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쓴 혁명과 사랑의 시는 영원히
[한겨레] 등록 :2015-09-29 18:59
가신이의 발자취

문병란 시인
“이별이 너무 길다 / 슬픔이 너무 길다 /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 가슴과 가슴에 노둣돌을 놓아… 우리는 만나야 한다”(‘직녀에게’) “나는 땅이다 / 길게 누워 있는 빈 땅이다 / 나는 다시 깨끗한 땅이다 / 아무도 손대지 못하는 아픔이다 / 더욱 기름진 역사의 발바닥 밑에서 / 땅은 뜨겁게 뜨겁게 울고 있다”(‘땅의 연가’)
남과 북 7천만 동포들이 즐겨 부르는 ‘직녀에게’와 ‘땅의 연가’ 시인 문병란(사진) 선생께서 지상의 삶을 마감하고 먼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통일의 그날과 모두가 함께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보지 못하고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났다. 돌이켜보면 선생은 1959년, 조선대학 국문학과 2학년 재학 중에 <현대문학>에 ‘가로수’ 외 2편으로 은사이신 다형 김현승 시인의 추천을 받아 한국 문단에 나왔다. <정당성> <땅의 연가> <벼들의 속삭임> <동소산의 머슴새> <직녀에게> 등 40여권의 시집과 <저 미치게 푸른 하늘> <현장문학론> <민족문학론> 등의 30여권의 평론집 및 산문집 등 80여권의 저서를 펴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선생은 전국국어교사 임용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해, 명문 순천고를 시작으로 광주제일고와 전남고교를 거쳐 조선대학교에서 오랫동안 봉직하였다. 5·18 광주 항쟁 때는 군 수사기관의 수배 끝에 상무대 영창에 투옥돼 있던 중 육군77병원에서 수감 형태의 병상 생활을 하다가 사면됐다. 1974년 이른바 긴급조치 시절에 출발한 자유실천문인협의회 회원으로 민주화 운동을 시작한 선생은 1980년 5월 그날부터 이 땅의 ‘역사와 운명’을 결코 비켜서려 하지 않았다.
선생은 문자 그대로 시(문학)와 사람, 몸과 정신, 겉과 속이 다르지 않는 우리 시대의 선비 그리고 큰 스승이었다. 마음과 사상이 늘 열려 있어서, 선생의 세대들은 물론 특히 늙지 않는 ‘젊은이들의 연인’이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분단과 독재시대를 거치지 않았다면 ‘아름답고 촉촉한 서정시’를 쉼 없이 써서 노래하는 그런 시인이었다. 하지만 그의 시는 서정시와 서사시가 한 숨결로 잘 만나서 고향마을 당산나무를 휘돌아가는 강물처럼 우리들 가슴속을 찬란한 음색으로 흔든다. <직녀에게>, <5월의 연가>, <인연서설> 등의 시편들이 그러함을 보여주고 들려준다. 선생의 시는 혁명시인이면서 사랑의 시인으로 널리 회자되는 바이런과 하이네와 같은 반열에 선 한국의 위대한 리얼리즘 시인으로 오래오래 우리와 함께할 것으로 믿는다.
결혼주례라면 저 해남 땅끝의 농부부터 상하계급을 구분하지 않고, 충청도든 경상도는 강원도를 마다하지 않고 불원천리 달려가서 신랑 신부를 다독거려주는 문병란 선생. 강연 약속을 어기지 않기 위하여 눈 내리는 충청도 산골짜기까지 달려가서 청중이 열 명이 될까 말까 한 마을 사람들 앞에서 농민문제, 민족문제,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역설하시던 바로 그 자리에는 광주에서 선생을 모시고(?) 간 광주경찰서 정보과 형사도 있었다 하니 생각하면 얼마나 슬픈 나라, 슬픈 시절이었던가.
아 문병란 선생님! 이제 평안을 누리소서. 기러기 날아오는 이 가을, 부디 영면하소서. 살아서는 민족시인, 하늘에 가서도 영원히 통일시인으로 빛나소서!!
- 김준태 시인(조선대 초빙교수)
다시금 무등으로 환생할 불립문자여
─ 서은 문병란 선생님 영전에 이승철(시인)
우리는 지금, 역사의 혼이 살아있는 민주광장에서
우리들이 그토록 사랑한 이곳 빛고을 거리에서
당신의 큰 이름만을 소리쳐 부르고 있습니다.
올곧은 말씀 하나 섬길 수 없는 분단된 산하
그토록 처절한 이별이 너무나 길어 긴긴 슬픔이
이렇듯 깊어 오직 단 한 분, 직녀를 만나기 위해
마침내 먼먼 기다림 끝에 훠이훠이 길 떠나셨나요.
통일의 노둣돌로 남북을 하나로 잇는 오작교가 되고자
목숨꽃 고이 바쳐 이 땅의 모든 그리움 한데 모으셨나요.
천도가 무심했던 캄캄절벽, 군홧발 소리만 자욱했던 시절
교단과 거리에서 때론 포차에서 후학과 후생들을 일깨우며
자유와 민주, 정의와 양심을 지켜낸 그대 옹골찬 시혼
때론 황토울음이었다가 청산유수 같은 목소리였다가
가짜들과 거짓부렁 위정자들을 내치던 광야의 그 몸짓
우린 오직, ‘문병란’이라는 이름 석 자를 떠올리며
길 없는 그 길목에서 다시금 살판을 만들어냈다.
저 환장할 오월의 눈물 속에서 반짝이던 미소들
저 미치도록 푸르른 하늘을 열어젖히던 임이었네.
화순적벽 꼿꼿한 단애 아래 꽃물로 흐르는 임아.
위대한 광주의 선지자였던 우리들의 시대정신이여.
전라도 뻐꾹새로 오늘, 역사의 혼불이 된 사람이여.
끝내는 운주사 천불천탑, 그 천년의 미소처럼
불멸하는 한 영혼으로 가슴마다 살아 있어라.
통일 연가를 목청껏 부르던 민족시인 문병란 선생이여.
여기 민주광장에서 우리가 그 이름자를 부르고, 또 불러
다시금 무등으로 환생할 우리들의 영원한
불립문자여!
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1066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