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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슬의 詩내기

징후, 냄비 속의 개구리 외 1편/ 울산작가34호

by 정소슬 posted Oct 26, 2022

징후, 냄비 속의 개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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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붓을 들고 호박밭을 돌아다니고 있다

호박꽃 꽃잎마다 노란 강제 키스를 시키고 있다

어릴 적 암소 등을 기어오르는 거대 수소를 숨어 지켜보며 키득거리던 늙은 소녀의 야릇한 붓질이

자못 비장하다

그런데 나는 강물 위 물고기 사체를 건져내는 모습과 오버랩 되어 숨이 막혀온다

이미 턱밑까지 다가온 생태교란의 현장, 극지의 빙하가 날로 줄어들고 있다는 뉴스 속에

들에선 벌이 사라지고 강 위로 괴이한 물고기가 떠오르고 바다엔 해조류 폐사 원인인 백화현상이 나날 확산 중이다

문명이란 이름으로 마음대로 훼손·왜곡·변형으로 누려온 인류에 대한 반격이고 응징이다

이 응보는 몇 해째 마스크를 벗지 못하는 이유와도 깊이 연결되어 있을 것이니

마스크 속 더위가 더욱 숨 막혀오는 요즈음, 기습 폭우라도 쏟아지면 수정 못한 호박 꽃잎들은 어디로 떠내려가 처녀 물귀신 되어 떠돌까

이미 물고기 사체에 노랗게 발린 튀김이 되어

식탁 위의 우리 입맛을 조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이 아닌

'아직도' 이 말만이 정답인 듯하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지금이 가장 빠른 때다!"

 

 

* 늦었다고 생각하는 지금이 가장 빠른 때다 : 울산대 김구한 교수의 《울산연안 사라진 해안마을》 강의의 종결 부분에서

 

 

 

 

 

 

 

징후, 나는 자연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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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에는 쥐가 살고요 벽에는 개미와 지네가 살아요 추녀 아래 벌집이 지어져 원주민 거미들과 실랑이를 벌여요 집안 텃밭엔 뱀이 살고요 감나무엔 새들이 새벽부터 재잘거려요 집 뒤 산자락엔 멧돼지와 고라니가 살면서 가끔 내 텃밭 채소들을 건드려요 원래 그들 땅이었으니 그 정도야 참을만해요 서로 프라이버시만 존중해 준다면

 

더없이 평온한 이 동네, 나는 자연 친화적인 소위 '자연인'인데

 

추녀 아래 빌라를 축성했던 벌들에게 문제가 생겼나 봐요 주민이 하나둘 줄어들더니 텅 빈 빌라가 되고 말았거든요 거미들 텃세가 좀 심하다 싶더니 이 사단이 벌어졌구나 여겼는데, 애걔 매년 봄이면 산자락에 벌통을 놓는 양봉업자 최 씨가 헐레벌떡 달려와 내게 달려들었어요 내가 뿌린 농약이 그의 벌들을 몽땅 죽였노라고 친환경 어쩌고가 아니라 고가의 농약 살 돈 없는 내 처지를 너무 잘 아는 최 씨가 미웠어요 처마 밑 가리키며 우리 집 벌들도 모두 떠나버렸다며 등 토닥여 돌려보낼 도리밖에 없었어요 결국 최 씨는 떠나갔어요 다시는 이 동네 발 들일 거 같지 않은 표정이었어요

 

어쩌나요, 맹꽁이 울음소리는 들은 지 오래고요 안마당을 엉금엉금 기어 다니던 두꺼비가 통 보이질 않아요 곰 호랑이 표범 삵 여우들은 그림책이나 동물원에 가야 볼 수가 있고요 샛강에 종개 동사리 미꾸리는 없고 붉은 이끼와 폐사한 붕어만 둥둥 떠다녀요 여름밤의 진경이었던 반딧불이를 우리 애 손자들은 그저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얘기로만 여겨요 불과 반세기 전 풍경인데 말이에요

 

더없이 자연 친화적인 내 프라이버시조차 이젠 간당간당 숨 막혀와요!

 

 

 

울산작가3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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