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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슬의 詩내기

<- 문병란 선생님의 손편지 36

by 정소슬 posted Aug 0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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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란 선생님의 손편지 36

 

 

 

    희망가 / 문병란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는 헤엄을 치고

    눈보라 속에서도

    매화는 꽃망울을 튼다.

     

    절망 속에서도

    삶의 끈기는 희망을 찾고

    사막의 고통 속에서도

    인간은 오아시스의 그늘을 찾는다.

     

    눈 덮인 겨울의 밭고랑에서도

    보리는 뿌리를 뻗고

    마늘은 빙점에서도

    그 매운 맛 향기를 지닌다.

     

    절망은 희망의 어머니

    고통은 행복의 스승

    시련 없이 성취는 오지 않고

    단련 없이 명검은 날이 서지 않는다.

     

    꿈꾸는 자여, 어둠 속에서

    멀리 반짝이는 별빛을 따라

    긴 고행길 멈추지 말라.

     

    인생항로

    파도는 높고

    폭풍우 몰아쳐 배는 흔들려도

    한 고비 지나면

    구름 뒤 태양은 다시 뜨고

    고요한 뱃길 순항의 내일이 꼭 찾아온다.

     

     

     

    가을의 풍경화 / 문병란

     

     

    가을이 되면

    모든 풍경들은

    하나의 소리로 변해 버린다.

     

    산봉우리들은 높은음자리표,

    둘 사이 흐르는 계곡의 여울물 소리는 피아니시모,

    산들바람은 안단테 칸타빌레

    비바체 아다지오로 타오르는 단풍잎,

     

    가을이 되면

    모든 풍경들은

    하나의 악보로 변해버린다.

     

    산봉우리에서

    골짜기로 불어오는 바람 소리는

    계절을 장송하는 고요한 레퀴엠,

    종일 떠나는 것들을 위하여

    낙엽은 이별의 손수건을 흔들고

    만장을 두른 야국은 눈물을 머금는다.

     

    봄과 여름을 지나

    지금은 가을의 악장이

    로만스 그레이로 고요히 저무는 시간,

    귀뚜라미 소리는

    짧은 휴지부 속에 숨고

    이별은 되도록 짧게

    늦은 밤 달은 G선상의 아리아로 떠오른다.

     

     

     

    인연서설 / 문병란

     

     

    꽃이 꽃을 향하여 피어나듯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

    그렇게 묵묵히 서로를 바라보는 일이다.

     

    물을 찾는 뿌리를 안으로 감춘 채

    원망과 그리움을 불길로 건네며

    너는 나의 애달픈 꽃이 되고

    나는 너의 서러운 꽃이 된다.

     

    사랑은 저만치 피어 있는 한 송이 풀꽃

    이 애틋한 몸짓

    서로의 빛깔과 냄새를 나누어 가지며

    사랑은 가진 것 하나씩 잃어 가는 일이다.

     

    각기 다른 인연의 한 끝에 서서

    눈물에 젖은 정한 눈빛 하늘거리며

    바람결에도 곱게 무늬 지는 가슴

    사랑은 서로의 눈물 속에 젖어 가는 일이다.

     

    오가는 인생 길에 애틋이 피어났던

    너와 나의 애달픈 연분도

    가시덤불 찔레꽃으로 어우러지고

    다하지 못한 그리움

    사랑은 하나가 되려나

    마침내 부서진 가슴 핏빛 노을로 타오르나니

     

    이 밤도 파도는 밀려와

    잠 못 드는 바닷가에 모래알로 부서지고

    사랑은 서로의 가슴에 가서 고이 죽어 가는 일이다.

     

     

     

    여름날의 기도 / 문병란

     

     

    여름은 육체의 계절

    아직 기도하기에는 햇볕이 너무 뜨겁습니다

     

    내 청춘은 먼 항구에서

    한낮의 태양을 겨루어

    그 꿈과 사랑을 연습 중이고

     

    아직 주인이 없는 술잔에는?

    빨간 입술이 철철 넘치고 있습니다

     

    멀리 멀리 떠났던 마음들

    등불 밑으로 돌아오지 않고

    별똥별이 흐르는 밤

    젊은이들은 그 연인들 곁에서

    빨간 산딸기의 향기를 음미하고 있습니다

     

    여름은 기도하기에는 이른 시간

    개똥벌레의 메시지가 전달되는 곳에서

    나의 소년은 이방인의 눈망울에 초롱을 켜고

    이 아침 나의 새벽 위엔

    고향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리는 시간입니다

     

    주여, 흩어진 발자국들 널려 있는

    먼 방랑의 해변에서

    나의 야생녀는 바다로 뛰어들고

     

    아직도 나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기다림이 끝나지 않은

    사향 박하의 뒤안길에서

    한 마리 꽃뱀이 혀를 날름거릴 때

     

    나는 돌멩이를 던집니다

    자꼬 자꼬 유성이 남으로 흐르는 밤

    나는 아직도 아득한 꿈속에서

    해바라기의 목을 조릅니다

     

     

     

    야성의 여름 / 문병란

    - 랭보시편·5

     

     

    태양의 계절

    나체주의자들을 위하여

    8월은 해변에서 도덕성을 벗는다.

     

    번개와 우레,

    소나기 퍼붓고 간 다음

    탈모주의자 해바라기는

    아폴로의 연정을 겨룬다.

     

    여름은 방랑객의 고향

    우정과 술이 있는 마을을 지나

    랭보처럼 껄껄대며 가리라

    베를렌느처럼 술이 취해 가리라.

     

    말없는 로맨스

    사랑은 눈으로 고백하고

    술은 입으로 마시고

    오 모처럼 주정부리고 싶은 날.

     

    나는 태양을 향해 가리라

    앞가슴 풀어헤치고

    넥타이도 없이

    나는 맨발로 가리라

     

    모든 것 다 무시해 버리는

    악동 랭보처럼.

    파멸을 안고 가는

    주정뱅이 베를렌느처럼.

     

     

     

    ■ 지난번 「잠 안 오는 밤에 쓴 편지」 즉흥시 모음집과 금번(7/21) 보내주신 글월 잘 읽었습니다.

    유명 무명간에 쓴 시작 변(주로 명성 있는 분)을 모두 섭렵하고, 왜 시를 쓰는가 그 이유를 생각해본 글 잘 읽었습니다.

    시를 좋아하는 원죄 때문에 수많은 남의 시 감상평을 쓰고 여기 저기서 그 사람들의 시 창작의도를 모아 자신과 비교하고

    그러나, 시는 밥 먹여 주지도 않고 노동을(아파트 경비) 생계를 도모하면서도 그 시사랑은 철철 넘치니 정소슬님의 글을 대하면 대학교수 출신 시인들 부끄럽군요.

    일일이 답장도 보내주시니 감사하면서도 만류하고 싶습니다.

     

    「희망가」돈을 벌어주리라 어떤 기대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민중과 유리된 시를 위한 시, 시인 자신들의 성가(聲價)를 올리고 일류가 되고 상을 타기 위해 난해하고 괴기한 시를 쓰는 그런 시와 민중시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이 땅의 민중과 함께하는 시로서 「그 광고회사」가 무엇을 노리던 「희망가」가 이 땅의 서민들에게 '희망'이 되기를 소망하는 뜻에서 일단 구두 승낙을 했으나 계약에 대한 통보는 아직 없습니다.

    다만 「희망가」가 서민들의 고난 극복에 다소나마 도움이 된다면 그것이 내 전부의 의도입니다.

    다시 꼼꼼히 보살펴 주시고 알맞은 대접 운운하시니 그것 또한 자랑(?)같아 면구스럽습니다.

     

    성인 예수도 말마다 선량한 민중을 구원하려 했다고 그 사랑의 종교 외쳤지만 이스라엘 낡은 종교에 물론 종교지도자들과 무지한 민중에 의해 그것도 로마 식민지 총독에 고발하여 사형토록 권장했습니다.

    민중이 정의로우냐? 꼭 그런 것은 아니나 모든 인류의 단위가 민중(인민)이기 때문에 시적 정의도 거기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그러기에 나의 시는 평론가나 시인보다 민중들이 지키고 애호해 왔습니다.

    민중시인, 감히 그런 헌사를 멋대로 쓰면서 과연 나는 시다운 시 몇 편이나 썼는가 의구심을 갖습니다.

     

    여름 시 곁들여 안부 전합니다.

    노동자 속에 시인도 포함되는가.

    과연 시 쓰는 일도 노동인가.

     

    2015. 7. 25. 서은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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