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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슬의 詩내기

[故 임세원 교수의 영면을 빕니다] 고통의 공감, “동행의 언어”

by 정소슬 posted Jan 0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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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고통의 공감, “동행의 언어”

윤조원 | 고려대 교수·영문학

[경향신문] 입력 : 2019.01.03 20:32:04 수정 : 2019.01.03 20:3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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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는 우리는 행복과 건강을 비는 축원을 나눈다. 모두에게 고통이 덜한 삶을 기원하는 마음이 공동의 정서를 이루는 이때, 우울증 치료와 자살예방에 헌신해 왔던 정신과 의사 임세원 교수가 환자의 흉기에 숨졌다는 소식은 충격적이다. 고통을 나눈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고통은 얼마나 파괴적이 될 수 있는가.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고통을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은 더욱 명백하다.

 

아픔을 호소하는 목소리들이 사방에서 들려온다. ‘미투’가 그러하고, 이른바 갑질에 대한 ‘을’들의 고발도 그러하다. 각계각층에서 경제상황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한다. 삶이 예전보다 더 고통스러워진 것일까?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개발독재시대, 앞으로 나아가는 데 급급하던 시절에는 서민과 약자들이 침묵을 강요당했다. 일상화된 고통을 이야기할 언어도, 들어주는 장치도 제대로 없었다. 그저 참아야 하는 줄로만 알았던 고통, 말 못했던 고통에 대해 이제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한편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경제성장과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개선되지 않은 구조적 모순들은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고통을 줄이지 못했다. 국민생활수준의 전반적 향상 이면의 상대적 박탈감은 소시민적 삶의 고통을 더 심화하기도 했다. 부쩍 높아진 ‘좋은 삶’의 기준이 개인의 가치를 평가하는 일종의 척도로 작동하는 가운데 ‘좋은 삶’의 실현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지는 역설적 현실은 그 자체로 고통일 뿐 아니라 ‘희망고문’이라는 새로운 고통도 유발한다. 비정규직 젊은이들이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일하다 비명횡사하는 일이 반복된다. 그들이 감당했을 고통, 그리고 남은 사람들이 짊어져야 할 고통은 상상을 초월하지만 일상이 되었다.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제도적으로 줄여나가는 노력은, 고통에 대한 공감의 확산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감당하기 어려운 큰일,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겪었거나 병을 앓았던 사람은 (즉 우리들 대부분은) 안다. 고통이 얼마나 외로운 것인지를. 마음의 고통도, 육체의 고통도 다른 사람이 대신 겪을 수 없으며, 고통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언어는 없다. 그래서 예술이, 일상의 언어를 초과하는 고통을 가리키는 언어가 되기도 하고, 개인의 고통을 넘어서는 목소리가 되기도 한다. 신경계의 병증으로 인한 고통 속에서 써낸 시집 <죽음의 자서전>에서 김혜순 시인은, “아직 죽지 않아서 부끄럽지 않냐고 매년 매달 저 무덤들에서 저 저잣거리에서 질문이 솟아오르는 나라에서, 이토록 억울한 죽음이 수많은 나라에서 시를 쓴다는 것은 죽음을 선취한 자의 목소리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라고 묻는다. 고통을 어떻게 이해하고 다룰 것인지를 묻는 책들도 속속 출판되어, 고통이 우리 시대의 화두임을 증명하면서 고통에 접근하는 방식 자체의 성숙을 도모하고 있다.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 다만 짐작하고 공감하려 노력하면서 고통 속의 사람이 버텨내기를 바랄 수 있을 뿐이며, 필연적으로 각자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 삶 속에 우리가 외롭게 함께 있음을 알려줄 수 있을 뿐이다. 고통을 공감하려는 노력은 고통스럽다.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을 우리가 자기도 모르게 외면하게 되는 것은, 고통이 전염될 것에 대한 두려움, 공감이 초래할 고통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을 키우고 발휘하는 것은 그래서 어렵다.

 

고통은 존재로서의 한계를 느끼게 하기에 죽음과 맞닿아 있다. 몸과 정신을 샅샅이 바스러뜨리는 필멸의 무게를 감각으로 깨닫는 동시에 어처구니없이 무기력해지는 경험이다. 고통 속에서 우리는 모두 혼자지만, 바로 그 외로움과 무력함을 바탕으로 공감을 시도할 수 있다.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에서 엄기호 교수가 “고통 자체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었지만, 고통을 겪으며 홀로 고군분투한 이야기, 그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는 상대와 상대의 이야기를 환대했다”고 기록하면서 모색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동행의 언어”이다.

 

임세원 교수는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는 책을 남겼다. 그 자신 또한 육체의 통증과 그에 뒤따른 우울증을 겪으면서 고통의 심리적, 사회적 차원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노력 속에서 자신과 타인의 고통에 가 닿는 언어를 찾아 나섰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의료진의 안전을 보장하는 조치를 요구하면서도, 그의 유족과 동료들은 정신적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사회적 낙인 없이 적절한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신과 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 그리고 의료계 내의 경계심리 확산에 주의해 달라는 그들의 당부야말로 임 교수의 유지를 이어가는 실천이며, 아직 우리 사회에서 더 성장하고 확산해야 할 “동행의 언어”를 향한 간곡한 청원이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1032032045&code=99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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