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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슬의 詩내기

KEY

by 정소슬 posted Dec 1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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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게놈 마트에 간 그녀는
수정용 난자와 배아용 인큐베이터 태아용 영양식 조기 언어학습기능이 탑재된 태교 음악까지 다 사 왔는데 정작 정자를 깜빡했다는 걸 집에 와서야 알았다 집에서 빈둥빈둥 게임 중이던 남편에게 정자를 사다 주면 안 되겠느냐 부탁했으나 남편은 들은 채 만 채 게임에만 열중이다 옆으로 다가가 나긋한 목소리로 다시 부탁하자 정 그러면 자기 걸 쓰면 안 되겠느냐고 섬뜩한 헛소릴 해댄다 유전자 세척도 항균 코팅도 안 된 그의 불량 정자를 쓰라니 그녀는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왔다

인간의 정자 난자가 필요 없어진 지 벌써 수 세기, 이미 퇴화의 길로 들어선 인간의 수정체를 어찌 믿는단 말인가 그에 비하면 다양한 게놈 시설에서 완벽하게 양산되는, 피부색 외모는 물론 성격 취향 직업 생존수명까지 특화된 옵션들을 입맛대로 골라잡는 세상인데 위험천만하고 어느 것 하나 보장 안 되는 그의 원시적 생 정자를 사용하라니 남편이 제정신인지 의심스러웠다 더구나 그녀가 사 온 난자는 네댓 살이면 명이 소멸할 게 뻔한 비공인 싸구려 난자이기에 그의 불량한 정자와 결합한다면 어떤 괴물이 생겨 나올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래서 이참에 말도 잘 안 듣고 게으르기만 한 남편을 반납해버리고 새 남자로 렌탈해 오는 게 나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한다 함께 산 지 겨우 2년여니까 교체 비용도 얼마 안 들 거다

남편이 그녀 마음을 눈치챈 건지 슬그머니 일어선다 심부름을 하겠다는 표정 같기는 하나 영 예감이 좋지 않다 저 능구렁이 속을 믿을 수 있나 고마워! 포옹하면서 그의 뒷목에서 슬쩍 KEY를 뽑아낸다 그녀 입술이 그의 목덜미에 닿는 순간 정신이 몽롱해지는 립스틱을 방금 발랐다는 걸 그는 눈치채지 못했다 그 덕에 하루쯤은 KEY가 뽑혔다는 사실조차 모를 거고 그래서 엉뚱한 일을 꾸미지는 못할 거다 이를테면
그녀보다 앞서 휴먼뱅크로 달려가
영구교환반납불가특약 따위에 가입해두는 등

Who's 정소슬

profile

브랜드 : 정소슬
메이커 : 1957년식 울산 産
성능/직업 : 비정규직
취미 : 긁적이기, 똥폼으로 사진 찍기
잡기 : 음치, 몸치, 길치... 등 중증 치과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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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레

3rd Poetry collection 『Rag』 / 제3시집 (예정)

  1. 07
    Jan 2015
    11:50
    notice

    당신은 누구의 미필적고의로 버려진 걸레입니까?

    이 그림은 니콰라과 판화가 Carlos Barberena de la Rocha(b.1972)의 작품으로 "Herido de Muerte(치명적인 부상)"이란 제목이 붙어있다. 우리나라도 이 같은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절망하는 이들이 급작스레 늘고 있다. 도저히 대처 불가한 천재지변이라기...
    By정소슬 Views1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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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12
    Dec 2019
    16:10
    No Image

    프리스비

    프리스비 보소, 갱비! 갱비 아저씨! 화단 잡초를 뽑고 있던 南씨, 그 소리에 경기驚氣하듯 허리 일으켜 부리나케 달려간다 사십 중반이나 될까 한 아파트 총무의 목소리는 하도 앙칼져 단박 알아듣는다 시집간 큰딸이 저 나이쯤일 텐데 올해 몇이더라 달려가며...
    By정소슬 Vi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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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12
    Dec 2019
    16:09
    No Image

    구부려 박은 못

    구부려 박은 못 못을 구부려 박는 이가 있다 구부려 박아야 빼내기 어렵고 빼내기 어려워야 오래 견딜 게 아니냐고 그럴지 모른다 영영 박혀 그의 바람을 완벽하게 충족시킬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남의 못을 빼내고 싶어 한다 빼내어 그 사람의 머릿...
    By정소슬 Vi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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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12
    Dec 2019
    16:08
    No Image

    피카소가 웃고 있다

    피카소가 웃고 있다 피카소가 웃고 있다 수십 년 전 붓 놓고 떠났던 그가 관 뚜껑 열고 올라와 그의 그림 경매장 안에서 헐헐 웃고 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의 그림 앞에서가 아닌 그의 그림을 설명하는 새빨간 입술 앞에서 헐헐헐 웃고 있다 생전 별난 ...
    By정소슬 Vi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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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12
    Dec 2019
    16:07
    No Image

    비밀

    비밀 내 비밀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한때 내 젊음과 내 사랑과 내 번영의 원동력이었던 수많은 그 비밀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다 어디 가서 누구의 심복이 되어 있을까 누구의 앞잡이로 영화를 누리며 떵떵대고 있을까 근성으로 봐 뻔한 속물이 되어 있을 그, ...
    By정소슬 Vi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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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12
    Dec 2019
    16:06
    No Image

    KEY

    KEY 모처럼 게놈 마트에 간 그녀는 수정용 난자와 배아용 인큐베이터 태아용 영양식 조기 언어학습기능이 탑재된 태교 음악까지 다 사 왔는데 정작 정자를 깜빡했다는 걸 집에 와서야 알았다 집에서 빈둥빈둥 게임 중이던 남편에게 정자를 사다 주면 안 되겠느...
    By정소슬 Vi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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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12
    Dec 2019
    16:06
    No Image

    노크

    노크 캔디의 방으로 들어가자 그녀, 보이질 않는 거야 아차! 노크를 깜박했다는 걸 그제야 깨닫고 돌아 나오려 했지만 허사였어 이미 문이 사라진 뒤였어 필시 나를 가두어두려는 캔디의 심술일 거야 하는 수 없지 이왕 캔디 방에 갇혔으니 그녀 추억이나 뒤져...
    By정소슬 Views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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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12
    Dec 2019
    16:05
    No Image

    거리의 복병으로 나선 꽃

    거리의 복병으로 나선 꽃 - 청탁금지법이 성매매방지법을 겁탈하면 복상사? 벌과 꽃의 돈독한 거래야 수수만년 지속되어 왔으니 그 거래 속에서 터진 피치 못할 복상사가 어디 한두 번이었겠느냐만, 길거리 꽃들이 그녀들 뱃속에 벌의 씨가 자라고 있다고 날마...
    By정소슬 Views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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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12
    Dec 2019
    16:04
    No Image

    난 좋은 사람?

    난 좋은 사람? - 너의 미덕은 소신공양이야! 퇴근길에 꽃 한 줌 사와 화병에 꽂는다 이 꽃, 얼마나 먼 길 왔을까 차 타고 수백 리 먼짓길을 달려 현기증 자욱한 좌판을 돌아 꽃집에 갇혀 며칠 묵다가 용케도 내게 발견되어 이 방까지 왔을 거다 그 먼 길 날 만...
    By정소슬 Views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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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12
    Dec 2019
    16:03
    No Image

    호사다 호사

    호사다 호사 두어 평 남짓한 경비실에서 쪽잠 깬 趙씨 손전등 하나 들고 길 나선다 여명이 트는 하늘에다 호사다 호사, 중얼거리며 새벽길 연다 평생 일에 찌들어 사느라 신새벽 길 이리 호사스레 밟아본 적 있던가 호사다 호사, 팔도 휘저어보고 어깨도 들썩...
    By정소슬 Views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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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12
    Dec 2019
    16:02
    No Image

    ======== 2부 ========

    2부(16) 각 김치의 맛 광어 티눈 너의 왼쪽 논두렁 풀을 베면서 화해 엄숙한 손 외다리 진법 문수사 오르는 길 낙엽은 사선으로 진다 사랑니 뽑던 날 빨래 층간소음 황당한 관성 사윗감 구합니다!
    By정소슬 Views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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