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겠다, 마량에 가면 / 이재무
몰래 숨겨놓은 여인 데불고
소문조차 아득한 먼 포구에 가서
한 석 달 소꿉장난 같은 살림이나 살다 왔으면,
한나절만 돌아도 동네 안팎
구구절절 훤한, 누이의 손거울 같은 마을
마량에 와서 빈둥빈둥 세월의 봉놋방에 누워
발가락장단에 철 지난 유행가나 부르며
사투리 쓰는, 갯벌 같은 여자와
옆구리에 간지럼이나 실컷 태우다 왔으면,
사람들의 눈총이야 내 알 바 아니고
조석으로 부두에 나가
낚싯대는 시늉으로 던져두고
옥빛 바닷물에 텃밭 떠난 배추 같은 생 절이고
절이다가 그짓도 그만 부질없어 신물이 나면
통통배 얻어 타고 먼 바다 휭, 하니 돌다 왔으면,
그렇게 감쪽같이 비밀 주머니 하나를 꿰차고 와서
시치미 뚝 떼고 앉아 남은 뜻도 모르는
천지 웃음 실실 흘리며 알량한 여생 거덜냈으면
- 시집 『저녁 6시』(창비, 2007)에서
<이재무>
- 1958년 충남 부여 출생.
- 1983년 <삶의문학>, <실천문학>, <문학과사회>등에 시를 발표로 작품활동 시작.
- 시집 『섣달 그믐』 『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 『벌초』 『몸에 피는 꽃』 『시간의 그물』 『위대한 식사』 『푸른 고집』 『저녁6시』 『슬픔에게 무릎을 꿇다』등
<감상>
'마량'이라 하면 충남 서천의 자그마한 포구 마을인데 지도상으로 보면
꼭 낚시바늘 같기도 하고,
해마의 머리 같기도 하고 그의 성기 같기도 한,모습부터가 하도 기이해 이 시의 표현 표현이 더욱 적나라하다.
어쩌면 사람들 가슴속에 숨긴 진짜 성기의 모습이 저 모습이 아닐까 싶은,일탈을 당하는 배우자로서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배신이고 배반일 테지만
한 겹 너머 제3자가 되면 그저 부럽기만 한 로망이고 로맨스가 되는,
그래서 영화가 흥행하고 으쓱한 촌구석까지 모텔이 범람하는 걸 거다.내 집 앞 골목 어귀에도
'천지 웃음 실실 흘리며 알량한 여생 거덜'낼 <Vision(지나칠 적마다 하필 웬 비전일까, 도무지 궁금하다)>이란 모텔이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