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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슬의 詩내기

아토피

by 정소슬 posted Feb 0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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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토피
- 적에 대하여

 


1
나 어렸을 적엔 손톱으로 눌러 피 빨갛게 나오는 놈은 모조리 적이라 배웠다 그래서 밤마다 호롱불 밑에 일제히 옷을 뒤집어놓고 빨간 피 머금은 놈 찾느라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더구나 그놈의 알 서캐란 놈은 핏빛이 안 배인 데다 더 작고 교묘하게 숨어 있어 섶에다 손톱 맞대어 꾹꾹 누르노라면 톡! 톡! 소리내며 터지곤 했는데 그 소리가 마치 뒤란 대숲에 내 또래의 어린 빗방울들이 맨발로 뛰어다니는 소리 같았다, 그런데


2
언제부턴가 겨울만 되면 옷 밑이 스멀스멀 가렵다 피 빨간 놈이 적이 아니란 게 탄로 나버린 대명천지에 수십 년 전 사라진 '이(蝨)'란 놈이 부활했을 리도 없고 당시 미군이 들여다 놓은 디디티와 화학비누의 유통기한이 끝났다는 발표도 없었는데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보면 옷 밑이 벌겋다 또 밤새 빨갱이와 사투를 벌인 모양인데, '이'가 땅굴을 팠나? 손톱 밑에 스민 선연한 핏빛으로 보면 어릴 적 그 빨갱이가 틀림없어 황급히 병원을 찾았더니
'아토피'란다 '이'를 없애려 과다 사용한 디디티와 화학비누가 원인일 거란다 스스로 자신을 지킬 생각은 않고 손쉽게 남의 우산 아래 안주하면서 무감각해져 버린 의존의식이 원인일 거란다


우리가 우산의 편안함에 잠들어 있는 사이
땅굴을 파고 살 속으로 파고든 적!


3
미국과의 '전시작전통수권 환수'에 합의했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표가 있자 이에 반대하는 피켓을 든 전직 국방장관들, 전직 경찰청장들, 전직 외교관들까지 벌떼처럼 들고일어나 데모를 벌였다는 뉴스가


한동안 내 손톱 밑을 스멀스멀 기어 다녔다

 

gwangjoo_1980.5.jpg

(이 사진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나선 시민들을 중무장한 군인들이 폭력 진압하는 모습이다)


- 『울산작가』 창립 15주년 특집호

 

Who's 정소슬

profile

브랜드 : 정소슬
메이커 : 1957년식 울산 産
성능/직업 : 비정규직
취미 : 긁적이기, 똥폼으로 사진 찍기
잡기 : 음치, 몸치, 길치... 등 중증 치과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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