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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슬의 詩내기

권태의 목덜미 외 4편 / 곰솔문집7호

by 정소슬 posted Sep 18, 2023

권태의 목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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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딱똑딱, 이봉수의 찌그러진 냄비 공예를 구경하고 있자니 가려운 내 목덜미를 따각따각 빠개줄 하이힐 소리가 불쑥 그리워지는 거다

 

잘 벼린 사랑이듯 뾰족 날이 선 정(釘) 소리가 내 목덜미를 찍어누르면 피범벅 되어 뒹굴기 일쑤겠지만 족히 한 열흘 앓아눕기도 해야겠지만 심통 깊숙이 찔러든 쩌릿함에 어쭈구리 이불을 깔고 그 위에 철퍼덕 엎어지면 서너 편의 시쯤이야 단번에 써 내릴 거 같단 말일세

하지만 어쩔까, 하냥다짐 일삼던 젊은 날의 결기는 날로 무르춤 시들고 그간 남발해 왔던 사랑의 맹세들은 고추바람 되어 아랫도릴 움켜쥐고 잠든 척인 걸

 

혹시 몰라, 이봉수의 요술의 정(釘)이 권태로운 내 목덜미에다 뻥! 하고 구멍을 내면 눈앞이 환해지는 환희의 신대륙이 보일는지도?

 

* 이봉수 : 강원도 춘천에서 쓰다 버린 냄비, 주전자, 깡통 등을 활용한 친환경 재활 공예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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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曲 석창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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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나이, 22,900V의 청천벽력에

두 팔 몽땅 잃고서

예술혼 스민 거미 팔을 장착하게 된

 

함께 잘라내야 했던 발가락 두 개의 足印이

도마 안중근 선생의 手印만큼이나

의미심장한

 

배달 魂의 웅비가 된

 

무명 엔지니어에서 유명 예술가로

장애를 오히려 장점으로 승화시킨

 

백절불굴, 절대 귀감의

 

어린 아들이 몸져누워 있는 아빠께 그림을 부탁하자

아들의 동화 속 후크선장처럼 당당하겠노라, 갈고리에 붓 걸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데

 

* 金曲(금곡) : 그의 서예 스승인 여태명 선생(원광대 미대 교수)께서 지어준 호(號)로 금란지교(金蘭之交; 금처럼 견고하고 난초처럼 향기로운 사귐)에서 '金' 자를, 곡굉지락(曲肱之樂; 베개마저 없어서 팔을 구부려 베고 잘 정도이지만 청빈에 만족하며 도를 닦는 즐거움)에서 '曲' 자를 각각 따와 지은 것이라 한다.

** 후크선장 : 제임스 매슈 배리의 희곡 《피터팬》에 나오는 해적선 선장으로 애꾸눈에다 한쪽 팔이 잘려 갈고리를 하고 있다.

 

 

 

 

 

 

어버이 흙으로 돌아가시다

 

 

 

우리 집은 무학산과 마주한

신비봉 산 아래 자리하고 있다

무학(舞鶴)과 신비(伸臂) 양 산자락에 조막 땅 일구며

평생 사셨던 우리 아배 어매

 

이제 그 산자락 흙이 되어 누우셨네

무학 산세 따라 멋지게 날아오르진 못하셨다지만

신비의 덩실한 춤 한번 춰보지 못하셨다지만

뭇풀들이 그러하듯 아무렇게나 돋아 제멋대로 자라는

잡풀로 기꺼워하며 살다 살다 가셨네

 

평생 그러셨듯 무학산 흙이 되었어도

나를, 우리를 그윽이 지켜보고 계실 거네

신비의 춤사위로

에워 에워 보우하고 계실 거네

 

* 무학산, 신비봉 : 울산 울주군 망성리를 에워싸고 있는 산(山).

** 신비(伸臂) : [무용] 정대업지무(定大業之舞 : 종묘 제례 때 추던 춤의 하나)에서, 팔을 아래로 비스듬히 곧게 뻗으며 그쪽을 내려다보는 춤사위.

 

 

 

 

 

 

자꾸 눈물이 난다

 

 

 

환갑을 넘어서니 자꾸 눈물이 난다

여태 익숙했던 것들에게서 짜증이 인다

뜬금없는 이골이 불쑥불쑥 출몰한다

앞사람도 옆 사람도 눈물 너머 겹눈으로 보게 만드는

배전(背轉)의 안절부절을 강요당한다

안과에선 대수롭지 않게 안구건조증이라며

인공눈물을 처방해 주는데

그거 넣느라 고개 젖혀 하늘 올려다보노라면

중원에서 날아온 인공강우가 모래알이 되어

뚝뚝 떨어지는데

불과 수십 년 만에 극빈국에서 졸부국으로

옷 갈아입은 황하의 누런 거드름이

집적집적 눈알을 건드리는데

하늘 올려다보기가 왜 이리 비위를 긁어 대는 걸까

지천명 이순도 지나 종심이 코앞인데

천계(天界)의 뿌연 안개 왜 자꾸 날 가로막는 걸까

아슴한 저 너머가 저승 길목 어리중천일 테고

그 어디쯤 먼저 간 이들이

아른아른 날 부르는 것만도 같은데

 

 

 

 

 

 

노후

 

 

 

이제 다람쥐는

 

쳇바퀴를 돌리지 않아도 된다 한다

그래서 멈춰버린 쳇바퀴의 멍멍한 아침을

또 맞게 된다

 

하늘 올려다보며

이미 떠난 너는 아주 행복한 거지?

묻기도 한다

 

가끔, 쳇바퀴에 남아 있던 관성이

다람쥐를 돌리기라도 하는 날이면

띵~~ 아주아주 어지럽다

 

아주 정말, 얼른 하차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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