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녘
인기척에 놀란 들국화가
화들짝 화장을 고치는
가을 길
어기적어기적 걸어보는 것이다
굽어진 길 끝 모롱이를 돌면
거기 서있을 것만 같은
임의 이름
슬며시 불러보는 것이다
쿵-하고 회오리치는 파문에
눈시울이 달아
꼬리 끝까지 빨갛게 물든
고추잠자리가 되어보는 것이다
단풍든 가슴을 울긋불긋 펼쳐놓고
그 위에 누워
임인 양 하늘을
마음껏 껴안아보는 것이다
그러다 서산에 황혼 빛이 번지면
아슴슴해진 길 되밟으며 돌아와 보는 것이다
종일 한줌의 미소도 팔지 못한 들국화가
독이 올라
육시랄육시랄…… 화장을 지우는
가을 길, 그 저물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