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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슬의 詩내기

2023-05-01 제133주년 세계 노동절에

by 정소슬 posted May 0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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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근로'는 개나 줘라 / 정소슬

 

 

노동은 없고 근로만이 존재하는 나라

이 나라 법전에는 노동이란 단어는 없고 근로란 말만 그 자리 대신하고 있단다

 

- 노동(勞動) : [명사]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

- 근로(勤勞) : [명사] 부지런히 일함.

 

일할 로(勞)를 앞세운 '노동(勞動)'에 반하여, 부지런할 근(勤)을 앞세워 주종 간 종(從)의 헌신을 강제하려한 의도된 명사 '근로(勤勞)'!

이 '근로'를 독려하고자 정한 3월 10일 근로 기념일이 36년 만에 5월 1일로 되돌려지긴 하였으나, 그로부터 30년이 더 지난 지금에도 '노동절' 아닌 '근로자의 날'로 불리고 있음이니

 

국가보안법에 버금가는 '근로기준법'이라는 노동 악법 개 목걸이로

나의 희생에 빨대 꽂아 배 채워온 너

비정규 저임금 등 각종 차별로 배때기 양껏 키워온 너

 

이제, '근로'는 너나 해라

 

위험한 컨베이어벨트 위에 더 이상 나를 내몰지 말고

가난한 난간으로 더 이상 나를 떠밀지 말고

폭압적 근로로 더 이상 나를 죽이지 말고

 

이제, '근로'는 부지런한 너나 해라

3D도 잔업 특근도 네가 다 하고

최저 임금도 열정 페이도 네가 다 가지라

 

이제, '근로'라는 개 목걸이는

네가 차든지

원 주인 개에게나 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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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문학관에서 주최하는 제2회 노동예술제 기념시집 『붉은 노동의 얼굴』(푸른사상 동인시 15). 2023년 5월 1일 간행.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적인 모순과 부당한 노동 현실에 맞서 연대하고 투쟁하는 44명 시인의 목소리를 모은 시집이다. 인간다운 세계를 만들어가는 시인들의 절실한 고민이 담긴 새파란 불꽃 같은 시편들은 노동의 참된 가치를 알려준다.

 

■ 함께한 시인들

강민숙, 강태승, 공광규, 김광렬, 김려원, 김림, 김옥숙, 김완, 김용아, 김윤환, 김이하, 김정원, 김채운, 김흥기, 김희정, 나종영, 맹문재, 박관서, 박미경, 박설희, 박이정, 봉윤숙, 성희직, 유국환, 유순예, 유종, 윤기묵, 윤석홍, 이문복, 이애리, 이은래, 이인호, 이정록, 임윤, 정세훈, 정소슬, 정연수, 정연홍, 정원도, 조성웅, 조현옥, 채상근, 한영희, 함진원

 

■ 책머리에 중에서

정부가 일주일의 노동 시간을 늘리는 제도 개편안을 발표,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문학관이 제2회 노동예술제 기념 시집 『붉은 노동의 얼굴』을 펴냅니다.

자본 숭상 노동 천대 정권이 노동자의 노골적인 지배자가 되어 제멋대로 휘두르는 권력으로 인해 노동자의 노동 시간과 임금, 노동 환경 등이 마구 위협받고 있습니다. 이에 44명의 시인들이 이 땅의 핍진한 노동자의 이름을 호명하여 작품에 담았습니다.

 - 정세훈(노동문학관장)

 

■ 작품 해설 중에서

노동문학은 민중문학이나 통일문학의 토대이자 공동체이다. 그렇기에 노동문학의 침체는 “사라진 건 없는데 사라진 민족문학”이 “한국문학이 되었”고, “통일문학이야 진즉에 사라져/세계문학이” 된 데서 볼 수 있듯이 그 이상의 손실을 가져왔다. 노동문학이 소멸하면 민중문학도 사라지고, 노동문학이 부활하면 민중문학도 되살아난다.

노동문학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일 년이면 이천여 명이 죽어나가는/노동의 검은 눈빛”이 있기 때문이다. 몸을 써서 노동하다가 사망하거나 다치는 노동자들이 여전하므로 작가들이 그들과 함께하는 것은 당연한 책무이다. 그런데도 한국 문단은 급속히 보수화되고 이기적인 개인주의로 함몰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노동자가 분명 존재하고 있기에 노동문학이 침체되거나 박제화되어서는 안 된다. 노동자에게 불리하고 삶의 조건을 위협하는 상황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므로 그들과 함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노동문학의 범주를 넓히고, 주제를 심화시키고, 그리고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연대의식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체제는 근본적인 모순을 안고 있다. 개인의 분투로는 감당할 수 없는 불평등이 지배하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와 연대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가는 시인들의 정치의식이 요구된다.

- 맹문재(문학평론가·안양대 교수)

 

■ 시집 속으로

 

붉은 노동의 얼굴 / 김옥숙

 

 

뜨겁게 타오르는 불길 속 같은

8월의 뙤약볕 아래

택배차를 세워놓고

무거운 생수를 나르는

붉은 노동의 얼굴을 보았다

세상을 들어 올리는 사람을 보았다

 

생사를 가르는

뜨거운 화염 속을 헤쳐 나온 그가

따가운 시선이라는 모진 불길 속에서도

생활이라는 꺼지지 않는 불길 속에서도

 

붉은 화상 흉터 가득한 얼굴로

비지땀 흘리며

묵묵히 짐을 나르고 있었다

붉은 화상 흉터투성이일지라도

정직한 한 끼 밥을 위하여

식구들의 김 오르는 밥상을 위하여

의연하고 굳센 얼굴로

붉은 노동의 얼굴로

기꺼이

붉은 상처의 꽃이 된 사람

뜨거운 뙤약볕 아래

붉은 노동의 얼굴이 흘린 땀방울

무거운 세상을

번쩍 들어 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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