장인 O, 중등교사인 Lee, 빌딩경비원 Jeong, 이렇게 네 시인이 모였다. 계절이 초복과 중복 사이이니 삼계탕은 딱 제격, 그것도 한방 삼계탕이라 그 값이 충분히 기대되었다. 이게 얼마 만인가? ...
    By정소슬 Views1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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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18
    Apr 2010
    01:24

    천안함 함미가 건져지고

    천안함 함미가 건져지고 천안함 함미가 건져지고 그 안에서 어린 내 아들들이 불귀의 넋이 되어 돌아온 이 슬픈 시기에 매스컴을 살피노라면 현 보수 권력층과 수구언론 논객들에 의해 '군사적 보복'이란 말을 대수롭지 않게 흘리고 있다. 누구에게 ...
    By정소슬 Views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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