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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슬의 詩내기

16세에 독립운동…박희광 선생 서거 50주기 추모식 열린다

by 정소슬 posted Jan 1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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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에 독립운동…박희광 선생 서거 50주기 추모식 열린다

[한국일보] 입력 2020.01.18 13:01 | 김재현 기자  

 

중국 오가며 친일파 암살...광복 후 김구 경호 맡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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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박희광 선생의 생전 모습. 박희광선생기념사업회 제공

 

“우리는 조선 독립을 위해 싸우는 투사다. 너를 조국의 이름으로 처단한다.”

 

친일세력을 비밀리에 암살하는 특공대원 박희광이 일제 앞잡이를 처단하기 전 대문에 붙인 사형 선고문이다.

 

구미 선산 출신의 애국지사 박희광(1901~1970)선생 서거 50주기를 추모하는 행사가 열린다. 박희광선생기념사업회와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는 22일 경북 구미 금오지 백운교 앞 박희광 선생 동상 앞에서 추모식을 개최한다고 18일 밝혔다. 3ㆍ1절, 현충일, 광복절에 박 선생 추념식이 열렸지만, 박 독립투사의 서거일 추모식을 여는 것은 처음이다.

 

박 선생의 아들인 박정용(70) 박희광선생 기념사업회 사무처장은 “동상 제막식 이후 30여년 만에 아버지 고향인 구미에서 추모식이 열리게 돼 뜻 깊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희광 의사는 지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 손꼽힌다. 어릴 때부터 애국심이 남달라 16세의 어린 나이에 임시정부 독립운동 단체인 대한통의부에 들어가 활동했다.

 

그는 이곳에서 친일세력을 비밀리에 암살하는 특공대원 임무를 맡았다. 여순고등계 첩자로 악명 높았던 정갑주를 비롯해 친일세력이었던 보민회장 최정규 등이 박희광 의사에 의해 숙청됐다. 이토 히로부미의 수양녀 배정자를 중국 다롄에서 암살하려다 실패하기도 했다.

 

1901년 경북 선산군 봉곡동(현 구미시 봉곡동)에서 태어난 박희광 선생은 여덟 살의 나이에 의병 활동을 하던 아버지 박윤하를 따라 만주로 건너 갔다. 이어 16세에 항일독립군 연합단체 대한통의부 대원으로 활동했다.

 

만주에서 독립 운동을 하던 사람들은 일본경찰, 친일파, 밀정 등의 방해로 원활한 활동이 어려웠다. 이 때문에 상하이 임시 정부는 비밀 암살단으로 조직해 주요 친일 인사들을 제거하기로 했다. 이로 인해 탄생한 것이 바로 ‘3인조 암살단’이다. 이들은 대표적인 독립운동 단체 의열단과도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친일 밀정 제거, 기관 폭파, 군자금 조달을 도맡았다.

 

3인조 암살단에는 김광추와 박희광, 김병현으로 조직됐다. 김광추와 박희광은 직접 암살을 시도하고, 김병현은 망을 보거나 달아나는 요인을 제거하는 역할을 맡았다. 당시 독립신문은 이들 3인조 암살단을 ‘삼장사(三壯士)’라고 표현했다. 이들의 활동은 시름에 빠져있던 국민들에게 큰 희망을 안겨줬다.

 

1924년 6월 암살단은 중국 랴오닝성 푸순 지역 악질 친일파로 이름 높던 정갑주와 그 가족을 사살했다. 이들은 ‘정갑주, 조국을 배신한 첩자! 우리는 조선독립을 위해 싸우는 투사다. 너를 조국의 이름으로 처단한다’라는 사형 선고문을 남기고 떠나 일대를 뒤집어 놨다. 이어 일진회 회원이자 친일파 최정규 암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이 사건 등으로 일본 경찰은 암살단 체포를 위해 혈안이 됐다.

 

또 다롄에서는 이토 히로부미의 수양딸이자 ‘흑치마’라는 별명으로 활동하는 여성 스파이 다야마 사다코(한국 이름 배정자)가 독립운동가에 대한 소식을 팔아 넘긴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암살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펑톈(현 선양) 일본총영사관에는 폭탄을 투척했고, 같은 날 저녁 일본 관리들이 자주 찾는 술집을 습격해 총격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김광추는 사망했고, 박희광과 김병현은 체포됐다.

 

박 선생은 1심에서 사형선고,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미성년자에게는 사형선고를 할 수 없다는 규정 덕분이었다. 실제 그는 성인이었지만 출생등록을 늦게 한 덕에 사형을 면할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이후 그는 뤼순감옥에서 20년이나 옥고를 치르다 광복을 2년 앞둔 1943년 출소했다. 그의 나이 43세였다.

 

박 선생의 유족들은 “당시 선친께서 체포된 뒤 대나무를 뾰족하게 깎아 손톱 사이로 끼워 넣는 고문을 당해 여덟 번이나 기절했고, 매질, 물고문 등 혹독한 고문을 견디면서도 독립운동에 대한 정보 제공을 일체 거부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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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3인조 암살단의 활약을 그린 1924년 7월 26일(토)자 독립신문 기사. 박희광선생기념사업회 제공

 

박 선생은 광복 이후 국내로 돌아와 백범 김구 선생을 경호하는 일을 맡았다. 하지만 안두희의 암살을 막지 못했다. 잠시 볼일을 보기 위해 고향에 내려온 사이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는 이 일로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았다고 한다.

 

박 선생과 김구 선생은 각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박 선생은 해방 후 김구 선생을 만나 그 동안의 경과를 보고했고, 김구 선생은 박 선생을 다시 만난 기쁨에 감격했다고 한다. 그리고 김구는 지난 20년 옥살이에 대한 위로금으로 2,000원을 건넸다. 당시 집 한 채 값이 100원 정도였다.

 

거금을 받았지만 돈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대구 칠성동에서 손수레 10여 대를 구입해 식량 등을 나눠주며 어려운 처지에 놓은 이웃들에게 손길을 내밀었다. 하지만 정작 자신들의 가족은 돌보지 못해 심지어는 셋방살이를 전전했다. 대구 교동에서는 옥중에서 배운 기술로 양복 수선집을 운영했지만 화재가 발생하는 등 악재가 겹쳐 내내 생활고에 시달렸다.

 

박 선생의 독립운동 공적은 1968년에야 비로소 인정받았다. 당시 동아일보 대구지국에서 박 선생의 과거 재판 기록이 게재된 1924년 9월 1일자 기사가 발견되면서 훈장 수여가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정부는 이후 박 선생에게 ‘건국훈장 국민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박 선생의 공로 인정이 늦어진 것은 과거 행적들에 대해 증명할 방법이 적었기 때문이다. 비밀 작전 등은 문서로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동료들의 증언이 아니면 알 수 있는 길이 적었다. 박 선생도 “포상이나 훈장은 바라지도 않는다”는 자세를 보여 더더욱 늦어졌다.

 

박 선생은 1970년 고문 후유증과 노환 등으로 서울 보훈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별세해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묻혔다.

 

1984년 구미 금오지에 그를 기리기 위한 박희광 선생 동상이 건립됐다. 1997년에는 박 선생의 유족 등이 사재 7,000만원을 털어 정부 지원금과 함께 대구 두류공원 내에도 동상 조각상을 건립하기도 했다.

 

박 선생의 생가터 복원과 기념관 건립 사업이 추진된 적도 있지만 기관 간 불협화음으로 무산된 적도 있다.

 

지난 2013년 구미시 봉곡동 일대 생가 터를 소유한 밀양박씨 경주공파 문중에서 땅 1,983㎡(600평)를 기증키로 하고, 국가보훈처로부터 7억원 국비를 받아 사업 추진됐지만 당시 구미시가 ‘2011년 2억9,000만원을 들여 박 선생의 금오지 동상을 새로 복원했기 때문에 추가로 비용을 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무산됐다.

 

박정용 사무처장은 “아버지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한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행적과 공로가 세상에 많이 알려져야 한다”며 “정부와 각 지자체도 민족을 위해 희생한 지사들의 선양 사업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기 바란다”고 말했다.

 

김재현 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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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박희광 선생 50주기 추모식이 경북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도립공원 내 박희광 선생 동상 앞에서 열린다.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 제공

 

출처 :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2001171183064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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