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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슬의 詩내기

평밭 할매의 시 / 이응인

by 정소슬 posted Sep 1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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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밭 할매의 시 / 이응인



새벽밥 뜨는 둥 마는 둥
부리나케 산으로 달려가는
평밭 할매.
아름드리 서어나무 끌어안고
"미안하데이."
"정말 미안하데이."
중얼대며 떨고 섰다.


번득이는 톱날이 다가와
"할매, 다쳐도 책임 못 져요."
위협하면
"그래 이놈아! 내 다리부터 끊어라."
가로막는다.


나무와 몸을 맞대고
영하의 체온을 나누던
평밭 할매.
톱날이 점심 먹으러 간 사이
절룩이며 비닐 천막에 내려와
몸을 데우고 요기를 한다.


새로 지은 원자력 발전소
76만 5천 볼트 고압 전기를
먼 도시로 보내기 위해
아파트 40층 높이
송전탑이 들어설 자리.
나무를 베어내고
산을 깎아 뭉갠다.


톱날이 몰려오는 소리
지싯골 할배도
도방동 할매도
뚝뚝 분질러지는 관절을 이어
허리 굽은 조선솔 끌어안는다.
굴참나무 앞을 막아선다.


화악산 너머
해가 꼴깍 넘어갈 때까지
평밭 할매는
서어나무 붙들고 몸을 비비며
시를 왼다.


"정신 차리레이."
"정신 차리레이."
"그래야 니도 살고
내도 산다."


문예지를 뒤적여
문학상으로 빛나는 시를
아무리 읽어봐도
평밭 할매
서어나무와 몸을 나눈
그런 시는 보이지 않는다.


- 시집 『솔직히 나는 흔들리고 있다(2015, 나라말)』중에서



<이응인>

lee_eung_in.jpg

-. 1962년 경남 거창 출생.
-. 1987년 무크지 <전망>으로 등단.
-. 시집 『투명한 얼음장』, 『따뜻한 곳』, 『천천히 오는 기다림』, 『어린 꽃다지를 위하여』, 『그냥 휘파람새』, 『솔직히 나는 흔들리고 있다』.



<감상>

삽짝 중앙에 전봇대를 박아도 항의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라에서 하는 일을 감히 대들다간 불경죄로 엄히 처벌받던 때가 있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다. 수 천년의 일족 왕권과 일제 압정을 거치면서 고착화되어버린 개인 말살주의의 잔재가 여태도 남아 공권력이란 이름으로 개개인의 권리와 자유는 묵살·봉쇄 당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순박하기만 하던 산골 농민들이 그것도 7, 80대 노인들이 산 속 나무들 생존권과 그곳 원주민들의 환경권을 내세워 무소불위 공권력에 맞짱떴으니 일대 사건이었다. 가히 혁명적 환경 반란이었다. 사건의 발단부터 무려 십 수년을 끌어왔다는 점으로만 봐도 밀어붙이기 식 국책사업의 위험성을 충분히 일깨웠다.
아직도 국가기관 연구소에서는 보안이란 철통 장막을 치고 그 안에서 무도 무식한 금긋기가 자행되고 있다.


평밭 할매의 "정신 차리레이. 그래야 니도 살고 내도 산다."


이 절규를 그냥 서어나무와 나누는 가벼운 말로 넘겨 들었다간 배금사상을 신봉하는 재발독재자들은 훗날 이완용에 버금가는 환경 역적으로 불릴 것이다.
잠시 이익을 위해 국토를 농간해온 그들에게 보내는 엄한 경고며 인자한 타이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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