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외현 시인, 두 번째 시집 ‘바다에 꽃을 심다’ 발간
[인천뉴스] 정광욱 기자 입력 2023.05.26 14:56 수정 2023.05.26 15:44|
이외현 시인이 두번째 시집 ‘바다에 꽃을 심다’를 발간했다.
이 시인은 2012년 계간 '리토피아'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안심하고 절망하기'가 있다. 전국계간지작품상과 리토피아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계간 아라문학편집장이며, 막비시동인과 리토피아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대상으로부터 전해지는 개별적인 감정에 전도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시인이다. 따라서 그의 시는 감정의 과잉 노출을 경계하는 것과 동시에 날것의 이미지를 구현한다. 결국 시인이 지향하는 시의 방법론은 동시대의 예술에 대한 재현과 서사를 벗어나는 일일 것인데, 거침없이 사용하는 의성어들과 배제되어버린 수사들의 운영체계는 오히려 인식의 전환과 함께 낯선 감각을 불러 세운다. 이것은 이번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화두이기도 하면서, 이외현의 무의식 속에서 돌출되는 한결같은 이미지이기도 하다. 이렇게 드러나는 사랑과 냉소와 머의 감각은 다시 그 언어로 체화되면서 이외현의 신체를 만들었다.
바다에 꽃을 심다
파도가 무너지는 밤에
토담이 쿨럭쿨럭 몸살을 앓고
주인 잃은 초가집은 맥이 풀려
땅바닥에 주저앉는다.
가느다란 문살이 바람에 떨고
녹슨 대문은 삐걱삐걱 목쉬게 울고
초가지붕에는 잡초가 한가득
마당에는 소문들이 술렁인다.
어린 참새가 비를 물어오면
가지마다 하얀 감꽃이 피고
선착장에 아른거리는 그림자가
너울너울 바다에 꽃을 심는다.
참새의 하루
날개 접고 자울자울 조는 사이
숲에 데려갈 하루가 도착한다.
짹짹거리는 참새 떼 속에서
간혹 지지배배 낯선 소리 들리고
은행나무 가지에 앉아 부리로
할 일을 콕,콕, 날개에 적는다.
가을볕에 은행이 툭, 떨어지고 참새 떼가 부스럭, 날아오른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먹이를 찾는 짹짹 소리 요란한데
가상공간 허방을 짚으며 깃을 치던 날개가 지쳐 고단하다.
해 질 녘 은행을 쪼다가 퉤퉤 뱉고 숲을 나갈 준비를 한다.
작아진 하루가 타작마당에 내리고 곡식 낱알이 흩어져 있다.
허기를 물고 내려앉은 참새 떼 허겁지겁 코 박고 입 채운다.
나른한 오후, 갸르릉 끼잉낑
고양이가 음식물 쓰레기 봉지에 일격을 가하자
숨죽이고 있던 토사물이 주르륵 쏟아진다.
털이 엉겨 붙어 눈썹 커튼을 친 강아지가
한쪽 다리를 절며 터진 오물 주변을 맴돈다.
양이가 갸르릉거리며 강아지를 위협한다.
강아지는 달아났다가 이내 끼잉낑 다가온다.
고양이가 한 번 더 이빨을 세워서 위협한다.
강아지는 더 멀리 달아났다가 다시 끼잉낑 다가온다.
어미가 버렸는지, 제가 집을 나왔는지,
주인에게 쫓겨났는지는 알 수 없다.
고양이는 몇 개의 생선 뼈와 햄을 주워 먹고
빳빳한 수염 내리고 치켜세운 꼬리 내리고
슬며시 물러난다.
물러가면서 자꾸 돌아본다.
모퉁이를 돌면서 또 돌아본다.
호랑거미
꽃바람 꿀벌이 발을 헛디뎌 버둥대자
가야금에 몸 실은 호랑거미 다가온다.
지그재그 줄을 퉁겨 꿀벌을 연주한다.
그늘진 나무숲에 진양조가 출렁인다.
하얀 줄에 붉은 소리 죽죽 뻗어가고
검푸른 곡조가 입에 송알송알 맺힌다.
중중모리장단이 점점 몸통을 죄어오고
어금니 휘몰이장단 앞에 맥을 놓친다.
파르르 떨다가 이내 숨이 고요해지고
명주 수건 휘돌리는 살풀이 춤사위에
훠이훠이 생사生死의 쌍무지개가 뜬다.
정광욱 기자 press@incheo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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