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정소슬의 詩내기

저승길을 묻다

by 정소슬 posted Nov 26, 201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저승길을 묻다 / 정소슬

- 지독지정舐犢之情

 


1176359965_1.jpg


화단의 수목이 울창할 땐 보이지 않던 꽁초며 잡쓰레기들이 가을이 깊어지면서 모습을 드러내 넝마집게 들고 그것들을 일일이 집어내고 있는데
지팡이로 땅을 톡톡 두들기며 옆을 서성이던 할머니, 기어코 그 지팡이로 날 돌려세우고는 길을 묻는다

여기 분밍 있었는디


무엇 말임니꺼, 할무이?
사진관 말다. 분미이 요기 있었제?
아, 그 사진관 말임니꺼? 이사갔심더. 삼 년도 더 지났는데예!
머라카노. 어딧따꼬?
삼 년 전에 이사, 딴 데로 갔다고요. 그보다 할무이 머할라꼬 그라는데예?
징밍사진 박을라꼬지.
아, 증명사진요! 요 위 3층 예식장에 사진관이 붙어있긴 한데 주로 잔치사진 찍는 데라서 될랑가 모르겠심더. 함 알아봐 드릴까예?
머라? 어따 씨냐꼬?? 영정사진으루 씰라카지!


그 말에 그만, 내 말문이 젖어버렸다
되긴 되겠다 싶다 안되더라도 할머니의 저 간절함이면 충분히 될 거 같아 하던 일 잠시 접어두고 할머닐 모시고 3층으로 올라가는데, 안 그래도 디는디 내 혼자 차저갈 수 있는디 연신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하신다


어머니께서 노상 하시던 말씀이 떠오른다
나도 니 애비처럼 잠자다 콕! 가비리야 조을 틴디 지발 그래야 니들이 편할 틴디


올 때야 멋모르고 온 우리들이지만 갈 때는 남은 자식들 걱정 떨치기가 힘든 우리 인간의 지독지정 아니겠는가 저 할머니나 내 어머니나 자식들에 대한 그 지독지정 때문에 지팡이로 땅을 톡톡 찔러 봐가며 홀가분히 떠날 저승길을 묻고 있는 거다


*. 지독지정(舐犢之情) : 어미 소가 송아지를 핥아 주며 귀여워한다는 뜻에서, 어버이가 자녀를 사랑하는 지극한 정의 비유.

 


- 계간『포엠포엠』 2012년 겨울호에 발표

 

Who's 정소슬

profile

브랜드 : 정소슬
메이커 : 1957년식 울산 産
성능/직업 : 비정규직
취미 : 긁적이기, 똥폼으로 사진 찍기
잡기 : 음치, 몸치, 길치... 등 중증 치과환자

Atachment
첨부 '1'
?

최근 발표작

recently announced Poem /

  1. 15
    Jun 2018
    07:53

    오늘은 현충일

    특집 | 시인들이 상상하는 통일! 통일! 오늘은 현충일 나의 용기가 너의 정의를 짓밟지 않았는지? 나의 분기가 너의 의기를 막아서지 않았는지? 지금은 반성의 시간. 서로를 용서할 시간. 다함께 악수, 그리고 뜨거운 포옹! ...
    By정소슬 Views67
    Read More
  2. 02
    Apr 2017
    10:29

    광어

    광어 - 故 백남기 선생 영전에 그 날도 촛불로 도심을 옴팍 불사르고 오던 밤이었다 이미 자정이 넘었지만 행렬에 동참한 열기가 가게마다 성황이어서 우린 겨우 어느 허름한 횟집에다 자리를 잡아야 했는데 이런 날은 도다리를 뼈 째 썰어 먹는 새꼬시여야...
    By정소슬 Views98
    Read More
  3. 02
    Apr 2017
    10:25

    티눈

    티눈 발바닥 굳은살이 살 속으로 파고들어 도저히 걸을 수 없게 되고서야 알았네 내 밑바닥에 잠자고 있던 없는 듯이 감겨있던 이미 퇴화한 걸로 착각했던 바닥의 눈에 핏대가 서서 틔눈 하게 되면 얼마나 무서운지를 - 계간 《사이펀》2017년 봄호
    By정소슬 Views82
    Read More
  4. 12
    Mar 2017
    17:08

    광어

    광어 - 故 백남기 선생 영전에 그 날도 촛불로 도심을 옴팍 불사르고 오던 밤이었다 이미 자정이 넘었지만 행렬에 동참한 열기가 가게마다 성황이어서 우린 겨우 어느 허름한 횟집에다 자리를 잡아야 했는데 이런 날은 도다리를 뼈 째 썰어 먹는 새꼬시...
    By정소슬 Views79
    Read More
  5. 17
    Feb 2017
    11:52

    논두렁 풀을 베면서

    논두렁 풀을 베면서 - 땅의 권리장전 퍼렇게 자란 논두렁 풀을 벤다 벤다는 건 살생본능의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분출하는 일 죄뿐인, 부실부실 죄밖에 키우지 못한, 죄 많은 풀이 뎅겅뎅겅 목이 잘려 의문의 변사체가 된다 무리 지어 남의 영역을 함부...
    By정소슬 Views123
    Read More
  6. 19
    Dec 2014
    21:21

    이런 기막힌

    이런 기막힌 초등학교 시절 장마 폭우로 등굣길이 사라져버렸을 때 이런 기막힌 슬픔이 있을까 했다 사실은 갑자기 나타난 즐거움이 신기하기만 하였다 엄혹했던 군 복무 시절 군 최고통치권자였던 대통령 서거 소식에 이런 기막힌 슬픔이 있을까 했다 사실은 ...
    By정소슬 Views893
    Read More
  7. 02
    Dec 2014
    11:07

    염낭거미

    염낭거미 고래의 몸통을 파, 그 속에 거미집 짓고 번쩍번쩍 가구들 들여놓고 샹들리에 늘어뜨린 대리석 식탁에 앉은 그들은 파낸 살점으로 날마다 산해진미의 잔치를 벌인다 그렇게 날마다 잔치가 벌어지건만 그들 뱃가죽과 함께 나날 ...
    By정소슬 Views1055
    Read More
  8. 11
    Jun 2014
    11:54

    고래

    고래 그의 몸통을 파, 그 속에다 집을 짓고 번쩍번쩍한 가구들 다투어 들여놓고 샹들리에 늘어뜨린 대리석 식탁에 앉은 그들은 파낸 살점으로 날마다 산해진미의 잔치를 벌인다 그렇게 날마다 잔치가 벌어지건만 그들 뱃가죽과 함께 나날 늘어나...
    By정소슬 Views699
    Read More
  9. 20
    Apr 2014
    09:53

    맹골수도(孟骨水道) 급류 아래

    맹골수도(孟骨水道) 급류 아래 -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며 맹골수도(孟骨水道) 급류 아래 숨막히는 먹먹한 하루가 또 떠내려간다 우린 어쩜 이리도 무기력하기만 할까? 나도 너를 너도 나를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 물밑 물위 가리지 ...
    By정소슬 Views568
    Read More
  10. 08
    Mar 2014
    08:29

    진눈깨비

    진눈깨비 / 정소슬 누군가 하늘을 구겨 줴짜고 있다 질질 줴짜진 국물과 툴툴 털린 먼지가 함께 뒤섞여 헛, 헛, 흩날리고 있다 재개발 공고 이후 텅 비어버린 아파트, 그 위로 털, 털, 털, 내리는 비, 아니 눈 사람 하나 안 사는 유령도시가 된 지 ...
    By정소슬 Views320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Next
/ 3

본 홈페이지는 XE 엔진sketchbook5 layout & board로 제작되었으며, 모니터 사이즈 1280x800 이상이면 무난히 볼 수가 있습니다.
Copyright ©2000 정소슬 All Rights Reserved. RSS
E-mail : moreunduk@hanmail.net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