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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슬의 詩내기

<서평> 다시, 피가 도는 밥을 먹으리라 / 정우영

by 정소슬 posted Aug 1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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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다시, 피가 도는 밥을 먹으리라

<만국의 노동자여> 출간 30년에 붙여

[울산저널] 정우영 시인, 전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2017-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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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청사’ 출판사에서 나온, 백무산의 시집 <만국의 노동자여>는 내게 인생의 책이 되었다. 일과 밥과 삶과 시가 그렇게 사무치게 다가온 적은 없었다. 울분과 적의만 날카로울 뿐, 그때까지도 난 현실성 없는 문학도에 불과했던 것이다. 물론, 시의 시대라 불리울 만큼 역동적인 80년대였던 터라, 내 우매가 적잖이 깨지는 중이긴 했다. 박노해와 김남주, 박영근, 오월시 동인의 시들은 내 어설픈 미망을 깨웠고, 황지우와 이성복 등의 시에서는 언어적 변별을 발견했다.

 

하지만, 놀랍고 새로운 각성은 백무산의 <만국의 노동자여>로부터 왔다. 나는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시 ‘노동의 밥’을 읽다가 마치 급체한 사람처럼 오래도록 시만 바라다보고 있었던 날을. 시는 첫 줄부터 그 어디서도 접하지 못한 문장을 토해냈다. “피가 도는 밥을 먹으리라./ 펄펄 살아 튀는 밥을 먹으리라.” 나는 어지러웠다. 어떤 선지자의 음성을 듣는 듯도 했다. 피가 도는 밥과 펄펄 살아 튀는 밥을 먹겠다고? 강고한 노동자의 선 굵은 분노가 시의 배면에서 이글거리고 있었다. 나는 나를 돌아보았다. 이제껏 내 밥은 어떤 밥이었을까. 살아 있는 밥일까, 죽은 밥일까.

 

지금까지도 이 두 줄의 시행은 내게 그 어떤 선언보다 뜨겁게 각인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화근덩어리이기도 했다. 내 일과 삶과 시가 온통 이 “펄펄”의 늪에 빠진 것이다. 산 밥과 죽은 밥 사이에서 글자 그대로 ‘죽을 맛’이었다. 인식의 눈은 떠졌으나, 현실의 삶은 소시민의 용렬함을 미처 벗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이 간극을 좁히는 데 내 시의 역량이 집중되고는 했으니 그에게 내가 빚을 진 셈인데, 어찌 나만 그러했을까. 평자들에 따르면 시집 <만국의 노동자여>는, “자본의 폭력과 노동의 소외라는 근대의 모순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으며, “노동자로서의 정체성과 선명한 대결 의식”을 예리한 시선으로 감동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그러니 당시 미처 계급의식에 눈뜨지 못한 노동자들과 시민들에게 <만국의 노동자여>는 얼마나 맞춤한 현실 직시의 철학적 교재이자, 시적 교과서였을 것인가.

 

아마도 그래서였을까. <만국의 노동자여>는 “확고한 노동 계급의 정체성과 시각을 본격화한 거의 최초의 시집”이란 위상을 얻게 된다. 그런데 나는 이에 더해 이 시집이 갖추고 있는 미학적 유려함을 짚고 싶다. 1980년대 리얼리즘 시의 문제점으로 무리한 선동과 거칠음을 들고는 하는데, <만국의 노동자여>에서는 이러한 흠결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제도권 미학이 전혀 미치지 않는 곳에서 백무산은 스스로 자생적인 노동의 미학을 갈고 닦았음에 틀림없다. 그 독자성으로 그는 <만국의 노동자여>를, 당대의 그 어떤 시집보다도 빼어난 미학적 감수성과 사회적 상상력을 지닌 시집으로 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저 80년대 그 핍진하고 극악한 노동현실 속에서 그는 어떻게 이같은 미학적 사유를 견지할 수 있었을까. 아직까지도 여기는 내게 미궁에 잠겨 있다.   

 

자, <만국의 노동자여> 출간 30년이다. 일과 밥과 삶에서 30년 전과 현재는 무엇이 다른가. 기성세대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지금 “펄펄 살아 튀는 밥”을 먹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하고. 나는 우리의 현실이 1987년 현재에서 거의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고 자책한다. 백무산의 선지적 발언은 그래서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채로 유효하다. 나와 너의 가슴 속에서 여전히 공명하는 이 소리를, 우리는 새겨들어야 한다. “피가 도는 밥을 먹으리라.” 그래야 우리가 이 천박한 자본주의 물질사회에서 그나마 살아 숨 쉴 수 있다.   

 

정우영 시인, 전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출처 : http://www.usjournal.kr/News/9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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