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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슬의 詩내기

한영식 첫 시집 '장애인복지관'

by 정소슬 posted Jan 25, 2023

[시집 신간] 한영식 시인의 첫 시집 《장애인복지관》

‘장애인복지관에 맑은 가을비 내립니다’

[월간조선] 글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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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식 시인의 첫 시집 《장애인복지관》(모악 간)이 나왔다. 인쇄공장을 막 떠와나서 그런지 시집에 온기가 느껴진다. 활자의 잉크가 손끝에 번질지 모른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모든 시들이 따스한 서정시다.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따스함이 뜨거움으로 바뀜을 경험한다.

 

시인의 서정(抒情)은 뜨겁다. 은유나 비유와 같은 수사(修辭)는 불필요하다. 삶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가는 장애인을 관찰하며, 그리고 그들에게 느끼고 경험하며, 함께 괴로워하고 눈물 흘리며 시를 쓴다. 그래서 그의 시는 서정시면서도 한 편의 다큐와 같이 서사로 읽힌다. 그러면서도 “노래와 그림[음악성과 회화성]이 고르게 조화를 이룬다”(시인 김준태).

 

시인은 전라도 여수 앞 돌산 방죽포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라 대구에서 대학을 다녔다. 지금은 경남 양산의 장애인복지관에서 근무하고 있다. 장애인 차량에 이들을 실어 나르는 일을 해왔다고 한다. 사연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가슴과 머릿속에 차곡차곡 쟁여놨다가 시로 완성했다.

 

장애인복지관에 맑은 가을비 내립니다

긴 장마

먹구름이 산허리 휘감아 돌고

노인복지관 뒤

안개가 산을 힘겹게 넘어 갑니다

시각장애인 주간보호센터 차가

장애인복지관 정문에 서면

혼자서 복지관으로 올 수 없는 노인들이

지팡이 하나씩 주름진 손에 힘껏 쥐고

도우미 선생님 손을 잡고

천천히 주간보호센터로 들어갑니다

몹쓸 놈 코로나로

식당은 열려 있지만 직원들은 이용금지된 지 오래

시각장애인 노인들만 점심 드시러 갑니다

주간만 보호되는 노인들

장애인복지관 위로

가을비 내립니다

 

- 한영식의 시 ‘장애인복지관’ 전문

 

아파트 지하 2층

차로 옮길 봇짐 둘 주차장 바닥에 내려놓고

어서 오라고 어서 오라고

허공에 손을 흔드는 할머니

두 살 때 시력을 잃었다는 할머니

양산에서 밀양 가는 길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초행길인 내게 친절하게 설명을 하신다

밀양역 앞 주공아파트로 가면 된다고

경찰서를 지나면 다리가 나오고

다리가 끝나는 곳에서

우회전하면 아파트가 보이고

입구에서 바로 좌회전을 하면

혼자 살고 있는 집이 14층에 있다고

 

나는 봇짐을 들고

14층 할머니가 홀로 사시는 집에

할머니를 남겨두고 내려왔다

눈에 보이는 것도 제대로 못 보는 내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할머니를 걱정하면서

 

- 한영식의 시 ‘장애인에 관한 기록3 – 시각장애 할머니’ 전문

 

그대는 걷지를 못하더니

착한 활동지원사를 만나

수영장을 그렇게 열심히 찾더니

지금은

장애인복지관 2층까지

소나기 같은 땀을 흘리며

혼자 힘으로

산을 오르듯

2층을 정복하지

군에서 운전병을 하다

사고로 장애인이 된 그대

지금은 보치아 선수로 활동하는 그대

그대는 장애인이 아닌

절망을 모르는 청년이다

 

- 한영식의 시 ‘장애인에 관한 기록 4 - 지체장애 20대’ 전문

 

휠체어 소녀가 묻는다

아저씨, 발이 땅에 닿으면 기분이 어때요

나는 침묵으로 대답한다

시각장애인이 말을 건넨다

어제 산 사과를 어디 두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아요

보이지를 않아요

나는 침묵으로 대답한다

그렇구나

나도 거울 속 내 얼굴을 본적이 없구나

땅에서 만나는 그림자가 아닌

거울 속 얼굴이 아닌

내 모습을 제대로 본 적이 없구나

아프다, 나의 침묵이

 

- 한영식의 시 ‘장애인에 관한 기록 6’ 전문

 

시집 1부가 장애인에 대한 서정이라면 2부는 동자승에 대한 서정이다. 1부는 관찰이 시작(詩作)의 모티브라면 2부는 불교를 빗대어 삶의 아픈 마디를 만지고 있다.

 

동자승은 시인이 표현하고픈 아픔의 정수(精髓)다. ‘새 한 마리’, ‘대웅전 목탁’, ‘노란 달덩이’(와 ‘노란 새’), ‘깊은 산 조그만 움막 하나’ 등의 이미지가 동자승으로 연결돼 있다. 어린 나이에 출가한 사연은 삶의 중요한 여백이다. 생의 미스터리를 여백으로 남겨둬야 한다. 왜 동자승이 되었나를 묻지 않아도 우리는 이유를 알아채고 있을지 모른다.

 

저 조그만 산에

집 한 채 있네

저 조그만 산에

절 하나 있네

저 조그만 산에

동자승이 있네

저 조그만 산에

대웅전 기와에

새 한 마리 앉았네

저 조그만 산에

가만가만 목탁소리

저 조그만 산이

수미산 일지도 몰라

저 조그만 산이

 

- 한영식의 시 ‘동자승 1 -  저 조그만 산에’ 전문

 

수미산은 상상의 산인데, 불교에서는 세계의 중심에 있다고 하는 산이다. 동자승이 사는 ‘저 조그만 산’이 수미산일지 모른다는 시인의 인식은 틀리지 않으리라.

 

깊은 밤

새 한 마리

노란 달덩이 속으로 날아가는

밤하늘을

이렇게 너랑 함께 볼 수 있다니

오늘은

가을밤이 따뜻하구나

저 달이 너에게 많은 걸 가르쳐 줄 것이다

새벽에 대웅전 문을 열기 전

하늘을 꼭 보거라

잠들기 전 밤하늘을 꼭 보거라

거기 말씀이 있고

너의 얼굴이 숨겨져 있으니

 

- 한영식의 시 ‘동자승 4’ 전문

 

먹구름 가득한 하늘

시들어 축 늘어진 고추 잎

달빛의 힘으로

대웅전 문고리 열리고

동자승이 밝힌 향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떠나지 못한 무덤 속으로

맑은 목탁소리 따라

비가 되어 내리네

 

- 한영식의 시 ‘동자승 7’ 부분

 

시인이 천착한 ‘장애인’과 ‘동자승’이란 화두만큼 삶의 거대한 물음은 없을 것 같다. 시인은 두 화두를 어깨에 짊어진, 다산 정약용의 《여유당전서》에 나오는 단어를 빌리자면, ‘견여(肩輿)꾼’ 같다.

 

그리고 시집을 읽고 있는 독자에게 이 두 화두를 함께 짊어지자고 권하고 있다. 어쩌면 이미 짊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출처 : http://monthly.chosun.com/client/mdaily/daily_view.asp?idx=16966&Newsnumb=20230116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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