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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슬의 詩내기

시인들이 쓴 ‘서정춘 이라는 詩人’

by 정소슬 posted Nov 0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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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이 좋아하는 시인, 그를 노래하다

시인들이 쓴 ‘서정춘 이라는 詩人’

[세계일보] 입력 : 2018-11-02 03:00:00 | 수정 : 2018-11-02 03:00:00

 

 

 

20181101004679_0.jpg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일은 모든 문인의 공통 바람이자 자연스러운 욕망일 테지만 동료 문인, 그것도 같은 장르에 복무하는 이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사랑까지 얻는 일은 쉽지 않다. 자신만의 섬세한 심미안을 가진 까다로운 사람들이 인정하는 단계에서 나아가 그 문인을 제목이나 부제로 삼아 시까지 쓰는 것은 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그 특별한 일이 ‘서정춘’이라는 시인에게는 벌어져 왔다.

 

1968년 신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오래 침묵을 지키다가 등단 28년 만인 1996년 짧은 시 35편을 담은 첫 시집 ‘죽편’을 내면서 문단 내외의 극찬을 한몸에 누린 서정춘(77) 시인. 그이를 두고 여러 시인들이 시를 썼는데 그 시들만 모아보니 무려 43편. 그의 등단 50주년을 기념하는 문집 ‘서정춘이라는 詩人’(도서출판b)에 이 시들을 모았다. 시인 하종오와 조기조가 엮은 이 문집에는 이 시들과 함께 서정춘 시에 단상을 붙인 글들과 화보, 등단기, 연보도 수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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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육명심이 찍은 서정춘 시인. 가난한 마부의 아들로 태어난 시인은 “난폭한 세상의 말들을 순화시키는 언어의 마부가 되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도서출판b 제공

 

“키 작고/ 시 짧고/ 가방끈 짧은/ 순천 토종 서정춘 시인/ 가슴엔 하루 종일 겁나게/ 슴배인 슬픔, 카톡으로/ 실어 나르는 독백 골골샅샅/ 역사를 다시 쓰는”(박노정, ‘서정춘’)

 

서정춘은 전남 순천에서 가난한 마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생후 21일 만에 늑막염 수술 끝에 겨우 살아났고 만 한 살 때는 병으로 생모를 잃었다. 9살 무렵에는 아버지가 끄는 말 구루마 앞자리에 앉아 가다가 조랑말이 내놓은 말똥 냄새가 좋았다고 일기에 썼다. 조랑말과 말방울 소리가 좋아서 자신도 마부가 되겠노라고 말했다가 아버지로부터 난생처음 뺨을 맞고 마구간으로 쫓겨나기도 했다.

 

“그가 참 웅크리고 운다/ 말똥냄새 파고드는 것처럼 웅크리고/ 울다가, 마부 아버지 염해드리는 것처럼/ 꽁꽁 안아들이는 것처럼/ 웅크리고 울다가, 잤다. 아침 일곱 시에 깨,/ 덜 깬 술에 또 술 들어가니까 참말로/ 해장이 되는구나. 길고 긴,/ 질긴 끝 같은 간밤 울음이 도로/ 죄 풀려나온다. 아코디언, 아코디언 같다./ 웅크린 그의 등짝이 지금/ 가난만큼 최소한으로 준다.”(문인수, ‘서정춘’)

 

가난 속에서 그는 중고등학교를 야간으로 다니며 신문배달, 서점 점원, 군청 급사 일을 전전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서점에서 영랑시집과 소월시집을 접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다가 주인이 말려서 나온 뒤로 시인이 되고 싶다는 원을 세웠다. 이후 그는 좋은 시를 만나면 서슴없이 필사를 거듭했다. 군대에서 써온 시들을 퇴고하여 응모한 시로 신춘문예에 당선된 후에는 눈이 맞은 처자와 서울 청계천변 판자촌으로 도망쳤다.

 

“그 시절 사는 게 모두 어려웠지만 정춘이 형 순천 중앙극장 목소리 고운 장내 아나운서 꼬드겨 밤기차 타고 서울로 서울로 도망치던 때의 콩닥이던 심정은 어떠했을까. 청계천이라나, 하여간 썩은 물 흘러가던 시커먼 판자촌 사글셋방에 이불 짐 부리고 담배 한 가치 맛있게 태우고 나서 바람벽 기대어 떨고 있는 처자에게 등 돌리며 큰소리로 외쳤다지. 여기가 이젠 내 고향!”(이시영, ‘여기가 이젠 내 고향’)

 

순천이 낳은 소설가 친구 김승옥의 소개로 동화출판공사에 들어가 19살 아래 이복 막냇동생 학비까지 전담하며 정년퇴직할 때까지 성실하게 가장 역할을 수행한 뒤에서야 첫 시집을 펴냈다. 그는 “황진이는 불과 5편의 시로 5백년을 살았는데 나 또한 단 한 편만이라도 죽어서 남는 시를 쓰겠다는 각오였다”고 당시 심정을 피력한 바 있다. “아무리 비루먹은 말이라도 준마로 만들었던 가난한 마부 아버지처럼 난폭한 세상의 모든 말들 또한 시인의 손으로 순화시키는 언어의 마부가 되는 게 소원”이라던 그가 죽어서도 남길 단 한 편의 후보일 법한 시 ‘죽편’.

 

“여기서부터,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

 

이 시는 다른 시인에게 영감을 주어 이렇게 다시 탄생했다.

 

“지하철역마다 꽂아둔 푸른 깃발/ 대나무들이 나부낀다”(이상인, ‘대숲에서 지하철 타기 - 서정춘 선생님께’)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출처 : http://www.segye.com/newsView/20181101004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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