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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슬의 詩내기

김원봉 혈육이 살아온 학살과 탄압의 70년

by 정소슬 posted Jul 2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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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봉 혈육이 살아온 학살과 탄압의 70년

[시사IN] 정희상 기자 | 호수 670 | 승인 2020.07.24 11:44

이승만 정권은 항일 무장투쟁 지도자 약산 김원봉의 네 형제를 사살했고, 박정희 정권은 살아남은 혈육을 연좌제로 옭아맸으며, 박근혜 정권은 후손이 낸 국가배상 민사소송을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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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조남진

약산 김원봉의 막냇동생 김구봉의 유복자로 태어난 김용건씨가 가족사를 들려주고 있다.

 

서울에서 섬유업에 종사하는 김용건씨(69)는 항일 의열단을 이끈 약산 김원봉의 친조카다. 아버지 김구봉은 약산의 11남매(9남2녀) 중 막내다. 하지만 김용건씨는 아버지의 얼굴을 모른다. 그가 어머니 뱃속에서 태동하던 1950년 7월 초순, 당시 22세로 부산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아버지 김구봉은 경남 밀양의 자택으로 갑자기 들이닥친 군경한테 끌려갔다. 그는 세 형 김용봉, 김봉기, 김덕봉과 나란히 붙들렸다. 이렇게 체포된 약산의 네 동생은 아무 영문도 모른 채 그대로 산골짜기에 끌려가 집단 총살을 당했다. 6·25전쟁 발발 후 밀양 지역에서 예비검속으로 체포된 국민보도연맹원 300여 명과 함께 살해당한 것이다.

 

국민보도연맹은, 이승만 정부가 1949년 좌익 사상에 물든 사람들을 전향시켜 교화한다는 명분으로 만든 단체다. 거의 강제로 조직해서 좌익 활동을 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보도연맹원으로 다수가 등록되었다. 1949년 말엔 보도연맹원이 30만여 명에 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민국 군경은 6·25 발발 직후 보도연맹원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검속과 학살을 자행한다. 그 피해자 중 약산의 가족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승만 시대는 약산 김원봉의 혈육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을죄’가 되는 무시무시한 세상이었다. 약산 김원봉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가장 두려워했다는 독립운동가다. 일제가 백범 김구 선생에게 내건 현상금 60만원보다 40만원이나 많은 100만원을 약산에게 내걸 정도였다. 1919년 조선의열단(의열단)을 창단한 약산은 크고 작은 무장 독립투쟁을 주도했다. 1930년대에는 백범과 독립운동의 양대 거목으로 불릴 만큼 당시 항일 무장투쟁에서 걸출한 지도자였다. 조선의용대장, 민족혁명당 총서기,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태평양전쟁 말기 임시정부 자력으로 항일 무장투쟁을 벌여 독립을 쟁취하고자 분투했지만 미군의 원폭 투하로 기회를 갖지 못한 채 광복을 맞았다.

 

약산이 귀국해 마주한 현실은 친일파가 득세하는 분단된 조국이었다. 1947년 2월 약산은, 독립군을 고문하던 친일 경찰로 악명을 떨치다가 광복 후 미군정 경찰로 옷을 갈아입은 노덕술에게 끌려가 뺨을 맞는 등 치욕을 당했다. 약산은 친일파가 득세하는 비참한 조국에서 몽양 여운형과 고하 송진우 등 민족 지도자들이 괴한의 흉탄에 쓰러지는 현실에 울분을 토하던 터였다. 그해 백범 김구와 함께 평양에서 열린 남북협상회의에 참석한 약산은 끝내 남쪽으로 내려오지 않고 눌러앉았다. 비운의 서막이었다.

 

이후 약산은 이승만 정부에서 월북한 빨갱이로 낙인찍혔다. 북한에서도 약산은 1958년 ‘국제 간첩’(연안파)으로 몰려 숙청되었다. 이승만 정부는 6·25 개전 초기 고향인 밀양에서 살던 약산의 형제들을 붙잡아 학살한 뒤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유족에게 시신을 인계하기는커녕 학살 장소 출입조차 금지했다.

 

학살로부터 6개월여가 지난 1951년 초, 약산의 막냇동생 김구봉의 유복자 김용건이 태어났다. 생때같은 자식 넷의 목숨을 국가 폭력에 억울하게 빼앗긴 채 한 많은 생을 이어가던 약산의 노부모는 핏덩이인 손주 김용건을 거뒀다. 그때부터 용건은 조부모 품에서 자랐다. 그의 회고다.

 

“우리 할머니가 어떻게 잠을 자겠나. 매일 소주를 드시고 밀양 읍내 남천강 다리 위에서 한 시간 이상 죽은 네 아들 이름을 부르며 통곡하셨다. 나는 옆에 앉아서 ‘할매, 집에 가자’고 울며 보챘다. 실컷 울어야 집에 들어오시는 게 하루 일과였다.”

 

약산의 4형제가 한날한시에 학살당한 와중에도 구사일생으로 죽음을 모면한 사람이 있었다. 다섯째 김봉철이었다. 이후 그는 집안의 대들보가 되었다.

 

“다섯째 백부님은 군경이 체포하러 오자 밀양 집 앞 남천강에 뛰어들어 가까스로 피신했다. 밤을 틈타 마산으로 간 그는 항만 노역으로 목숨을 부지하며 전쟁 기간 내내 돈을 모았다. 약산 형제 중에서 그 백부님의 장사 수완이 제일 뛰어났던 모양이다.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전답과 재산을 크게 모아 밀양에서 최고 부자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김봉철은 이렇게 악착같이 모은 재산으로 억울하게 학살당한 형제의 유족 생계를 지원하는 등 맏이 구실을 도맡았다. 또 군경의 총칼에 스러진 4형제의 처형 장소를 알아내 유골만이라도 거두려고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하지만 이승만 정부와 자유당 치하에서는 헛수고였다.

 

마침내 1960년 3·15 부정선거를 계기로 4·19 혁명이 발발하면서 철옹성 같아 보이던 이승만 정권이 무너졌다. 약산 형제의 다섯째인 김봉철은 드디어 4형제의 억울함을 신원하는 일에 적극 뛰어들었다. 그는 6·25 초기의 억울한 민간인 학살사건 진상규명을 공약으로 내걸고 1960년 민선 밀양읍 의원에 출마해 당선했다. 이어 밀양지역 피학살자유족회장을 맡아 진상조사에 앞장섰다. 김봉철 유족회장은 당국의 발굴 허가를 얻어내 학살 현장에 대한 유해 발굴 작업도 벌였다. 여기서 보도연맹 피학살자 시신 300여 구를 발굴했다. 그는 장례위원장을 맡아 성대히 군민장을 치렀다. 어머니 뱃속에서 아버지를 잃었던 초등학생 김용건에게는 6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당시 유골 수습과 장례식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지금처럼 중장비가 있나 뭐가 있나,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른 미망인들과 할머니들이 삽과 호미만 가지고 몇 날 며칠 유골을 일일이 수습해서 밀양공설운동장에 모았다. 신원을 알 수 없으니 두개골은 두개골대로 팔은 팔대로 그렇게 구분해서 큰 나무 상자 하나에 차곡차곡 포장해 성대하게 군민 합동 장례식을 치렀다. 우리 선산에 합동 봉분으로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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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쿠데타인권침해사건 위원회

1960년 경북 청도군에서 발굴된 밀양 지역 피학살자의 유골을 유족들이 수습하고 있다.

 

김원봉 혈육의 지독한 피해의식과 트라우마

 

그러나 이듬해(1961년) 박정희 소장이 일으킨 5·16 군사쿠데타 직후 김봉철은 민간인 학살의 진상규명을 주도한 일로 인해 체포되고 만다. 쿠데타 세력은 김봉철에게 혁명포고령 위반죄를 적용해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했다.

 

“사형선고를 받은 백부님 구명 과정에서 그 많던 재산이 다 없어졌다. 대부분 논밭이라서 급하게 처분해 현금을 만들어야 하니 반값에 팔고, 헐값에 팔고…. 그렇게 해서 항소심에서 10년형으로 감형됐다.”

 

그러나 약산의 집안은 이 일로 또다시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김봉철은 6년여의 오랜 감옥 생활 끝에 1960년대 말 석방됐다. 그러나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자녀들은 거지가 돼 구걸로 연명하고 있었다. “백부님이 출소해보니 자식들은 그저 먹고사는 게 급해서 동냥하러 다니고, 구두 닦고. 그런 생활을 거치다 보니까 장성해서도 옳은 직업을 구할 수가 없었다.”

 

성인이 된 약산의 다른 조카들도 모두 연좌제에 신음하며 숨죽여 지내고 있었다. 5·16 쿠데타 후 중앙정보부(중정)는 약산의 형제들을 더욱 옥죄었다. 살아남은 약산의 동생들에게는 중정 요원들이 찾아와 6개월에 한 번씩 근황을 신고하도록 조치했다. 당시는 약산 김원봉이 북한에서 숙청(1958년)된 뒤였지만, 중정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김봉철 백부님은 기막힌 가족사와 군사독재의 감시 속에 여생을 술로 보내셨다. 술 마시면 고래고래 박정희 욕을 하며 그나마 속을 달래다가 끝내 화병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박정희 정권 아래서 약산의 친인척에게는 지독한 연좌제의 굴레가 덧씌워졌다. 약산의 한 조카는 사법시험 1, 2차를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했지만 연좌제에 걸려 면접에서 탈락했다. 그는 오랜 세월 트라우마에 신음하며 숨어 지내고 있다.

 

2000년대 들어 문화예술계를 중심으로 약산의 독립운동이 오랜 금기를 깨고 조금이나마 알려지기 시작했다. 영화 〈암살〉과 〈밀정〉은 뒤늦게나마 후세들에게 약산의 독립운동 공적을 어렴풋하게라도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창 노릇을 했다. 그러나 이런 변화 속에서도 약산의 후손들은 좀체 ‘커밍아웃’하려 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오랜 침묵을 깬 이가 6·25 개전 초기 학살당한 약산의 막냇동생 김구봉의 유복자인 김용건씨였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가 출범했다. 김용건씨는 약산 후손들의 억울한 사연을 담은 진정서를 써서 진화위의 문을 두드렸다. 약산의 동생이라는 이유 하나로 억울하게 죽어야 했던 네 동생의 사연과, 5·16 쿠데타 이후 백부 김봉철씨가 민간인 학살 진상을 규명하려다 겪은 억울한 감옥살이에 대한 사연이었다.

 

김용건씨의 이런 움직임에 다른 혈육들은 손사래를 쳤다. 어떻게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세상 바뀌면 언제 또 끔찍한 탄압이 닥칠지 모른다’는 지독한 피해의식과 트라우마를 지울 수 없었다.

 

진화위는 4년에 걸쳐 밀양 현지를 여러 차례 답사하며 조사를 벌였다. 2009년엔 김봉철씨의 억울한 옥살이와 약산의 네 동생을 포함한 ‘밀양 보도연맹 학살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결정했다. 진화위 조사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한국전쟁 발발 이후 1950년 7월부터 8월까지 밀양지역 국민보도연맹원 등 예비검속자들은 밀양경찰서 및 관할지서 경찰과 경남지구 CIC에 의해 연행되거나 소집 통보를 받고 자진 출두한 이후 밀양경찰서 유치장과 밀양읍 나카노 공장, 삼랑진 지서, 삼랑진역 강생회 지하창고 등에 구금되었다가, 1950년 8월 중하순경 청도군 매전면 곰티재, 밀양군 삼랑진면 안태리 뒷산, 검세리 깐촌 낙동강변, 미전리 미전고개 일대에서 집단 사살되었다. 조사 결과,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55명이고 가해 주체는 밀양경찰서 소속 경찰과 국군 육군본부 정보국 산하 경남지구 CIC 대원으로 확인되었다. 군경이 적법 절차 없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던 평범한 민간인을 소집 구금해 집단 살해한 것은 반인도적이며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인 생명권을 침해한 것이다.”

 

진화위는 이런 조사 결론에 따라 상응하는 국가의 사과와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위령사업 지원, 역사 기록 수정 및 등재 등을 권고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가 차원에서는 이렇다 할 사과나 후속 조처를 한 바 없다.

 

김용건씨는 진화위 결정을 토대로 법원에 백부 김봉철의 억울한 옥살이에 대한 재심 신청을 해 무죄판결을 이끌어냈다. 그 직계 후손에 대한 민사 배상도 이뤄졌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들어 법원은 보도연맹사건 당시 학살당한 약산의 4형제 후손들이 낸 국가배상 민사소송에 대해 애매한 시효 논리를 내세워 기각 판결했다. 진화위 결정이 난 날로부터 3년 이내에 소송을 내야 하는데 며칠 지나서 제출했으니 시효가 만료됐다는 이유였다. 김용건씨는 “21대 국회에서는 과거사 문제에 대한 근본적이고 전향적인 법 개정이 이루어져 억울한 국가 폭력에 희생당하고도 이중 삼중으로 피해를 당한 국민의 눈물을 진정으로 닦아주기 바란다”라고 말했다.

 

출처 :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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