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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슬의 詩내기

임경묵 두 번째 시집 '검은 앵무새를 찾습니다'

by 정소슬 posted Jun 27, 2022

죽은 개그맨의 수첩에 적혀있던 웃음 목록

임경묵 시인의 시 '개그맨 1'

[오마이뉴스] 22.06.27 08:54 l 최종 업데이트 22.06.27 09:25 l 주영헌(yhj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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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시를 읽지 않는 시대'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불리는 까닭, 시를 읽지 않아서가 아니라 시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이나마 익숙함을 만들어 드리기 위하여 일주일에 한 편씩 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오늘 소개하는 시와 산문은 네이버 블로그 '시를 읽는 아침'에 동시에 소개됩니다.[기자말]  

 

개그맨 1 / 임경묵

 

119 구급대가 옥탑방에 도착했을 때 개그맨의 웃음은 경직이 진행되고 있었다. 침대에서 발견된 낡은 수첩에는 그가 심장에 장착하려던 웃음 목록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웃음, 저자극성 웃음, 첫출발이 불안한 웃음, 초대받지 못한 웃음, 앞니 두 개가 쏙 빠진 웃음, 귀가 얇은 웃음, 속눈썹이 긴 웃음, 위급할 때 짠 하고 나타나는 웃음, 투철한 직업의식을 가진 독재자의 웃음, 인체공학적인 웃음, 무중력 웃음, 가장자리가 어슴푸레한 웃음, 벼룩의 낯짝 같은 웃음, 쥐꼬리만 한 웃음, 늘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웃음, 끓는 물에 살짝 데친 웃음, 딱 한번 웃기고 폭삭 늙어 버린 웃음, 격자무늬 패턴을 가진 웃음, 중요할 때 꼭 딸꾹질해 대는 웃음, 볼빨간 사춘기 웃음, 유통기한이 지난 웃음, 살균 효과가 있는 웃음, 비밀리에 웃음 치료를 받은 적 있는 웃음, 슬픔과 기쁨의 이종교배로 태어난 웃음…….

 

 - <검은 앵무새를 찾습니다>, 시인의 일요일, 2022. 47쪽

 

취미로 시를 쓰는 것과 시인이 되어 시를 쓰는 것은 다릅니다. 직업인이 된다는 것은 고스란히 삶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기에 좋아도 해야 하고 싫어도 해야 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된 것은 행운일 수도 있겠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누구보다 심한 압박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는 바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웃음을 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어떠할까요. 그들의 삶은 항상 웃음으로 가득할까요. 분명한 것은 이들의 가장 큰 스트레스는 웃음일 것입니다. 시인의 가장 큰 스트레스가 시이고, 가수의 가장 큰 스트레스가 노래인 것처럼.

 

지난주 금요일 오전 서울광장에서 서울도서관×조은이책의 주관으로 <2022 움직이는 책방>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시낭독과 필사, 음악과 노래로 30여분의 독자와 함께했습니다. 저의 주된 역할 중 하나는 '시 필사' 시간에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소음이 일상적인 야외에서 정적이라는 시간의 틈은 행사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프로그램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용기를 낸 것인데요, 생각보다 성공적이었습니다. 성공적일 수 있었던 까닭, 제가 가수가 아닌 것을 독자분들이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음이 부정확해도, 노래가 틀려도 이해가 될 수 있었습니다. 만약 내가 가수였고, 그 무대만큼의 노래를 불렀다면 어떠했을까요.

 

개그맨이란 웃음을 안겨다 주는 직업이기에, 언제 어디서든 사람을 웃길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아파도, 내가 슬퍼도, 내가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는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웃음만이 그들의 존재를 증명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이어지는 시 '개그맨 2'에서 화자는 말합니다. '저 오늘 떠납니다. 더는 사람들을 못 웃기겠어요. 공원 광장에서 미숫가루를 뒤집어쓰고 가슴을 팡팡 치면서 헐크 흉내를 내 보기도 했고, 전철 안에서 1.5리터짜리 콜라를 단숨에 마시고 트림을 꾹 참아도 봤는데, 사람들이 안 웃어요'라고요.

 

그가 아무리 노력해도 웃지 않고 사람들에게 이런 대답만 듣습니다. 젊은 사람이 길에서 이러지 말라고. 고통을 참는 것은 개그가 아니라고. 시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웃음이란 과연 무엇인가라고. 시에서 말하는 웃음의 목록에서 웃음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을까요.

 

목록 중 제 눈에 먼저 들어온 웃음이 있다면, '비밀리에 웃음 치료를 받은 적 있는 웃음'입니다. 참 아이러니한 웃음입니다. 웃음을 위해 웃음 치료를 받았다니요. 왜 그는 웃음 치료를 받았던 것입니까요.

 

앞서 말했던 것처럼 그에게 웃음은 '즐기는 웃음'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슬픔과 기쁨의 이종교배로 태어난 웃음'도 눈에 들어옵니다. 왜 기쁨만이 아니라 슬픔과 기쁨의 이종교배라고 말한 것일까요. 웃음을 만들기 위해 기쁨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슬픔까지도 갈아 넣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친인척의 부고에도 불구하고 방송을 빠질 수 없어 웃을 수밖에 없었다는 방송인들의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속으로는 눈물이 강처럼 흐르지만, 겉으로는 그 어떤 근심이 없었던 사람처럼 환하게 웃어야 하는 웃음, 이러한 웃음은 또 어떤 웃음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일지.

 

시 쓰는 주영헌 드림

 

임경묵 시인은...

 

안양에서 태어나 천안에서 성장했습니다. 2008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체 게바라 치킨 집』 등이 있습니다. 수주문학상, 대산창작기금을 수혜했습니다.

 

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45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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