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정소슬의 詩내기

광어

by 정소슬 posted Mar 12, 2017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광어
- 故 백남기 선생 영전에



94719_19788_1756.jpg


그 날도 촛불로 도심을 옴팍 불사르고 오던 밤이었다 이미 자정이 넘었지만 행렬에 동참한 열기가 가게마다 성황이어서 우린 겨우 어느 허름한 횟집에다 자리를 잡아야 했는데
이런 날은 도다리를 뼈 째 썰어 먹는 새꼬시여야 한다는 쪽과, 얼마 전 운명하신 광장 어르신의 소천식을 겸해야 한다는 쪽으로 나눠 옥신각신했으나 결국 후자의 포레족 전통의식을 행하기로 타결보았으니

쟁반 상여에 담겨 나온
오롯한 광어, 참 넓다 참 넓기도 하여
떠나면서까지 풍요로운 보시를 행하시는
광장 어르신의 대자대비 옆으로 비장하게 둘러앉은
동지들 눈 눈에 벌써 눈물 글썽인다
오로지 바닥에서 왼쪽만 바라보며 살아온 일생의
슴벅슴벅한 눈에선 아직 결기가 넘쳐흐르고
굳게 다문 묵적의 입에선
포기하지 마라! 져주지 마라! 기어코 이기리!
생전의 구호들 선연하다
결코 닫지 못할 저 큰 귀로는
우리들의 조곡 낱낱 듣고 있음을 알기에
혀끝에 씹히는 살점 살점의 맛이
도다리 가시 맛보다 아프고 쓰라리고 뼈저리다
누가 제 아비의 살점을
이토록 뽀도독뽀도독 씹어 먹어야 하나
찢고 찧어 달게 삼켜야 하나
고추냉이에 발린 눈물을
어항 속 도다리가
숨어서
숨 졸이며 보고 있다

* 포레(Fore)족 : 죽은 이의 용맹성을 기리기 위해 친족에 대한 식인풍습이 최근까지 성행해왔다 전해지는 남태평양 파푸아뉴기니의 한 부족.

- 천만촛불광장의 시 『촛불은 시작이다』(2017, 도서출판b)

x9791187036180.jpg



Who's 정소슬

profile

브랜드 : 정소슬
메이커 : 1957년식 울산 産
성능/직업 : 비정규직
취미 : 긁적이기, 똥폼으로 사진 찍기
잡기 : 음치, 몸치, 길치... 등 중증 치과환자

?

최근 발표작

recently announced Poem /

  1. 16
    Aug 2018
    09:53

    나는 만고 역당 신라의 후손이로소이다

    나는 만고 역당 신라의 후손이로소이다 - 이 몸에 묻어있는 비루鄙陋에 대하여 상고도읍 아사달에서는 오늘도 단군왕검님께서 내려다보고 계신다! 홍익인간 재세이화 왕검조선 개천으로부터 해모수 최숭 고두막한 해부루 등등 군웅할거와 고주...
    By정소슬 Views82
    Read More
  2. 15
    Jun 2018
    07:53

    오늘은 현충일

    특집 | 시인들이 상상하는 통일! 통일! 오늘은 현충일 나의 용기가 너의 정의를 짓밟지 않았는지? 나의 분기가 너의 의기를 막아서지 않았는지? 지금은 반성의 시간. 서로를 용서할 시간. 다함께 악수, 그리고 뜨거운 포옹! ...
    By정소슬 Views83
    Read More
  3. 02
    Apr 2017
    10:29

    광어

    광어 - 故 백남기 선생 영전에 그 날도 촛불로 도심을 옴팍 불사르고 오던 밤이었다 이미 자정이 넘었지만 행렬에 동참한 열기가 가게마다 성황이어서 우린 겨우 어느 허름한 횟집에다 자리를 잡아야 했는데 이런 날은 도다리를 뼈 째 썰어 먹는 새꼬시여야...
    By정소슬 Views115
    Read More
  4. 02
    Apr 2017
    10:25

    티눈

    티눈 발바닥 굳은살이 살 속으로 파고들어 도저히 걸을 수 없게 되고서야 알았네 내 밑바닥에 잠자고 있던 없는 듯이 감겨있던 이미 퇴화한 걸로 착각했던 바닥의 눈에 핏대가 서서 틔눈 하게 되면 얼마나 무서운지를 - 계간 《사이펀》2017년 봄호
    By정소슬 Views97
    Read More
  5. 12
    Mar 2017
    17:08

    광어

    광어 - 故 백남기 선생 영전에 그 날도 촛불로 도심을 옴팍 불사르고 오던 밤이었다 이미 자정이 넘었지만 행렬에 동참한 열기가 가게마다 성황이어서 우린 겨우 어느 허름한 횟집에다 자리를 잡아야 했는데 이런 날은 도다리를 뼈 째 썰어 먹는 새꼬시...
    By정소슬 Views90
    Read More
  6. 17
    Feb 2017
    11:52

    논두렁 풀을 베면서

    논두렁 풀을 베면서 - 땅의 권리장전 퍼렇게 자란 논두렁 풀을 벤다 벤다는 건 살생본능의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분출하는 일 죄뿐인, 부실부실 죄밖에 키우지 못한, 죄 많은 풀이 뎅겅뎅겅 목이 잘려 의문의 변사체가 된다 무리 지어 남의 영역을 함부...
    By정소슬 Views142
    Read More
  7. 19
    Dec 2014
    21:21

    이런 기막힌

    이런 기막힌 초등학교 시절 장마 폭우로 등굣길이 사라져버렸을 때 이런 기막힌 슬픔이 있을까 했다 사실은 갑자기 나타난 즐거움이 신기하기만 하였다 엄혹했던 군 복무 시절 군 최고통치권자였던 대통령 서거 소식에 이런 기막힌 슬픔이 있을까 했다 사실은 ...
    By정소슬 Views909
    Read More
  8. 02
    Dec 2014
    11:07

    염낭거미

    염낭거미 고래의 몸통을 파, 그 속에 거미집 짓고 번쩍번쩍 가구들 들여놓고 샹들리에 늘어뜨린 대리석 식탁에 앉은 그들은 파낸 살점으로 날마다 산해진미의 잔치를 벌인다 그렇게 날마다 잔치가 벌어지건만 그들 뱃가죽과 함께 나날 ...
    By정소슬 Views1068
    Read More
  9. 11
    Jun 2014
    11:54

    고래

    고래 그의 몸통을 파, 그 속에다 집을 짓고 번쩍번쩍한 가구들 다투어 들여놓고 샹들리에 늘어뜨린 대리석 식탁에 앉은 그들은 파낸 살점으로 날마다 산해진미의 잔치를 벌인다 그렇게 날마다 잔치가 벌어지건만 그들 뱃가죽과 함께 나날 늘어나...
    By정소슬 Views712
    Read More
  10. 20
    Apr 2014
    09:53

    맹골수도(孟骨水道) 급류 아래

    맹골수도(孟骨水道) 급류 아래 -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며 맹골수도(孟骨水道) 급류 아래 숨막히는 먹먹한 하루가 또 떠내려간다 우린 어쩜 이리도 무기력하기만 할까? 나도 너를 너도 나를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 물밑 물위 가리지 ...
    By정소슬 Views585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Next
/ 3

본 홈페이지는 XE 엔진sketchbook5 layout & board로 제작되었으며, 모니터 사이즈 1280x800 이상이면 무난히 볼 수가 있습니다.
Copyright ©2000 정소슬 All Rights Reserved. RSS
E-mail : moreunduk@hanmail.net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