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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슬의 詩내기

[해설] 붉은 노을의 시학

by 정소슬 posted Sep 2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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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노을의 시학
- 정소슬의 시 세계


정훈(문학평론가)




 정소슬의 시에서 사회 현실에 대한 풍자와 아이러니를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만큼 우리 사회를 진지하고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반증이다. 시가 세계의 예민한 곳을 시인의 창조적 영감과 부딪치는 지점에서 생겨나는 언어의 꽃이라는 점에서 보면, 정소슬의 시야말로 이에 어울리는 한 장면이 아닐까. 냉소와 역설이 이번 시집의 여러 시편들에서 보이는 만큼이나 그의 내면적 통점은 강렬하다. 이는 고통이되 사회와 길항하는 가운데 점점 자라난 희망과 절망의 습합에서 비롯한 갈증의 한 요소다. 즉 온전하고 바람직한 세계를 희구하면서, 이 과정에서 맞닥뜨리게 된 부조리와 몰상식적인 현상을 목도하면서 내면화된 저항의식이 뭉쳐진 곳이 그의 통점이요 갈증의 최대치인 것이다. 세계에 대한 거리감에서 생겨나는 예민한 감성과 비판의식이 그의 독특한 시적 형상화와 맞물려 이룩한 성과를 잘 보여주는 시가 이번 시집의 표제작인 「걸레」다.


나는 걸레다 나는 비정규직이다
반란을 꿈꾸는 미전향장기수이다
노동의 독이 밴 노동중독자이다
나를 충동질하여 내 노동을 빨아먹는 그들은
걸핏하면 내 귓등 간질이며 사랑을 주절거리고
가랑이에다 기름을 부어 떡메질 일삼는다
그럴 때면 그의 거친 숨소리에
덩달아 흥분하기 일쑤고
그의 다급한 정에 연민을 느끼기 일쑤고
그러다 그만 계약 연장에 동의해버리기 일쑤고

동의를 받아낸 그는 즉시
나를 구정물 속에 처넣어 인정사정없이 흔들어댄다
그간 얻어먹은 거 다 토해내라 윽박지른다
그 악덕 조항이 애초 기본규약에 숨어 있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지만
또 속았구나 후회하는 반복이지만
다 잠든 밤 구석에 처박혀
노동의 독물 빼내기만도 힘이 버거운
난치성 결벽증후군까지 품어 안고 살아가는
천형의

그러나 결코 포기되지 않는 봉기의 땀으로
꿈자리 늘 축축한
피톨마다
면면히 흐르는 비분 의열의 검은 피
나는 나는 외세 소탕꾼 아나키스트의 후예이다
- 「걸레」 전문


 자조적 은유의 한 형태라 할 수 있는 '걸레'의 비유를 통해 시인의 의식을 명료하게 나타낸 시다. '걸레'란 말은 시인에 따르면 "비정규직"이고 "미전향장기수"고 "노동중독자"와 동의어다. 이 세 가지 자기규정에서 연상되는, 어딘가 모르게 비타협적이면서도 불온한 이미지가 불러일으키는 내적 긴장은 이 시 전체에 확산되어 있다. 이 점은 시인의 시적 안테나가 자신의 사회적 실존과 맞물린 세계와 사회 사이의 긴장 관계를 반영하고, 이러한 긴장과 대립이 정소슬 시인에게 시를 쓰게 하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특히 자본주의적 비인간화의 측면과 노동소외, 그리고 계층 간 힘의 불균형에서 야기하는 약자의 고통을 아이러니하면서도 실감나게 형상화한 점이 위 시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자본을 쥔 자의 계략에 영락없이 말려 들어가는 화자의 심정("그 악덕 조항이 애초 기본규약에 숨어 있었다는 걸/나중에야 알지만/또 속았구나 후회하는 반복이지만")이나, 그런데도 쉽사리 무릎을 꿇지 않고 거대한 모순의 세계를 향해 의지를 보이는("그러나 결코 포기되지 않는 봉기의 땀으로/꿈자리 늘 축축한/피톨마다/면면히 흐르는 비분 의열의 검은 피/나는 나는 외세 소탕꾼 아나키스트의 후예이다") 모습에서 그의 시적 지향점을 드러낸다. 그가 지향하는 시적 세계는 이상적으로 놓여있어야 할 체제와는 늘 어긋나고 비뚤어질 수밖에 없는 일그러진 세상의 모습을 지적하고 이를 독자들과 공유하는 데 있다. 따라서 그의 시는 신랄하고 차가운 분위기가 만연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토피아를 향한 뜨거운 심장과 인간애를 숨기지 않는다. 즉 그는 뜨거운 돌을 감싼 금속성의 어조로 시편들을 창작해 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형식적이고 표면적인 해석만으로 그의 시가 보여주는 다채로운 주제의식을 단순화시켜서는 안 된다. 분명 그의 작품의 주된 어조가 사회비판 의식일지라도 그 속에 내포된 생태적 휴머니즘을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달이 찬 만삭의 소가
검은 포도 위를 느릿느릿 걸어가고 있다
내 유년만 해도 저 소가
산을 낳아 풀과 나무를 키우고
논밭에 물과 이랑을 낳아
우리 일용할 곡식과 채소를 키웠다
그뿐이랴, 집집 땔감과 퇴비를 낳았고
지금 그가 걷고 있는 신작로도
그의 배로 키워 내보냈다 우리 모두 그의 자식이었다
어김없는 그의 자손들인데 어쩌자고
불룩한 저 뱃속의 내 동기가 태어나고 나면
포도 위로 들어설 트럭에 실려 팔려가야 하는가
내 식탁 위의
한 점 고깃덩이가 되어야 하는가
파푸아뉴기니 포레족의 사육제 제단이 되어버린
엽기적인 우리의 식탁
- 「엽기의 식탁」 전문


 사해동포적인 시선에서 보자면 인간뿐만 아니라 생명을 지닌 모든 존재는 '생명'이라는 존귀한 개념을 매개로 해서 평등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육식에 대한 모든 비판이 곧바로 채식 찬양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시인이 「엽기의 식탁」에서 말하려고 하는 주제의식은, 전통적으로 우리사회에서 인간과 한 가족이나 다름없는 가축이었던 소를 잡아먹는 식문화를 비꼬고 비판하는 데만 향하지는 않는다. 자신들과 근본적으로 유사한 생태와 생존 환경에 속했던 존재를, 생명 보존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는 문화에 대한 싸늘한 시선이 위 시 전체를 감싸고 있다. 모순과 아이러니는, 우리가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행했던 일상의 영역에까지 번져있는 것이다. "파푸아뉴기니 포레족의 사육제 제단이 되어버린/엽기적인 우리의 식탁"이라는 냉소적인 진술에서도 시인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시인에 따르면 '포레(Fore)족'은 파푸아뉴기니의 한 부족으로서 친족에 대한 식인풍습이 최근까지 성행했다고 한다. 식인문화 자체를 놓고 여러 이론과 인류학적 논의가 있지만, 이와는 별개로 시인이 건드리고 있는 지점만을 두고 본다면, 밥상에 오르는 "고깃덩이"가 애초에 우리에게 주었던 다양한 존재양식을 생각해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순수하고 이해타산이 전혀 없는 시각에 대한 아쉬움은 비단 '밥상'의 유통과 문화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못을 구부려 박는 이가 있다
구부려 박아야 빼내기 어렵고
빼내기 어려워야 오래 견딜 게 아니냐고
그럴지 모른다 영영 박혀 그의 바람을
완벽하게 충족시킬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남의 못을 빼내고 싶어 한다
빼내어 그 사람의 머릿속을 살펴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이사 후, 벽의 못부터 흔들어 보는 거고
그 작가의 책을 밑줄 그어가며 읽어보는 거고
그 기사의 기보를 두 번 세 번 들여다보는 거다
들여다보인 그 자리, 뚫려 생긴 그 구멍에
내 생각을 박아보고 싶어 하는 거다
도저히 빼낼 수 없는 못,
난해하여 도무지 납득가지 않는 못,
아리송한 궁금증으로 잠시 호기심이야 일겠지만
당최 빼낼 재간 없는,
고집불통 벽창호 같은,
시뻘건 녹물만 뚝뚝 떨어지는, 그 못 위에
대체 그 누가
금심수구의 비단 스카프를 건단 말인가?
- 「구부려 박은 못」 전문


 유연하지 않고 고정되고 간단한 사고방식에서 비롯하는 경직된 정신에 대한 비판이 「구부려 박은 못」에서 한 편의 우화로 제시되고 있다. "구부려 박아야 빼내기 어렵고/빼내기 어려워야 오래 견"딘다는 지극히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습관과 감각이 팽배한 사회는 희망을 찾아보기 힘들다. 적어도 시인은 그렇게 생각하는 듯하다. 못으로 비유된 정신과 정신의 연결고리가 원활하게 이어질 때 낙관적이고 창조적인 인간정신과 문화를 이룰 수 있다. 즉 "들여다보인 그 자리, 뚫려 생긴 그 구멍에/내 생각을 박아보고 싶어 하는" 조건, 그 유연하고 융통성이 깔린 터전에서 생성하는 사유와 정신의 흐름을 시인은 희구한다. "당최 빼낼 재간 없는,/고집불통 벽창호 같은,/시뻘건 녹물만 뚝뚝 떨어지는" 우리 시대의 완고한 정신적 습성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읽는다.
 비판과 거역의 정신으로 일관했던 시인의 삶이 겨눈 과녁은 아직도 요지부동이고 좀처럼 달라질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청춘의 정열과 기세는 어느 선을 지나고 나이가 듦에 따라 유순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세계의 아귀 짝들의 조합도 시간이 지나면서 변주되고 더욱 깊은 세계의 조합 틀로 치환된다. 시인에게 날선 비판의식을 심어주었던 우리사회의 부조리는 한편으로 시인으로 하여금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로도 작용한다. 앞만 보고 걷다가 발견하게 되는 자기 존재의식, 이러한 반성과 자각을 드러내는 시편들이 이번 시집을 더욱 다채롭게 한다.


한창일 때는 하늘만 우러러
제 몸 허공에 떠 있는 줄 까맣게 몰랐었는데
그러니 현기증도 당연히 몰랐었는데
하늘의 눈빛 돌연 써늘해져 시력이 쇠하고
기억도 차츰 흐릿해져
아아 떨어질 날 가까웠구나
이제야 시선 내리깔고
아래를 보니 전신으로 번져오는 현기증에
몸 가누기조차 힘이 겹구나
저 아래 땅을 기며 아장거리던 유년의 기억이
땅거미가 되어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데
그간 이 높은 곳에서 어떻게 산 건지 꿈만 같아
도무지 겁이 없었어 겁도 없이
수직으로의 욕구만 꾸역꾸역 쌓아 올린 거야
현기증의 높이만큼 떨어질 것을 걱정해야 하는
이 지경에 와서야 과욕을 깨달아
그간 쌓아 올린 수직선을 사선斜線으로 허물며
진다… 진다… 수평선 되어 드러눕는다
다소곳 사선四禪의 품으로 입적한다
- 「낙엽은 사선으로 진다」 전문


 비단 시인뿐만 아니라 생명 가진 모든 존재들은 누구라도 한 번씩 생의 정점에 다다르곤 지게 되어 있다. 낙엽은 신록 한창일 때 하늘 높이 하늘하늘거리다가 제 명이 다해 바닥으로 떨어진 이파리다. 시인은 인간의 운명이 내보이는 생명의 길을 나무와 떨어지는 이파리를 통해 전한다. "그간 이 높은 곳에서 어떻게 산 건지 꿈만 같아/도무지 겁이 없었어 겁도 없이/수직으로의 욕구만 꾸역꾸역 쌓아 올린 거야" 한탄하며 자신의 욕심을 깨닫는 모습을 본다. '수직'이 유일한 통로인 것처럼 곧게만 올라가려 했던 마음을 뉘고 비스듬히 수평으로 드러눕고자 한다. 사선(斜線)이 사선(四禪)이 되는 이 은밀한 감성을 들여다보면, 누구에게나 지금까지의 삶의 방향과 목적을 되짚어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언젠가는 떨어져서 지게 되어 있는 미물일지라도 높고 거룩한 뜻을 알 수 있는 가능성은 충만하다. 올곧은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순명(順命)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위 시에서 밝혀놓고 있다.


한창 저녁 참 준비에 바쁠 시간
늙은 오동나무 잎이 청으로 기어올라
시키지도 않은 마루를 닦고 있다
넓은 손바닥으로 후딱 마루를 닦아 놓고는
기둥도 닦고 방문 문살도 꼼꼼히 닦는다
자세히 보니 그 손, 손바닥이 찢어져
후들후들 피가 흐르고 있다
아마도 섬돌을 오르다 찢긴 걸 거다
마당에 늘어둔 거름도 피할 길 없어
온몸으로 기어서 넘었을 거다
상처투성이 그 몸으로 청을 모두 닦아놓고는
안방까지 닦겠다고 방문을 열어젖힐 태세다
나는 황급히 그 손 움켜잡았다
흙먼지와 거름과 땀과 피가 피아彼我 없이 뒤범벅된
추레하게 늙은 손, 그 손 부여잡고
한참이나
손가락 마디마디를 비다듬어주고 있었다
- 「오동나무 늙은 손」 전문


대낮은 활기찬 일상에는 잘 보이지 않던 삶의 빈틈이 날이 익고 세월이 지날수록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게 자연이든 인사(人事)든, 의식이든 존재든 언제라도 비집고 들어오는 생의 구멍에서 마음을 적시게 하는 것들 앞에서는 누군들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저녁 어스름이 질 녘 늙은 오동나무 잎이 마루를 굴러다니는 모습을 시인은 "마루를 닦"는다고 표현한다. 자기 희생과 겸허의 마음을 오동나무 잎에서 읽는다. 한적하고 고즈넉한 저녁에 찾아오는 존재의 윤곽이 점점 선명해짐을 느끼는 순간이고, 이즈음 시인의 마음을 환히 밝히는 삶의 의미가 고개를 치켜드는 무렵일 게다. 뒹구는 것들 또한 인간에게는 하나의 진실을 보여주는 징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넌지시 보여주는 듯하다. "흙먼지와 거름과 땀과 피가 피아彼我 없이 뒤범벅된/추레하게 늙은 손, 그 손 부여잡고/한참이나/손가락 마디마디를 비다듬어주"는 시인의 숨결이 덥다.
 정소슬의 시가 정직한 비판의 목소리와 내면의 다감한 정서가 어우러져 독특한 하모니를 이루는 이유는 아무래도 사회적 삶과 개인의 주체적 인식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지 않는 시인의 성품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는 사회와 길항하는 시인의 실존적인 삶의 형식을 객관화시켜 바라보는 시각도 한몫을 한다. 자신의 모습을 여과 없이 드러내면서, 거기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존재의 보푸라기들을 그저 들여다보기만 하는 눈길에서 인간미마저 풍기게 하는 것이다. 사회에 대한 비판적 인식만큼이나 자신을 가감없이 표현하고자 한다. 이런 점이 극단적인 자기반성으로 치달을 때 자조에 흐르기 쉽지만, 오히려 시인은 자조나 자기 학대가 아니라 일종의 자기풍자, 즉 자신에 대한 비판적인 의식이 스며든 소박하면서도 건강한 형상화로 매듭을 짓는다.


행락은커녕
뒷산 산책의 시동조차 안 걸리는 날은
고물 카메라 조립해 들고 베란다 꽃들의
세상 구경하는 시선에 빌붙어 노닥노닥대다가
부산갈매기 재방 야구를 보며 악을 써대다가
점잖게 앉아 TV바둑도 보다가
헐렁한 책 속의 팍팍한 시들을 읽기도 하다가
자명종 소리에 놀라 퍼뜩 씻고 입고 근무에 나서서는
다음 해질 때 해뜰 때 맞춰 터덜터덜 돌아오다가
어쩌다 울어대는 전화벨 소리에 붙들려 나가
주거니 받거니 소주잔 빨아대다가
복기復棋하자면 짜증부터 이는 정치 얘기로 성깔머리
박박 긁어대다가(이마저 않으면 꼭 투표권도 없는 무
국적 부랑자만 같다니까)
노가리 다리통 찢어 질겅질겅 씹어대다가
파장엔 노랫가락도 두어 곡절 뽑아대다가
다 잠든 골목, 오늘도 걷는다마는~~~
늙은 말발굽 소리 쿵쿵 울려대다가
- 「자화상」 전문


 위 시에 표현된 시인의 사소하고 보잘 것 없는 일상이 '자화상'이란 이름으로 드러낸 것 자체가 일종의 아이러니면서도 해학적이다. 그러니까 시인은 여느 보통 사람과 다를 것 없는 삶을 영위한다고 '공표'하고, 이는 소시민의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생활에서부터 존재 가치를 끄집어내려는 시인의 생각과도 이어진다. 거창하거나 대단한 사고방식에서 이 세계가 바뀌는 게 아니라는 인식의 이면에 드리운 질박한 현실이다. TV를 보고 시들도 읽다가, 근무하러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지인과 술자리를 마련하는 일들이다. 그리고는 "파장엔 노랫가락도 두어 곡절 뽑아대다가/다 잠든 골목, 오늘도 걷는다마는~~~/늙은 말발굽 소리 쿵쿵 울려대다가" 하는 하루를 보내는 시인의 일상을 떠올린다. 여기서 "늙은 말발굽 소리 쿵쿵 울려대다가"에 주목한다. 자신을 늙은 말발굽에 비유하는 차원에서 보면, 어느덧 인생의 기나긴 고갯길 중턱을 훌쩍 넘긴 존재의 자조 섞인 한탄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말발굽 소리 쿵쿵 울려대는 열정과 에너지가 아직 식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삶을 유순하게 받아들이고 수락하는 긍정적인 의미에다 남은 인생의 좌표를 붉게 물들이고 싶다는 의지 또한 엿볼 수 있다. 젊은 날의 차가운 광기와 비판의식을 잃지 않되, 하루하루 생의 여백을 부드럽고 소박하게 채우면서 여유로움을 가져보겠다는 마음을 읽게 된다. 자신과 세계를 이어주는 거대한 사회적 고리를 꽉 쥐면서도 개체적 삶에 부여하는 생의 진실한 마디 점을 매만지는 시인의 모습이다. 정소슬의 시가 붉게 타는 노을처럼, 여태껏 한낮의 노동을 행한 후 가득 품은 세계의 몸뚱이를 어루만지면서 즐거이 생의 지평선을 응시하는 눈매가 이번 시집에 훤하다.




정훈 문학평론가/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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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경남 마산 출생, 부산대 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2002년 부산일보 평론 등단.
평론집 '시의 역설과 비평의 진실(2011, 산지니)' 출간




Who's 정소슬

profile

브랜드 : 정소슬
메이커 : 1957년식 울산 産
성능/직업 : 비정규직
취미 : 긁적이기, 똥폼으로 사진 찍기
잡기 : 음치, 몸치, 길치... 등 중증 치과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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