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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슬의 詩내기

박병란 두 번째 시집 ‘우리는 안으면 왜 울 것 같습니까’

by 정소슬 posted Mar 2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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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집] 흐느끼며 걸어야 마음이 부러지지 않는다

[머니투데이]  김정수 시인, 2020.03.21 07:00

<204> 박병란 시인 ‘우리는 안으면 왜 울 것 같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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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시 전문지 ‘발견’으로 등단한 박병란(1965~ )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우리는 안으면 왜 울 것 같습니까’는 시와 삶의 변곡점에 해당한다. 시인을 둘러싼 환경에 좌우되던 이전의 삶이 ‘요’(凹)라면 내 삶의 본성과 가고자 하는 시의 길은 ‘철’(凸)에 해당한다. 오른손엔 “지팡이를 짚고”(이하 ‘환승’) 왼손엔 “풋콩대”를 쥔 시인은 삶의 환승역에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가장 찬란한” 인생이 이제 시작되고 있다.

 

시인은 환승역에 앉아 가끔 요(凹)의 삶을 돌아보긴 하지만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배제한다. “내가 나의 보호자가 되어 이력서”(‘겨울 이력서’)를 써야 하는 삶과 “음지의 말을 받아 적”(‘팥꽃여관’)어야 하는 시의 길은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제 몸이 썩는 줄도 모른 채/ 제 몸을 가르는 티눈 같은/ 감자 싹을 도려”(이하 ‘독감’)내고 싶었을 것이다. 시인은 함께 아파했던 마음만 간직한 채 “기록되지 않은 울음”을 멀리한다.

 

가을 햇빛 내리쬐는 환승역의 벤치는 치열하기보다 고요하다. 이제 시작인 철(凸)의 삶(시)은 요(凹)의 경험으로 잘해나갈 자신감도 생겼다. “이제 큰일이란 소용없”(‘시인의 말’)는 시인은 남아 있는 가장 소중한 일인 시 쓰기에 매달린다. 이번 시집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나를 찾는 여행’이다. 내적으로는 명상, 외적으로는 여행이지만 궁극적으로 불교적 세계관을 담고 있다.

 

    방석 끝을 맞추고 앉아 눈을 감았다

    모서리와 모서리가 잇대니 동그라미가 되었다

    방석 위에 앉은 우리는 우주가 뱉어낸 찌꺼기 같았다

    동그라미를 긋고 있는 직사각형 방석의 선은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다가 중심에서 밀려난 울음

    터지지 않게 댐을 막고 있는 둑 같았다

     

    마주 보이는 얼굴이 둥글었다

    어느 한 구석 모난 데 없어 보이는 우리

    처음에는 누구나 그렇게 이 세상에 나왔다

    모서리에 앉아서 내 말만 하다

    모두가 모두처럼 뾰족해져 갔다

    마음을 나누지 못하고

    생각만 나누다가 화만 내다가

    장작처럼 타들어가기만 했다

     

    방석 끝을 맞추고 나니 방에 우주가 생겼다

    아무것도 없어서 가벼운 저 중앙

    나무가 가장자리를 에워싼 텅 빈 못처럼

    아무것도 없어서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적막 같았다

    잔잔한 물결이다 돌멩이 하나 던질 수 없는 백지다

    저 동그라미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서 동그랗다

     

    둥글게 둘러앉은 방석은 다수의 의견이었다

     

    - ‘다수의 의견에 대하여’ 전문

 

 시 ‘다수의 의견에 대하여’는 명상의 경험을 다루고 있다. 방석에 앉은 우리는 둥글게 마주보고 앉아 명상을 한다. 명상은 네모난 방석과 방석의 끝을 맞춰 중앙에 원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된다. “동그라미를 긋고 있는 직사각형 방석의 선”은 이 시의 모티브다. 직선은 “내 말만 하다”가 “뾰족해져” 서로 “마음을 나누지 못”하고 “화만 내”는 불화를, 반면에 곡선은 남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하고 화해와 조화를 상징한다.  

 

직선의 세계인 방석에 앉는 순간 시인은 “우주가 뱉어낸 찌꺼기 같”다는 생각을 한다. 자아의 왜소함과 하찮음, 인생의 덧없음을 인식하자 울음이 터져나온다. 이런 울음은 종교의 보편성에 닿아 있지만 과거의 회상과도 무관하지 않다. 울음을 쏟아내고서야 사는 동안 즐거운 일도 있었지만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으므로 이는 결국 더 큰 괴로움을 가져온다는 것을 깨닫는다.

 

명상이 깊어질수록 누구나 “모난 데 없”이 “이 세상에 나왔다”는데, 모든 것은 변하고 사라져 그대로인 것이 없다는 무상(無常)의 단계로 나아간다. “아무것도 없어서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아무것도 없어서 가벼운 저 중앙”인 우주는 심우도의 아홉 번째 단계인 ‘반본환원’(返本還源)과 다르지 않다. 주객이 텅 빈 원상 속에 자연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비치는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은 내 마음이 만든다.  

 

시인이 무아(無我)의 단계 대신 “다수결의 의견”으로 시의 물꼬를 튼 것은 겸허다. “우주가 뱉어낸 찌꺼기 같”은 미미한 존재가 적막이나 “잔잔한 물결”, 백지 그리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동그라미(우주)를 경험한 것만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경지인 것이다. 일체유심조는 수련을 위한 명상만으로 깨칠 수 있는 이치가 아니라는 것을 시인은 잘 알고 있다.

 

    나를 따라서 한번 가보겠나, 나처럼 우주복을 갖춰 입을 건 없고 편하게 따라나서면 되네. 신발끈만 잘 묶게나, 조이든지 느슨하게 하든 아침에 눈 떴을 때 몸을 살피고 알아서 하게나, 컴컴하니 뭐 보이는 것이 있겠냐마는 난 늘 이 시간에 길을 나서네. 잠깐 보이다만 달을 보니 그믐인가 보군. 그믐달도 내일이면 삭을 지나 차고 다시 이지러지겠군. 무작정 걷다보면 나도 지구와 태양 사이에 있는 달 같다는 생각이 든다네.

     

    이제 제 무덤에 들어가려고 꾸물거리는 뒷모습이 쓸쓸해 보이지 않나, 세상을 통틀어 저보다 보기 드문 빛이 또 있을라구, 오늘은 바람이 아주 세차군. 떠내려가지 않게 조심하게. 아마도 끝까지 역방향으로 불어올 작정인가 봐, 그렇다고 맞서려고 하지 말게. 가끔은 파도를 타는 구명줄처럼 흐느끼며 걷게나, 그래야 마음이 부러지지 않지.

     

    오르막이 나오면 아무리 힘들어도 멈추면 안 되네. 오르막은 마지막까지 찍고 나서야 꺾이지. 중간에 가다가 멈추면 더는 올라가지 못할 수도 있다네. 한 걸음도 더는 내딛기 힘들 때는 한 걸음을 더 옮기는 게 넘어서는 길일세.

     

    왜, 내 배낭이 무거워 보이나, 짐을 덜어주고 싶다는 생각은 접게나, 짐은 덜어서 가벼워지는 게 아니라네. 오히려 짐을 떠안기는 꼴밖에 안 되는 거야, 내가 무거우면 내가 버리면 돼. 내가 무거운 걸 남에게까지 짊어지게 할 수 없다는 것이 이 길에서 바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방편이었다네.

     

    그렇다고 저 답답한 문제를 계속 떠안고 가느냐, 웬걸, 언젠가는 불태워야겠지. 그게 다 가지는 방법이니. 어때, 걸을 만한가, 신발끈은 좀 더 안 조여도 되겠나, 조금만 힘을 내. 나무 그늘 없는 12㎞ 밀밭을 걸어가야 하네.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다고 투덜대지 말게. 저 밀밭을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이라 생각하며 걷게. 그래야 사이와 사이를 이해할 수 있다네. 조금만 더 가면 모래로 뒤덮인 마을이 나올 거네, 그때부터 내리막이네. 이제 다 와 간다네.

     

    - ‘Hontanas camino’ 전문

 

 시 ‘다수의 의견에 대하여’가 명상을 통한 내면의 여행이라면 시 ‘Hontanas camino’는 산티아고 순례길로 나를 찾아 떠난 여행이다. 프랑스 남부 국경마을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까지 약 800km 중에서 13일 차쯤 온타나스에서 보아디야 델 까미노까지 약 29km 구간을 걷고 있다. 이 시는 “우주복을 갖춰 입”은 내가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형식을 갖췄다. 왜 우주복을 입었는지, 우주복을 입은 사람이나 듣는 이가 누군지 끝내 드러나지 않는다. 달빛이나 별빛, 태양 아래서 순례길을 걷는 것 또한 명상에서 깨달은 우주와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닐까 짐작할 따름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것도 삶의 전환점이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아주 세찬 바람이 “끝까지 역방향으로” 부는 숨찬 오르막길이었다면, “모래로 뒤덮인 마을”을 지나면 내리막이다. 그때부터 “제 무덤에 들어가려고 꾸물거리는”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지 않아도 된다. 걷는다는 건 결국 자신과 대화다. “답답한 문제를 계속 떠안고 가느냐” 묻고, “언젠가는 불태워야겠지. 그게 다 가지는 방법”이라고 스스로 답한다.

 

오래 걷는다는 건 나와의 싸움이다.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도, 고비를 넘으면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나를 채웠다 비우기도 하고, 나를 잊어버리기도 한다. 몸의 고통에서 잠시 멀어진 시인은 이제 마음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려 한다. 명상이나 걷는 것은 하나의 방편이다. 명상과 여행으로 “내 마음에서 네 마음을 빼는 셈법”(‘권태’)과 “마음이 부러지지 않”는 법을 터득한 시인은 “참 행복한 사람”(‘화답’)이다. “여자도 아내도 졸업”(‘겨울 이력서’)한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시를 쓰는 일”(‘시인의 말’)이다. “고인 물과 탁한 물”(‘권태’)이 주저 없이 섞여 새 물이 되는, 새로운 시 세계를 보여주는 일이다.  

 

우리가 안으면 왜 울 것 같습니까=박병란 지음/북인 펴냄/132쪽/9000원.

 

출처 :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0031817195634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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