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정소슬의 詩내기

친구가 친구에게 외 4편 / 곰솔문집3

by 정소슬 posted Oct 31, 201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친구가 친구에게

- 인터넷에서



Who are You.jpg


친구가 친구에게

친구하자 쿡쿡 찔러 오는데

친구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누를까 말까 손 내밀까 말까

친구면 이미 친구인데

왜 새삼 친구하잘까 의심도 되고

초인종소리에 문 열고 나가보면

물 한잔만! 하며 들이닥치는 포교원에 외판원에

무작위 정보집달관까지

조심 또 조심하여도 뒤통수 간수가 쉽잖은 세상

화끈하게 손 내밀지 못하는 내 처신이

미안하기도 하고 한탄스럽기도 하여

때아닌 민망함으로 낯 붉어지던 그 인사가

갑자기 그리워진다


사랑합니다 고객님!







망상해수욕장에서





팔월 하순, 망상해수욕장에 와

망상을 본다

늦여름의 허무맹랑을 본다

여기 오면 색다른 오기가

갱년기에 베 먹힌 나의 무감각을

처음 것처럼 리모델링 해놓으리 여겼었는데

신경통 도진 해변만이

만취한 취객처럼 널브러져 있다

짐 풀기도 전, 작달비 떨어진다

모래톱의 늙은 두덩 위로

폭 폭 음란한 소리를 내며 정자를 뿌려댄다

무저항으로 누운 수평선은 건성으로 헐떡대고

살 비린내 휘몰아치는 파도에

타래 풀린 염문만 하염없이 떠내려간다

팔월 하순, 도섭질이 외딴치고 떠난

망상을 본다

늦여름의 허무맹랑을 본다







조강지처가 집을 나갔다





배신 격노 분통 적개로부터 시작된

갈팡질팡 안절부절 초조불안을 거쳐

후회 포기 패닉 단념에 이르기까지 그리 길지 않았다

한나절도 안 걸렸다 한 시간이면 족했으니

너무 바쁘니까 너무 급하니까 너무 절실하니까 등등은

상업적 주술에 낚인 상투적 변명일 뿐

애당초 그렇게 맹신맹종 살 일이 아니었던 거다

그토록 많은 걸 걸지 말았어야 했던 거다


갈아치우자 결심하고 나니 오히려 후련해지는

색다른 꿈이 환하게 꾸어지는

야릇하기 그지없는

두 해마다 갈아치울 권한까지 덤으로 주어지는

방탕할 이 권리는 도대체 무엇인가

파혼 선언과 동시에 재혼 서약이 이루어지는

얄궂은 이 편리 이 호의는 또 무엇인가

분명 일탈 조장이고 풍기 문란 방조의 죄악이거늘

낯가림도 없이 나는

승낙 사인을 갈겨대고 있었으니


명확한 불륜의,

명명백백 미필적고의의,

생면부지와의 낯뜨거운 밀약, 새 손전화와의







윈도우스트라이크(window strike)

- 유리의 투명에 대하여




결코 나를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었을

너에 대한 염탐이 목적이었을

쌍방 투명한 소통은 가당치도 않았을

오로지 나를 방호하고

내 속내를 은폐하기 위함이었을


그래서 더 교묘한 색으로 위장까지 하게 되었을

그래서 너에겐 더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을


그, 투명 유리에

오늘도 새 한 마리 날아와 죽어있다

온통 길뿐인 길 위에서

길 아닌 길만 죽어라 뚫다가

저승으로 난 길을 건드려버린, 그래서

아차차 열리고 만


사방이 유리벽인 건물에서야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

또 죽었군! 덤덤히 사체를 치우는데

제법 큰 덩치의 비둘기라 치우기가 애젖하다

한땐 이 새를 평화의 상징으로 일컬었는데

길바닥엔 평화라는 해묵은 슬로건이 뭉떵뭉떵 뽑혀

어지러이 나뒹굴고

얼마나 세차게 박았을까 부러진 부리 옆으로

시붉은 비명 낭자하다


애초 너에겐 평화가 없었지!


이 유리를 만든 인간도 때로 열린 길로 착각해

머리 터지기 다반사이거늘

평화인 양

마치 그 통로처럼 위장된

유리의 정체를 알리 없는 너야말로 오죽했을까


열어도 열어도 도무지 열리지 않았을

끝없이 반복되는 클라인의 항아리 같았을

덫이라 해야 마땅할


투명이라는 이름의

일방통행형 평화, 사기성 장벽, 그 올무의

질식할

담소자약談笑自若의 속삭임







낮술경제학

- 매슬로우의 '욕구위계이론'




낮술에 취한 좁은 골목길,

잔다ㄹㅋ°모텔 앞 백일홍의

놀다 가! 자고 가! 낯뜨거운 추파에

발끈 달아오르는 취기를

모텔 년 검은 입술이 막무가내 핥아댄다

시커먼 창유리에 낚아 채인 하느님도

그녀의 유혹 뿌리치기 힘들었던 듯

젖은 장삼처럼 들러붙어 후들대는데

먹고 자고 싸는 우리의 기본 생리들이

호객꾼으로 늘어선 반라의 통속通俗들에 둘러싸여

실랑이를 벌인다


휴식이 곧 생산성이고 품질이고

고품격 경제의 부가가치라고

자아실현의 원동력이라니까

글쎄, 인간 욕구는

내 매트의 펀펀(fun fun)함 위에서 실현된다는

'매슬로우 이론', 알아? 몰라?


이봐 블랙타이, 놀다 가! 자고 가! 응??


*. 욕구위계이론 : 미국 심리학자 매슬로우(1908-1970, Abraham H. Maslow)가 주장한 이론으로, 인간의 욕구 피라미드에서 아래부터 생리욕구, 안전욕구, 애정·소속욕구, 존경욕구, 자아실현욕구 등 5단계로 하위 욕구가 적당히 충족되어야 다음 단계 욕구로의 동기유발이 된다는 논리의 학설이다.



gomsol3_cover.jpg



?

최근 발표작

recently announced Poem /

  1. 09
    Jul 2020
    13:44

    티눈 외 1편 / 계간 《사이펀》 2020년 가을호

    시인인 척의 시인 시 아닌 시를 시처럼 쓰는 나는 시인이 아니다 시인인 척이다 시라는 병상에 시인인 양 누운 환자이다 동병상련을 앓는 동지가 시집을 묶어 곱게 사인까지 하여 보내올 때면 눈물이 난다 말기 암환자가 거울 건너에 누운 자신의 몰골을 들여...
    By정소슬 Views0
    Read More
  2. 22
    May 2020
    09:26

    민족의 참 꽃, 진달래 / 울산민예총 걸개 시화전

    민족의 참 꽃, 진달래 - 3.1 만세혁명 100주년에 부쳐 봄은 그냥 오지 않았다 살 에는 고통과 심장 타는 울분으로 왔다 산에서 들에서 달래달래 터진 외침, 그 함성으로 왔다 멍울멍울 치든 의분, 그 피눈물로 왔다 살 찢긴 뚝, 뚝, 핏물로 왔다 시붉게 희붉게...
    By정소슬 Views5
    Read More
  3. 22
    May 2020
    09:22

    노을 단상 / 광주항쟁40주년 걸개 시

    노을 단상 - 2004년 망월묘역에서 퀭한 달빛만이 우리의 희망이었나 우리가 기댈 유일함이었나 당시 횡행했던 캄캄한 말들 산하를 장악한 시커먼 터무니들이 골목골목 기어 다니고 그에 맞서던 어린 혈기들이 무자비 도륙당하던 밤 참혹했던 그 밤 날뛰는 심장...
    By정소슬 Views3
    Read More
  4. 15
    May 2020
    19:53

    그의 근황 외 1편 / 울산작가29호

    그의 근황 돈이 아니지 사랑도 아니지 느슨한 여유일 때도 있고 심심한 군맛일 때도 있고 바람 한 자락에 풍덩, 우수에 빠지고 마는 낭만일 때도 있지 꽤 되었지 오랜 퇴적에 깔려 생 화석이 되고만 거야 슬그머니 발 긁으며 다가서는 풀벌레소리를 숨 저미게 ...
    By정소슬 Views5
    Read More
  5. 30
    Apr 2020
    11:36

    노을단상 외 1편 / 5.18광주민중항쟁 40주년 기념시집

    노을 단상 - 2004년 망월묘역에서 퀭한 달빛만이 우리의 희망이었나 우리가 기댈 유일함이었나 당시 횡행했던 캄캄한 말들 산하를 장악한 시커먼 터무니들이 골목골목 기어 다니고 그에 맞서던 어린 혈기들이 무자비 도륙당하던 밤 참혹했던 그 밤 날뛰는 심장...
    By정소슬 Views7
    Read More
  6. 30
    Apr 2020
    11:28

    아그들아! 외 1편 / 민족작가 2020

    아그들아! 일찍이 시궁창이 고향이었던 아그들아 시궁 추깃물로 배 채우던 버릇 버리지 못해 여짓 민심 겁탈에 혈안인 조폭 쪼가리들아 몽니 하나로 판 갈아엎겠다 밤낮 설쳐대는 모질이들아 거짓말로 밥을 짓고 감언이설로 상 차려온 구린내들아 걸핏하면 성...
    By정소슬 Views5
    Read More
  7. 25
    Nov 2019
    12:18

    하이힐 외 1편 / 울산작가28호

    하이힐 뾰족한 너의 높이를 옆구리 깊숙이 끼고 걷던 그 때만 해도 우린 행복했지 혹여 헛디딜까봐 엇길 들까봐 숨죽여 걷던 너의 발걸음 오직 예뻤니 오직 숨 깊었니 한 치라도 옆길로 눈 돌릴까봐 뾰족이 각을 세워야 했던 너에 대한 보호본능이 아직 풀리지...
    By정소슬 Views36
    Read More
  8. 25
    Nov 2019
    12:14

    옛날엔 외 2편 / 울산민족문학17호

    옛날엔 밭 나간 어머니 저녁밥 지으러 오시는 길에 머리 가득 이고 온 노을로 불 지펴 밥을 짓고 방도 데우고 꺼먹밤에야 돌아오시던 아버지 한 지게 철철 어둠을 지고 와선 방마다 깔아두고 그 속으로 도깨비 껴들까 봐 우리 잠들 때까지 새끼를 꼬면서 밤새 ...
    By정소슬 Views30
    Read More
  9. 25
    Nov 2019
    12:06

    나석주 / 독립운동가 기림시선2

    나석주 우리의 민중을 깨우쳐 강도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민족의 신생명을 개척하자면 양병 10만이 폭탄을 한 번 던진 것만 못하며, 천억 장의 신문 잡지가 한 번의 폭동만 못할지니라. - '조선혁명선언서(1923년 1월, 신채호 작성)' 중에서 황해도 재령 출...
    By정소슬 Views34
    Read More
  10. 31
    Oct 2019
    19:53

    친구가 친구에게 외 4편 / 곰솔문집3

    친구가 친구에게 - 인터넷에서 친구가 친구에게 친구하자 쿡쿡 찔러 오는데 친구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누를까 말까 손 내밀까 말까 친구면 이미 친구인데 왜 새삼 친구하잘까 의심도 되고 초인종소리에 문 열고 나가보면 물 한잔만! 하며 들이닥치...
    By정소슬 Views30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Next
/ 4

본 홈페이지는 XE 엔진sketchbook5 layout & board로 제작되었으며, 모니터 사이즈 1280x800 이상이면 무난히 볼 수가 있습니다.
Copyright ©2000 정소슬 All Rights Reserved. RSS
E-mail : moreunduk@hanmail.net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