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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슬의 詩내기

염낭거미 / 한국작가회의 시분과 엔솔로지 2015년

by 정소슬 posted Dec 0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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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낭거미

 

 



고래의 몸통을 파, 그 속에 거미집 짓고 번쩍번쩍 가구들 들여놓고 샹들리에 늘어뜨린 대리석 식탁에 앉은 그들은 파낸 살점으로 날마다 산해진미의 잔치를 벌인다 그렇게 날마다 잔치가 벌어지건만

그들 뱃가죽과 함께 나날 늘어나는 괴이한 식성이 시중 고리사채 못잖아 감당할 길 막막해진 그들은 금세 또 집을 갈아치우고야 마는데 그래서 고래 등을 빼닮은 아파트값이야 내리막길을 알 턱이 없는데

 

생태도시를 슬로건으로 내건 어느 도시에선 아파트 벽면마다 고래를 그려 넣었다 파도가 꿈틀대는 바다 위를 유영하는 고래의 모습 실감이 난다 너무 실감나서 그 앞을 지나가는 이마다 군침이 마르지 않는다

아파트 벽면마다 주르르 흘러내리는 군침, 군침들…… 그 군침 위에다 잽싸게 진을 친 포장마차, 고래의 살점이 노릇노릇 익어 가는 불판 앞에서 젓가락 휘적이며 뜬금없는 안부를 묻는다

 

― 별고 없으시냐고

― 이번에 부친 용돈은 받으셨냐고

― 차 바꾸느라 좌식화장실은 올해도 힘들 거 같다고

 

지금 바다에선

껍질만 남은 빈 통의 고래들이

난파선 되어

둥둥 떠다니고 있다

파도만이

그 빈집을 노숙자처럼 드나들고

 

- 2015년 한국작가회의 시분과 엔솔로지『내가 뽑은 나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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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낭거미(애어리염낭거미)의 특징은

암컷이 벼과식물의 잎을 말아 그 안에 거미줄을 치고 알집을 만들면서 시작한다.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거미집을 만드는데, 어미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알을 지킨다.
알집에서 스파이더링이 부화하고 한번 탈피한 뒤 유체가 되면 그때부터 어미의 희생은 절정에 이른다.
자기의 몸을 알집을 뜯고 나오는 유체들이 먹게끔 한다.
유체들은 어미 몸에 달라붙어 체액을 빨아 먹고 한번 더 탈피하여 성장한다.
어미의 몸은 빈 껍데기만 남고 유체들은 어미가 보호막으로 쳐 놓은 거미줄을 뜯고 세상 밖으로 나간다.
우리나라에서는 전국적으로 분포하며 일본이나 중국에도 서식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애어리염낭거미를 참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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