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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슬의 詩내기

채상우 세 번째 시집 '필'

by 정소슬 posted Oct 13, 2021

[김정수의 시톡](3)채상우 시인의 세 번째 시집 <필>

당신은 내 심장에 꽂힌 칼을 본 적 있나요

2021.10.18ㅣ주간경향 14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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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어둠이 물러가면 아침이 오고 해가 지면 밤이 찾아오는 것, 비(눈)가 오고 바람이 부는 것,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는 것, 먹고 싸는 것 등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겠지요. 채상우 시인(1973~ )의 세 번째 시집 <필>(파란)은 제목 그대로 필(必)을 말합니다. 반드시 필(必)은 ‘꼭’, ‘기필코’와 같이 결연한 의지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하필(何必)과 같이 하는 일이 못마땅해 돌이켜 묻거나 꼭 그래야 하는 이유를 진지하게 캐물을 때 쓰입니다.

 

무심결에 시집 <필>을 펼치면 느닷없이 칼이 날아와 심장에 꽂히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시인의 말’에 의하면 필(必)이라는 한자는 “평생 심장에 꽂힌 칼을 본떠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심방과 심방 사이를 예리한 칼에 찔리면 의식과 통증 사이에 차이가 존재합니다. 찔리는 순간 칼을 보면 의식 다음에 통증이, 보지 못하면 통증 다음에 의식이 찾아옵니다. 나와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대한 응시 여부에 따라 달라지는 ‘차이’를 시인은 예리한 감각으로 포착합니다. 시집 해설을 쓴 조강석 문학평론가는 이를 “찔러 오는 것들을 응시하는 찰나들의 기록”이라 했습니다.

 

어디서 날아올지 모를 칼을 조심하며 시집을 펼칩니다. <멜랑콜리>, <리튬>, <필> 등 3권의 시집을 썼다고 간단하게 약력을 표기했지만, 그는 2003년 계간 ‘시작’으로 등단했지요. 현재 ㈜함께하는도서출판그룹파란의 대표이기도 하고요. 61편의 수록 시 가운데 무려 39편의 제목이 ‘必’입니다. 시집 제목은 한글로 ‘필’이라 했고, 본문에선 부제도 없이 한자로 ‘必’이라 했습니다. 목차에서는 시 첫 구절을 부제로 표기했습니다. 시 제목이 다 ‘必’인지라 목차만이라도 구분하려 했겠지요. 어쩌면 제목의 무의미성도 시인의 의도일지 모릅니다.

 

꿈보다 더 슬픈 생시의 봄밤

 

“말할 수 없이 슬픈 꿈을 꾸었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허공마다 작년에 피었던 죽은 목련들// 처음인 듯 꽃등잔 받쳐 들고 마중 나온다// 끔찍하구나 극진한 봄밤이여”(‘生時’ 전문)

 

첫 번째 수록 시는 ‘生時’입니다. 생시는 자지 않고 깨어 있을 때나 살아 있는 동안을 의미합니다. “이게 꿈이야, 생시야” 할 때의 그 생시입니다. ‘꿈’과 대척점에 있는 말이지요. “말할 수 없이 슬픈” 일은 생시가 아닌 꿈속에서 벌어진 것입니다. 잠에서 깨어났는데, 슬프긴 한데 무슨 꿈인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꿈은 과거의 일이고, 꿈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현재입니다. “작년에 피었던 죽은 목련들”도 과거이고, “꽃등잔 받쳐 들고 마중 나”오는 상황은 현재입니다. “끔찍”한 과거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똑같은 슬픔을 현실에서 다시 마중하는 것이지요. ‘봄밤의 꿈’치고는 참 잔인합니다. 심장에 칼이 꽂히는 것처럼 아픈 시인지라 시집 서두에 배치했겠지요. 특이한 것은 이 시 한편이 1부라는 것입니다. 보통은 60여편의 시를 4부에 나눠 골고루 배치합니다.

 

그리움, 무작정 달려오는 당신

 

2부 첫 시 ‘必’은 “당신은 모두 당신이었다// 당신이 아닌 당신도 나도 당신이었다” 딱 2행(연)입니다. ‘당신’은 듣는 이를 조금 높여 가리키는 말 이외에도 여러 의미가 있습니다. 언쟁 중에 상대방을 얕잡아 말할 때, 부부간에 상대방을 가리킬 때, 윗사람을 높여 가리킬 때, 종교적 대상물을 아주 높여 부를 때도 사용합니다. ‘당신’이라는 말에는 ‘높임’과 ‘낮춤’의 의미가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누구일까요. 또 다른 시 ‘必’에서 “삼십 년 전 그 사람// 비로소 내가 된 당신”이라 했으니, 나와 당신은 같은 사람으로 보입니다. 아니면 나와 닮은 사람입니다. “당신이 아닌 당신”은 과거의 나이고, “나도 당신”의 당신은 현재의 나입니다. 시인은 지속적으로 과거와 현재의 차이와 사이, 상태를 말합니다.

 

시인은 “내 심장을 본 적이 없지만 그래요 난 그만 사랑에 빠져 버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사랑에 빠졌는데 부끄럽고, 두렵고 숨겨야만 할까요. “아내는 슬픈 일도 없이 흰 국수를 삶”고 있고, “이제 막 인생이 제대로 시작된 거 같”다면서요. “나는 사십 년 동안 당신을 만난 적이 없다”고도 합니다. 혹시 시인은 지금 행복한 게 아닐까요. ‘사랑가’의 한 대목처럼 “이 행복이 부서질 것 같아” 두려운 것은 아닐까요. “오늘은 좀 슬퍼도 되는데 슬퍼지지가 않는” 꿈 같은 현실 말입니다. 시인이 전생과 죽음을 수시로 언급하는 것은 내가 닮은 당신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 때문 아닐까요. 역설적 표현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그립다”(‘하지’), “더는 만나서는 안 될 이름”을 불러보는 것이겠지요. “나는 나를 구원할 수가 없”(‘사순절’)는데, 당신은 “어쩌자고 무작정 달려오”고요. 과연 시인만 그럴까요. 우리 모두 가슴에 칼 하나쯤 꽂고 사는 것은 아닐까요.

 

시 한편

 

하지 / 채상우

 

 아직 꽃이 피지 않은 푸른 목백일홍을 앞에다 모셔 두고 술을 따른다 사람이 그립다

 지금은 다만 방금 피어오른 적란운을 최선을 다해 바라볼 뿐이다

 평생이 종일토록 저물지 않는다

 

 <김정수 시인 sujungihu@hanmail.net>

 

출처 :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6&artid=2021100814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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