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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슬의 詩내기

사주 외 1편 / 울산작가36호

by 정소슬 posted Oct 31, 2023

사주

 

20180910_162638.jpg

 

아버지 신혼집으로 손수 지은 초당에

어머니 60년 살다 떠난 집을 내림 받아

이거 고치고 저거 덧대며

 

내 여생을 산다

 

생전 어머니께선, 평생 깎고 다듬으며 살아갈 네 사주라 카더라, 친히 일러주셨는데

일찍이 배운 짓도 그 짓이요 평생 해온 일도 그 일이라 그 사주 참 용하구나, 여길 만도 하였는데

소싯적 로망이었던 문사의 꿈 끝내 못 버려

벌써 스무 해 넘게 시인 행세하며 시집도 세 권이나 내고 교류 삼아 보내온 시집들로 서고가 가득 찼건만 다 읽지 못하여 접어둔 책이 태반이라

그 책들 하나씩 꺼내 읽노라면 스르르 잠들기 일쑤이니

아무래도 이 옷이 내 옷이 아닌가 보다 싶어진다

 

그런데 잠자다 벌떡 일어나 간밤 뚝딱거리다 버려둔 일 잇댐 질로 땀 뻘뻘 흘리고 있는 꼴 볼라치면

내 죽기 전엔

 

이 사주, 버리긴 참 힘들겠구나! 통감한다

 

 

 

 

 

영역표시

 

20220908_174649.jpg

 

내 나이 환갑 되던 해 내림 받은

아버지 어머니 두 분 손수 지으신 집이

 

어쩌다

 

나의 거대한 장난감이 되었다

40년 넘게 도시 생활로 익힌 편의에 따라

이거 고치고 저거 고치고

지붕이 바뀌고 기둥이 바뀌고

마루 걷어낸 자리엔 거실이 되고

앞마당이 현관 겸 다용도 전실로 변하네

 

어버이 흔적은 하나둘 사라져

벽 깊이 배었던 두 분 냄새 종적 찾기 힘들고

그 자리 내 냄새로 덧덮이네

 

새총 만든다고 어머니 내의 찢어 고무줄 빼내던

철없던 그 땀방울로

영역표시에 여념이 없네

 
20230821_181042.jpg

 

 

ulsanjakka36.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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