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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슬의 詩내기

'사슴의 시인' 노천명은 왜 그토록 구차했을까

by 정소슬 posted Apr 0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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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의 시인' 노천명은 왜 그토록 구차했을까

[백운동천을 따라 서촌을 걷다 16] 다재다능했지만 권력에 굴복했던 노천명 시인의 가옥

[오마이뉴스] 16.04.04 21:15 l 최종 업데이트 16.04.04 21:15 l 글: 유영호(ecosansa) | 편집: 김예지(jeor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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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천명이 1919년 경성에 와서 1949년부터 그가 사망한 1957년까지 거주한 집  

ⓒ 유영호

 

서촌 '이상의 집'에서 불과 2~3분 거리에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시인, 노천명의 집이 있다. 비록 세월이 흐르며 변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기본적인 모습을 그대로 갖고 있기에 2015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60년 가까이 되었지만, 이곳에 서서 시인 노천명을 상상해 보기로 하자.

 

노천명의 시 가운데 <사슴>이 워낙 유명한 탓에, 보통 우리는 그에게 '시인'이라는 칭호를 붙인다. 하지만 그는 시인으로 활동할 뿐만 아니라 소설가와 언론인으로도 재능을 보여준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

 

노천명은 1911년 황해도 장연 태생으로, 본명은 노기선이었는데 어릴 때 병으로 사경을 헤맨 뒤 지금의 이름으로 개명하였다. 또 그는 부친이 사망한 뒤 1919년 경성으로 올라와 종로구 체부동 이모 집에서 살면서 진명보통학교와 진명여고를 거쳐 1934년 이화여전 영문과를 졸업했다. 그러다 해방된 후 1949년 이곳 누하동 225-1번지로 이사를 와서, 1957년 6월 이곳에서 숨졌다.

 

다재다능한 시인, 권력 앞에 갈대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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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천명  

ⓒ 국어국문학자료사전

 

노천명의 활동 상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1934년 이화여전을 졸업하고 <조선중앙일보> 학예부 기자로 4년간 근무했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로 시작되는 유명한 시 <사슴>도 이때 발표되었다. 그 뒤 1938년에는 '극예술연구회'에서 활동했고 <조선일보> 기자가 되었다.

 

그러다 1943년에는 총독부기관지인 <매일신보> 기자가 되어 '승전하는 날', '출정하는 동생에게', '진혼가' 등 다수의 친일 작품을 발표했다.

 

광복 후에는 거센 친일파 척결 분위기에 대외활동을 자제하고, 일본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전쟁이 발발했다.

 

곧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했고 미쳐 피난 가지 못한 노천명은 이때 월북 작가인 임화, 김사량 등이 주도하는 '조선문학가동맹'에 가입하여 '문화인 총궐기 대회' 등의 행사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다시 유엔군이 서울을 수복하자 노천명은 좌익분자 혐의로 자그마치 20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여러 문인이 구명운동을 벌였고, 약 6개월간 투옥한 뒤 1951년 4월 석방됐다.

 

그 후 노천명은 공보실 중앙 방송국에서 일하고, 3차 시집을 발표했지만 건강이 악화됐다. 1957년 6월 16일엔 재생불능성 뇌빈혈로 쓰러졌고, 46년이라는 짧은 생을 마감했다.

 

노천명은 그의 대표작 '사슴'으로 인하여 독자들에게는 한없이 순수한 시적 낭만에 잠긴 소녀처럼 상상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오만할 정도의 도도함과 결벽증을 지닌 여성이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성품으로 인하여 동료들과 자주 충돌하였으며, 누구에게도 곁을 주지 못해 독신으로 살아야만 했다. 이러한 자신의 성격을 "대처럼 꺾어는 질망정 구리 모양 휘어지기가 어려운 성격"이었다고 그는 <자화상>에서 고백하였다.

 

하지만 그런 도도함조차 권력 앞에서는 한낱 갈대에 불과했나 보다. 일제강점기 총독부 권력에 굴복했고, 또 전쟁 당시 인민군과 유엔군의 권력이 교차하는 상황에서 그때그때 굴종한 노천명의 모습을 상상해보면 그에게 도도함이란 기회주의와 같은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

 

일본 패전 후 삭제해버린 친일시, 그는 구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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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 직전 친일시를 실어 출간했다가 해방 후 친일시만 잘라내어 다시 출간한 시집 《창변》의 목차, 친일시는 창호지로 가렸다.  

ⓒ 유영호

 

이런 면모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는 해방 전인 1945년 2월 25일 시집 <창변>을 출간하며 성대한 출판 기념회를 했다. 그 시집에는 친일시 9편이 수록되어 있었다. 그런데 불과 6개월 뒤 일본이 패전하고 해방이 되자 그는 그 시집에서 친일시 9편을 빼고 계속 출판했다.

 

친일시는 시집의 마지막 부분에 편집되어 있었기 때문에, 뒷부분의 친일시를 본문에서 없애고 흔적을 지웠지만 목차에는 그 흔적이 일부 남아 있는 '재단장판'을 유통한 것이다. 물론 목차도 친일시가 나열된 부분은 뜯어냈지만, 다른 시와 섞여 나열된 페이지는 친일시의 제목을 창호지로 가렸다. 참으로 구차한 행위다.

 

서울시가 이곳을 미래유산으로 지정할 때 어떠한 이유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알 수 없고, 또 이곳을 찾을 많은 관광객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할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최근 일본인 관광객이 이 일대를 많이 찾으니 그들을 위해 노천명의 유명한 이 시를 이곳에 써 놓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남아면 군복에 총을 메고

나라 위해 전장에 나감이 소원이리니

 

이 영광의 날

나도 사나이였드면 나도 사나이였드면

귀한 부르심 입는 것을-

 

갑옷 떨쳐입고 머리에 투구 쓰고

창검을 휘두르며 싸움터로 나감이

남아의 장쾌한 기상이어든-

 

이제

아세아의 큰 운명을 걸고

우리의 숙원을 뿜으며

저 영미를 치는 마당에랴

 

영문(營門)으로 들라는 우렁찬 나팔소리-

 

오랜만에

이 강산 골짜구니와 마을 구석구석을

흥분 속에 흔드네-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 <매일신보>, 1943.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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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인징병제 실시를 찬양한 노천명의 시,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매일신보 1943.8.5)  

ⓒ 대한매일신보

 

참고로 노천명은 서울 중곡동 천주교 묘지에 묻혔다가, 개발에 밀려 1973년 경기도 고양시 대자동 천주교 묘지에 그의 언니 노기용과 함께 나란히 안장되었다. 고양시에서는 그의 시비 건립을 추진했으나, 시민단체들이 그의 친일 경력을 들어 이를 반대하면서 취소되었다.

 

 

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94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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