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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슬의 詩내기

김영준 세 번째 시집 '물고기 미라'

by 정소슬 posted Feb 1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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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집]내 삶에 누가 되지 않을 최소한의 예의

<138>김영준 시인 '물고기 미라'

[머니투데이]  김정수 시인 |입력 : 2018.02.10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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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를 누비던 연어가 남대천을 거슬러 올라 어성전(漁城田)에 이르렀다. 모천을 거슬러 오르는 동안 복잡하고도 미묘한 세속을 벗어던진 연어는 물에서 걸어 나와 시우산방(是牛山房)에 들었다. 어느새 흰소로 변한 물고기는 바람의 말을 받아 시를 썼다. 1984년 '심상'으로 등단한 김영준(1957~ ) 시인이 두 번째 시집 '나무 비린내' 이후 15년 만에 세 번째 시집 '물고기 미라'를 냈다. 산신령이나 흰소라는 별호로 불리는 시인은 교직에서 물러난 이후 양양 어성전에 터를 잡고 홀로 살며 시를 쓰고 있다.

 

이번 시집의 가장 큰 특징은 '단순함'에 있다. 시우산방(是牛山房)에 드는 순간 많은 것을 벗어던진 시인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간다. 도무지 서둘지 않는다. 아니 서두를 필요조차 없다. 산방에 앉아 밖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만 바람소리와 새소리, 비 내리는 소리가 들릴 뿐이다. 발자국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가장 많이 들리는 것은 바람소리, 시에 바람이 많이 나오는 이유다. 새소리를 들으면 무슨 새인지 알 수 있겠지만 굳이 구분하지 않는다. 새는 그냥 다 새일 뿐이고, 나무는 그냥 나무일 뿐이다. 꽃도 다 꽃일 뿐이고, 물고기도 그냥 다 물고기일 뿐이다. 이러한 삶의 자세와 시어의 선택은 극도로 생략되고 절제된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대하는 느낌이다.

 

세상에 시빗거리 만들지 않기 위해 모 시인이 제안한

 

 얼음 시비

 

 되새김 되지 않는 화려한 흔적

 

 내 삶에도 누가 되지 않을 최소한의 예의

- '얼음 시비(詩碑)' 전문

 

 시 '얼음 시비(詩碑)'는 번잡함을 싫어하는 시인의 성정이 잘 드러나 있다. "세상에 시빗거리 만들지 않기 위해", 그리고 "내 삶에도 누가 되지 않"도록 금방 녹아 없어질 얼음으로 시비(詩碑)를 만들자는 것. "화려한 흔적"이라 했지만 사실은 흔적조차 남지 않고 사라지는 "최소한의 예의"인 것이다. 이것도 시인의 제안이 아니라 아는 모 시인이 제안한 것이다. 시인은 이마저도 "누가 되는" 것을 알기에 얼음 시비(詩碑)를 세울 리 없고, 그저 이것을 시로만 남겼을 것이다. 평생 평교사로 재직하다가 퇴직한 시인은 후학을 가르치는 것과 시 이외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시집 약력에도 시집을 나열하지 않고, '시집 『나무 비린내』 외'라고 표기할 만큼 번잡함을 싫어한다.

 

늙은 나무 아래서부터 온다

 늙은 나무의 기운이 하지로 몰려든 어느 새벽부터 스민다 나무 몸이 풀리면 벌레는 비집고 나설 틈을 찾는다

 늙은 나무는 틈이 많다 틈틈이 소리를 넣어두었다가 틈틈이 다독였다가 봄이면 어김없이 소리를 내어놓는다 겨우내 닫아두었던 틈을 밀고 그 소리 따라 벌레가 갸우뚱하는 순간

 

 우듬지에도 온다

 묵은 흙 온기가 우듬지까지 오르는 동안 첫 사랑이며 첫 절정 같은, 노래며 함성 같은, 바람과 햇살 같은 것들을 기억에서 하나 둘 꺼낸다 꺼내는 족족 가지마다 걸어놓으며 발걸음 딛는다 기억 하나하나 새순 되어 얼굴 내밀 때를 안다는 듯 경계 너머 산자락을 익숙히 안다는 듯

 

 늙은 나무가 오늘도 하늘을 우러르는 이유

 개울물이 끄덕이며 끄덕이며 흐르는 이유를 되새김하는

 그런

- '봄은' 전문

 

 이번 시집에는 '겨울새', '가을 하늘', '봄밤', '추분', '늦가을, 남대천', '어떤 봄', '겨울 바다' 등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거의 모든 시가 자연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시인은 자연을 관찰하는 대상이면서 자연에 속해 있다. 자연 '안'에 있으면서 자연 안과 밖을 관찰한다. 마음을 비운 시들은 물아일체(物我一體)와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의 경지('잠몽蠶夢')를 보여준다. 시 '봄은'은 봄이 어떻게 찾아오는가를 '늙은 나무'를 통해 알려준다. 나무는 겨울이 되면 뿌리를 제외한 모든 기관이 성장을 멈춘다. 생명이 모여 있는 나무의 뿌리(하지)가 봄이 오는 것을 가장 먼저 감지한다. "나무 몸이 풀리면" 나무 안에서 잠을 자던 벌레들이 "비집고 나설 틈을 찾는다". "늙은 나무는 틈이 많"아 벌레들이 많이 산다. 많은 틈으로 "어김없이 소리를 내어놓는다". 이 소리는 우듬지를 감싸고 있는 흙에게 전달되고, 새순이 돋고, 개울물이 흐르게 한다. 봄은 늙은 나무의 틈에서 나는 소리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늙은 나무는 틈이 많은 늙은 사람과 다르지 않고, "오늘도 하늘을 우러르는 이유"인 것이다.

 

참 멀고도 먼 길이네 가는 길 곳곳 말 없는 발자국은 보이나 정녕 소는 눈에 띄지 않네 눈에 띄는 건 부러진 발목이거나 떼어버린 꼬리뿐이네 발목만이 서걱서걱 발자국 남기고 꼬리만이 헤프게 울어대네 울음 따라가다 버리고 싶은 마음만 길바닥에 뒤엉켜 있네 자꾸만 채찍질 같은 읍소를 하고 있네

 

 담장 위로 날아가는 뿔을 보네 뿔만 보이네 뿔만 보네

 

 소들은 모두 그림 속에 들어가 나오질 않네 그림 속에서 퇴색하는 흔적만 겨우 남긴 벽이 되었네 결코 울지 않네 침묵조차도 용납지 않네

- '십우도十牛圖' 전문

 

 십우도(十牛圖)는 선 수행의 과정과 의미를 소에 견주어 그림과 시를 통해 근원적인 진리를 깨치는 선(禪)을 시각화한 것이다. 제1은 심우(尋牛), 우거진 수풀을 헤치고 소의 자취를 찾는다. 제2는 견적(見跡), 소를 찾을 실마리가 되는 발자국을 본다. 제3은 견우(見牛), 자취를 따라 찾아들어가 드디어 소를 본다. 제4는 득우(得牛), 정신을 집중하여 소를 잡았으나 날뛰는 소를 뜻대로 다루지는 못하고 산 속으로 구름 속으로 헤매며 채찍을 가한다. 제5는 목우(牧牛), 이제 뜻대로 길들여져 채찍과 고삐가 아니더라도 스스로 사람을 잘 따르기에 이르렀다. 제6은 기우귀가(騎牛歸家), 몸을 소등에 올려놓고 하늘을 쳐다보며 피리 불며 집으로 돌아온다. 제7은 망우존인(忘牛存人), 소를 타고 집에 돌아오니 소는 사라지고 사람만 한가롭다. 제8은 인우구망(人牛俱忘), 소도 소를 몰던 채찍도 없다. 제9는 반본환원(返本還源), 본래 청정하여 한 티끌의 미혹함도 없다. 제10은 입전수수(入纏垂手), 표주박 차고 거리에 들어 집집마다 다니며 더불어 사는 속에 성불하도록 한다(참조: 다음백과사전).

 

어성전으로 들어오는 순간 시인은 이미 제6의 기우귀가(騎牛歸家)의 경지를 추구한다. 스스로 흰소가 된 것. 시우산방(是牛山房)에 들어 오랜 세월 홀로 지내면서 제8 소도 없고 나도 없는 인우구망(人牛俱忘)의 경지를 소망한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은 울지 않는 소로 인하여 모든 것이 허무하다는 걸 깨닫는다. 현실의 소는 해체되어 각각 흩어졌다.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 입 대신에 꼬리가 운다. 하지만 "그림 속에 들어"간 견성(깨달음)의 소는 벽이 되어 울지 않는다. 이는 제10 입전수수(入纏垂手) 경지를 수행하지 않는, 세속으로 내려와 중생들과 함께하지 않는 것은, 중생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반성하는 동시에 비판을 하고 있다. 시인이 이번 시집에서 십우도의 경지를 추구하면서도 비정규직의 아픔('딴전'), "라이베리아의 내전을 종식시킨" 리머 보위('보노보')의 섹스 거부 운동, 용산 참사로 산화한 철거민('12월, 두 개의 문'), 폐지 줍는 노인('체 게바라, 그리고 리아카') 등 불의에 항거하거나 사회적 약자에게 귀를 기울이는 이유다. 시인은 고요에 칩거하고 싶으나 세상은 시인을 입전수수(入纏垂手)하라고 등 떠밀고 있다.

 

물고기 미라=김영준 지음. 북인 펴냄. 120쪽/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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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mt.co.kr/mtview.php?no=201802091709187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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