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정소슬의 詩내기

타타타 외 3편 / 곰솔문집4

by 정소슬 posted Aug 23, 2020
타타타




시골 길모퉁이 삐뚜름 대진 자동차 위로
산비둘기 한 마리 날아올라 보닛을 쪼고 있다
동안거에 든 감나무엔 가지만 앙상하고
언제 떨어졌는지도 모를 홍시가
까맣게 굳어 있는데 그걸 파먹느라
타타타, 안간힘이다
저러다 보닛에 구멍내겠네 말리려다 보니
자동차 바퀴가 반이나 내려앉아 있다
비둘기보다 더 배고팠던 길바닥이
바퀴의 반을 베어먹은 모양인데 그 위
냉큼 올라탄 비둘기가 보닛을 내리 쫄 때마다
타타타, 차체가 신음한다
애써 배 채운 진여의 속살이
산비둘기 울음으로 게워져 나온다

*. 타타타(tathata) : 산스크리트어로 있는 그대로의 것, 진여(眞如).

2034418964_kD49tyi0_09103-2.jpg
*. 이미지 : 이재효 작가의 조각품 http://www.leeart.name/ 에서
                   http://www.soseul.pe.kr/xe/Aura/141019



때묻은 콘돔




단두대로 쓰였음직한 시골의 똥통 위에
아랫도리를 까고 앉으면
나는 비로소 내 금단의 꼭두를
똑바로 내려다본다
누가 내 본능의 주둥이에다
저토록 두꺼운 콘돔을 씌웠을까
아무리 뜯어봐도 그저 거추장스러울 뿐인데
딴에 사내라고 발딱 세운 오줌발이
콘돔을 찢어발기고 똥통의 두덩을 비벼댈 때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얄궂은 쾌감이
불알 밑을 슬금슬금 쓰다듬는데
피둥피둥 살찐 구더기가
내가 배설한 비밀들을
하나하나 해체하는 걸 내려다볼 때면
나는 더없이 시원하다




나는 덥다
- 때묻은 콘돔·2



8월 폭염에도
거듭 옷을 껴입는 나무는
모를 거다 나는 덥다
치부를 가린 한 겹 조막 천마저
이토록 더운 줄 저 나무는 모를 거다
땅의 음부를 핥아대는 저 땡볕인들 알까
치부마다 가린 관습의 옷이
얼마나 두꺼운지 얼마나 거추장스러운지
나는 벗고 싶다
벗어 던지고 싶다
훌훌 벗고서
강바람과 산그늘에 씻기고 싶다

냇물처럼
물렁물렁해지고 싶다

아무렇게나
청이야 녹이야 흐르고 싶다




몽돌의 심장을 도려내고
- 때묻은 콘돔·3



엉덩이가 닳아 항문이 사라진 돌
간도 쓸개도 다 빠져나가고
심장 하나 달랑 싸안은 채
득도한 스님처럼 드러누운 돌
애초 어미 젖 떼어낼 때 잘려버린 입
그래서 항문도 필요 없었을 거다
오로지 세월을 감내할 심장만이 필요했을 돌
마모의 쾌감 그 하나로 존재를 확인해왔을 돌
세상을 독점할 꿈뿐인 남근처럼
몽니만이 대가리에 남아 반질대는 돌

오늘, 그 몽돌의 심장을 도려내고
그 자리 항문을 끼워 넣고
퇴화한 성감대를 자극하며
일 억 년만의 배설과 소통한다

어머니, 억 년을 그리워 해온 어머니
애초 리비도의 욕동慾動에 탯줄을 물려 나를 키우셨던 어머니
그래서일까, 금단의 원원元元이 되신 어머니
어머니 자궁에는 아직도 제 자리가 비워져 있나요
도려낸 이 심장으로 잘려나간 남근을 만들어주실 모루와 풀무가 남아있나요
풀무질 요란할 화덕이 코토팍시산 마그마처럼 들끓고 있는지요
나의 영원한 주인이신 어머니
혼돈과 배덕을 기꺼이 품어 안으시고
오로지 대지의 풍요만을 염원했던 가이아 여신이여
내 영혼의 유택遊宅, 무한 사랑의 궁극이시여!

*. 리비도(Libido) : 사람이 내재적으로 갖고 있는 성욕. 또는 성적 충동. 프로이트(S. Freud) 정신분석학의 기초 개념으로, 이드(id)에서 나오는 정신적 에너지, 특히 성적 에너지를 지칭한다.
**. 욕동(慾動, drive) : 프로이트의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The Three Essays on the Theory of Sexuality)」에 등장한 용어로, 정신과 신체 사이의 접경 개념으로, 유기체의 내부에서 생겨나 마음에 도달한 자극들에 대한 표상이라 정의하였다.
***. 코토팍시산(Cotopaxi山) : 남아메리카 에콰도르 중부 안데스산맥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활화산. 높이는 5,897미터.
****. 가이아(Gaea)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 태초의 신 카오스(Chaos, 혼돈의 신)의 딸이자 그의 아내. 가이아는 어머니 신이어서 아버지 카오스는 물론 여러 아들들과 손자들까지도 남편으로 맞아 많은 자식들을 생산하였다. 신화 속 가이아의 배우자로는 카오스(부), 타르타로스(자), 우라노스(자), 폰토스(자), 오케아노스(자), 아이테르(조카뻘), 포세이돈(손), 제우스(손) 등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




?

최근 발표작

recently announced Poem /

  1. 31
    Oct 2020
    07:15

    피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외 1편 / 울산작가30호

    피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 비대면의 비대칭 대화법 비대칭이란 말, 귀에 못 박힌 지 오래지 생소한 비대면이란 말까지 이렇게 횡행할 줄이야 초유의 생면부지와 나날 싸워야 하는 우린 모두 비대칭으로 기운 저울 위에 올라앉았어 서로 입술도 보지 않고 말해...
    By정소슬 Views2
    Read More
  2. 23
    Aug 2020
    15:24

    타타타 외 3편 / 곰솔문집4

    타타타 시골 길모퉁이 삐뚜름 대진 자동차 위로 산비둘기 한 마리 날아올라 보닛을 쪼고 있다 동안거에 든 감나무엔 가지만 앙상하고 언제 떨어졌는지도 모를 홍시가 까맣게 굳어 있는데 그걸 파먹느라 타타타, 안간힘이다 저러다 보닛에 구멍내겠네 말리려다 ...
    By정소슬 Views5
    Read More
  3. 29
    Jul 2020
    23:01

    그놈의 죽여주는 물건 외 1편 / 민족작가연합

    그놈의 죽여주는 물건 그놈, 물건 하나는 좋다고들 하더군 우람하고 거칠기까지 하여 그 위용에 단번에 반한다더군 소위 '죽여준다'는 말, 그 말의 원조라지 아마 그놈하고 놀아본 사람은 안다더군 죽여준다는 게 어떤 맛인지 얼마나 짜릿한지 그 짜릿함에 다...
    By정소슬 Views7
    Read More
  4. 09
    Jul 2020
    13:44

    시인인 척의 시인 외 1편 / 계간 《사이펀》 2020년 가을호

    시인인 척의 시인 시 아닌 시를 시처럼 쓰는 나는 시인이 아니다 시인인 척이다 시라는 병상에 시인인 양 누운 환자이다 동병상련을 앓는 동지가 시집을 묶어 곱게 사인까지 하여 보내올 때면 눈물이 난다 말기 암환자가 거울 건너에 누운 자신의 몰골을 들여...
    By정소슬 Views10
    Read More
  5. 22
    May 2020
    09:26

    민족의 참 꽃, 진달래 / 울산민예총 걸개 시화전

    민족의 참 꽃, 진달래 - 3.1 만세혁명 100주년에 부쳐 봄은 그냥 오지 않았다 살 에는 고통과 심장 타는 울분으로 왔다 산에서 들에서 달래달래 터진 외침, 그 함성으로 왔다 멍울멍울 치든 의분, 그 피눈물로 왔다 살 찢긴 뚝, 뚝, 핏물로 왔다 시붉게 희붉게...
    By정소슬 Views10
    Read More
  6. 22
    May 2020
    09:22

    노을 단상 / 광주항쟁40주년 걸개 시

    노을 단상 - 2004년 망월묘역에서 퀭한 달빛만이 우리의 희망이었나 우리가 기댈 유일함이었나 당시 횡행했던 캄캄한 말들 산하를 장악한 시커먼 터무니들이 골목골목 기어 다니고 그에 맞서던 어린 혈기들이 무자비 도륙당하던 밤 참혹했던 그 밤 날뛰는 심장...
    By정소슬 Views5
    Read More
  7. 15
    May 2020
    19:53

    그의 근황 외 1편 / 울산작가29호

    그의 근황 돈이 아니지 사랑도 아니지 느슨한 여유일 때도 있고 심심한 군맛일 때도 있고 바람 한 자락에 풍덩, 우수에 빠지고 마는 낭만일 때도 있지 꽤 되었지 오랜 퇴적에 깔려 생 화석이 되고만 거야 슬그머니 발 긁으며 다가서는 풀벌레소리를 숨 저미게 ...
    By정소슬 Views14
    Read More
  8. 30
    Apr 2020
    11:36

    노을단상 외 1편 / 5.18광주민중항쟁 40주년 기념시집

    노을 단상 - 2004년 망월묘역에서 퀭한 달빛만이 우리의 희망이었나 우리가 기댈 유일함이었나 당시 횡행했던 캄캄한 말들 산하를 장악한 시커먼 터무니들이 골목골목 기어 다니고 그에 맞서던 어린 혈기들이 무자비 도륙당하던 밤 참혹했던 그 밤 날뛰는 심장...
    By정소슬 Views18
    Read More
  9. 30
    Apr 2020
    11:28

    아그들아! 외 1편 / 민족작가 2020

    아그들아! 일찍이 시궁창이 고향이었던 아그들아 시궁 추깃물로 배 채우던 버릇 버리지 못해 여짓 민심 겁탈에 혈안인 조폭 쪼가리들아 몽니 하나로 판 갈아엎겠다 밤낮 설쳐대는 모질이들아 거짓말로 밥을 짓고 감언이설로 상 차려온 구린내들아 걸핏하면 성...
    By정소슬 Views12
    Read More
  10. 25
    Nov 2019
    12:18

    하이힐 외 1편 / 울산작가28호

    하이힐 뾰족한 너의 높이를 옆구리 깊숙이 끼고 걷던 그 때만 해도 우린 행복했지 혹여 헛디딜까봐 엇길 들까봐 숨죽여 걷던 너의 발걸음 오직 예뻤니 오직 숨 깊었니 한 치라도 옆길로 눈 돌릴까봐 뾰족이 각을 세워야 했던 너에 대한 보호본능이 아직 풀리지...
    By정소슬 Views43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Next
/ 5

본 홈페이지는 XE 엔진sketchbook5 layout & board로 제작되었으며, 모니터 사이즈 1280x800 이상이면 무난히 볼 수가 있습니다.
Copyright ©2000 정소슬 All Rights Reserved. RSS
E-mail : moreunduk@hanmail.net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