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꽃
임 오시는 길이야
그믐밤에도 보름 달밤처럼 환하련만
발자국 지워진 골목은
대낮에도 그믐밤이다
길모퉁이
뚝뚝 흘린 눈물 자국마다
내 맘을 닮은 분꽃이
밤에만 살금살금 피는데
골목 끝을 향한 그리움도
나를 빼닮아
목 길게 빼 올리고
골목 끝만 바라보고 섰는데
새벽녘 선잠에 언뜻 스친 바람이
임의 입맞춤이었는지 씨알이 달려
속속들이 타드는 내 가슴처럼
까맣게 익어간다
- 시집 『내 속에 너를 가두고』
이 시집은 단 한권만 출판된 시집임 / 2006년, 글로빚는테라코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