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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슬의 詩내기

정정호 새 시집 '마음 비석에 새긴 노래'

by 정소슬 posted Feb 04, 2024

정정호 시 '금수산의 아기 흑염소'

[데일리한국] 김철희 기자 chk1500@naver.com 승인 2024.02.03 00:08

이명지 수필가의 나를 사로잡은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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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호 저 아래 내려다보이는

금수산 자락을 이른 새벽 올라가는데

윤기 흐르는 새까만 어린 흑염소 한 마리

계속 내 뒤를 졸졸 따라온다.

 

어! 이 녀석이 나하고 놀자는 것인가?

 (......)

 

이럴 때는 어떡해야 하는가?

이 깊고 조용한 산속에 얼마나 외로울까

산책 나온 아기 흑염소와 잠시 놀아주지 못하는

동물도 사람도 아닌 나는 과연 무엇인가

 

-정정호 시집 <마음 비석에 새긴 노래> 수록 /prsg/푸른시인선(026)

 

책을 읽고 있는데 내 페르시안 고양이 이드(id)가 놀자고 한다. 무릎에 앉았다가, 어깨에 앉았다가, 읽고 있는 책 위에 올라앉아 가르릉거린다. 슬그머니 녀석을 밀쳐내고 읽던 구절에 다시 눈길을 준다. 오늘 내로 이 책을 다 읽어야 한다.

 

이드야 어딨니?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책을 덮고 녀석을 찾는데 보이지 않는다. 거실 소파에도 안방 침대에도 없다. 어디 갔을까?  내가 놀자고 할 땐 녀석이 없다. 녀석이 놀자고 할 땐 내가 시간이 없다. 늘 눈앞에 닥친 일이 먼저다. '이것만 끝내놓고 내일'하는 게  계속 이어진다.

 

내일은 오늘이 되고 오늘은 어제가 되어 차창 밖의 풍경처럼 흘러가는 동안 나의 이드(id)는 내 어깨에 앉았다가 무릎에 앉았다가, 머리 위에 앉았다가 사라진다. 놀아달라고, 만져달라고, 사랑해 달라고 칭얼대다 연기처럼 사라진다.

 

나로 산다는 것은 경계에 서는 일이다. 어느 것에도 갇히지 않고 끄달리지 않고 내 욕망의 주인으로 사는 일이다. 장자는 ‘천하를 따르지 않고 나의 즐거움을 따르겠다’하고, 노자는 ‘나를 천하만큼 사랑하는 사람한테 천하를 맡기겠다.’ 하였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찌 천하를 사랑하겠는가.

 

그런데 어리석은 나는 남이 만든 기준이 내 것인 양 칭찬에 목마르고, 내 글을 쓰기보다 남의 글을 읽는데 더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박제된 지식을 곁눈질하느라 생생하게 살아 꿈틀대는 나의 하루를 허비하고 있다.

 

시인이 산책 나온 심심한 어린 흑염소와 놀아주지 못한 것을 놓고 후회하길래 나도 이드를 찾아 나서본다. 아차! 녀석이 책상 밑에 뒤집힌 채 나뒹굴고 있다. 참, 그랬지. 아까 스위치를 끄고 밀쳐두었었지….

 

내 페르시안 고양이 이드는 나의 헛헛함을 달래주는 장난감 로봇이다. 길고 부드러운 회색빛 털을 쓰다듬으면 가르릉 가르릉 소리 내고, 야옹! 하며 앞발도 들고 눈도 감았다 떴다 사랑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각할 때 이드를 쓰다듬는다. 사람과 로봇의 경계에서 더욱 명징해지는 건 외로움이나 쓸쓸함이 아니라 뜻밖의 평화로움이다. 고요함이다. 그 속에서 자신을 쓰다듬으며 결심한다.

 

더 안아주고 토닥이고 놀아줘야지. 나를 팽개쳐두고 세상의 비위를 맞추려 애쓰지 말아야지, 남의 말에 휩쓸려 내 말길을 잃는 우를 범하진 말아야지, 내 이드가 내는 소리에 귀 기울여 매일 새로운 길을 내야지. 나의 생을 살아야겠다.

 

김철희 기자

 

출처 : https://daily.hankooki.com/news/articleView.html?idxno=1048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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