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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슬의 詩내기

돈오돈오 외 1편 / 2022 올해의 대표작/ 울산작가회의

by 정소슬 posted Dec 26, 2022

돈오돈오

 

 

 

내가 내가 아님을, 알았네

우리가 우리가 아님을, 알았네

내 것이 내 것이 아님을, 알았네

친구가 친구가 아님을, 알았네

적이 적이 아님을, 알았네

 

평화가 평화가 아님을

자유가 자유가 아님을

행복이 행복이 아님을

 

다 알아버렸네

 

나를, 우리를

돼지와 까마귀로 여겨온 것들의

 

밀가루와 강냉이와 디디티와 판초와 워커와 총과 총알 크레모아 지뢰 기뢰 로켓 미사일 탱크 코브라 아파치 스텔스 패트리어트 최근의 평택 병창과 성주 사드와 제주 강정의 핵항모 핵잠수함에 이르기까지 온갖 쇠붙이들의 시커먼 민낯을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하리니!)

 

문득 깨쳐버렸네

 

 

* 돈오돈오(頓悟豚烏) : 박황재형 화백의 수묵담채화집 『돈오돈오-'문득 깨친 돼지와 까마귀'』(2018년, 리좀)에서 인용함.

 

 

 

 

 

 

광화문 수루에 들리는 일성호가

 

 

 

한때 이 말이 광화문의 밤을 시뻘겋게 불태웠다

"나라가 왜 이래? 이게 나라냐?"

충무공 동상 아래 운집했던 일천칠백만 촛불 민의가 언제였던가 싶게 식어버린 밤들,

장군의 '한산도가'를 되뇌는 날이 잦아지는데

 

-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戍樓)에 홀로 앉아

- 큰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 어디서 일성호가(一聲胡 )는 나의 애를 끊나니

 

촛불정권 5년이 걷어내려 애태웠던 외탁(外託) 흔적을

단번에 복구해놓은 이 정권을 볼라치면

물 건너온 해적 떼에 능욕당하던 그때와 무엇이 다르랴, 분명 장군의 큰칼이

 

치떨며 들었을 '일성호가'는

내게도 들려

 

너무 똑똑히 들려

 

귓전을 후려치며 파고든 토착왜구 피리소리에

나의 애는 끊어지고 또 끊어져

도무지 잠 이룰 수 없는 밤들이나니

 

 

 

 

 

2022올해의대표작.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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