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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슬의 詩내기

[일제 강점을 통해 배우다] (3)여장군 김명시와 요녀 배정자

by 정소슬 posted Jul 3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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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을 통해 배우다] (3)여장군 김명시와 요녀 배정자

항일-친일 엇갈린 선택 ‘빛과 어둠의 역사’로 기억되다

김명시, 1907년 마산 출생

조선공산당·조선의용군 활동

[경남신문] 기사입력 : 2019-07-29 21:35:39

  

 

 

 

일제강점 35년 동안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은 끊임없는 선택을 강요받았다. 독립운동을 할 것인가 아니면 식민지배에 동조할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선 많은 이들은 죽지 못해 침묵을 택하였다. 그러나 침묵은 그들의 지배에 순응하는 것이라 여기고 자신의 재산과 목숨을 담보하며 독립운동에 매진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제의 통치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라 여긴 이들은 보다 나은 자신의 삶을 위해 친일의 길에 들어섰다. 선택의 기로에 선 사람 중 경남 출신 두 여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자. 그녀들은 김명시와 배정자이다.

 

◆불꽃으로 살다간 김명시(金命時) 장군

 

장군이라 불리는 김명시는 1907년 당시 마산 동성리에서 태어났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고, 3·1독립만세운동 때 입은 부상으로 고생하시던 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적색노동운동을 하던 오빠 김형선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랐다. 마산공립보통학교(현 성호초등학교)는 ‘마산공립소학교’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마산 최초의 근대식 학교였다. 1924년 졸업한 김명시는 서울 배화고녀에 입학했으나 학비 문제로 중퇴하고 돌아와 와세다고등여학교 강의록을 독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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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시

 

1925년 부산과 나가사키를 거쳐 상하이로 간 그녀는 몽양 여운형의 도움으로 비자와 여권을 마련한 후 모스크바 유학길에 올랐다.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 진학한 김명시는 조봉암의 부인 김조이와 일제강점기 조선공산당 트로이카 중 한 명인 고명자와 함께 공부했으나 항일투쟁을 위해 1년 반 만에 학업을 접고 고국에 돌아와 조선공산당에서 활동했다. 1932년 조선공산당 재건을 위해 활동하다 체포돼 7년간 신의주 감옥에서 혹독한 고통을 겪었다. 출옥 후 중국으로 망명한 김명시는 팔로군에 입대해 활동하던 중 김무정 장군을 만나 조선의용군에 합류했다. 남자 군인들과 같이 총을 쏘고 유격훈련도 받았던 그녀를 당시 조선의용군들은 ‘백마 탄 여장군’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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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시 장군은 1945년 11월 21일 ‘독립신보’와의 인터뷰에서 ‘21년간의 나의 투쟁은 눈물겨운 적도 있습니다만 빈약하기 짝이 없는 기억뿐입니다’라고 했으며, ‘조선사람은 친일파나 민족반역자를 제외하고는 한 뭉치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민족문제연구소/

 

해방 후 김무정과 함께 귀국한 그녀를 환영하는 인파가 서울 시내를 덮었고, 1945년 12월 23일자 ‘동아일보’ 기사의 제목이 ‘조선의 잔 다르크 현대의 부랑(夫娘), 연안서 온 김명시 여장군 담(談)’일 정도로 그녀의 위상은 높았다. 부랑은 조선 인조 때 후금의 침략 당시 아픈 아버지를 대신해 입대한 후 초장(哨長)까지 오른 남장 여장부를 나타낸 것으로 김명시를 이에 비유해 표현했다. 그러나 해방 정국에서 사회주의 활동으로 피검된 김명시는 1949년 부천경찰서 유치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경향신문’의 기사에 ‘유리창 벽을 통한 수도 파이프에 자신이 치마를 찢어서 걸어놓고 목을 걸고 앉은 채로 자살했다’고 실렸다. 자살인지 고문에 의한 타살인지 밝혀지지 않은 채 그녀는 감옥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김명시는 사회주의 활동을 했다고 해 독립운동유공자 인정을 받지 못했다. 2005년 몽양을 비롯한 사회주의 활동가들이 서훈을 추서받았음에도 김명시는 제외됐다. 마산(창원시)뿐만 아니라 경남을 대표하는 여성 독립운동가 김명시는 말타고 달리며 적과 싸웠던 전사였고, 부하(동아일보 기사에는 2000명으로 기재)를 거느린 여장군이었다. 북한 정권에 도움을 준 적도 없다. 그럼에도 김명시 장군에게는 여전히 이념적 잣대가 드리워져 있었다. 다행히 시민단체에서 신청한 그녀의 공훈 심사가 국가보훈처에서 진행 중이라 하니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

 

◆조선의 마타하리 요화(妖花) 배정자

 

이토 히로부미의 양녀이자 정부로 알려진 ‘다야마 사다코(田山貞子)’, 1870년 김해 출생인 배정자. 여자친일 1호로 자리매김된 배정자는 세 번 웃고 세 번 울었다고 한다. 명성황후 시해, 을사늑약 체결 그리고 고종이 승하했을 때 웃었고, 안중근에 의해 이토가 죽었을 때, 조국의 해방, 그리고 반민특위에 의해 체포됐을 때 울었다고 한다. 특히 이토가 죽었을 당시에는 실신까지 했고 병석에 눕기도 했다고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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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자

 

어렸을 적 이름이 배분남인 그녀는 밀양부 아전 배지홍의 딸이었으나, 배지홍이 민씨 일가에 반대해 대원군의 실각과 더불어 집안이 몰락하면서 기구한 운명이 시작됐다. 밀양의 관기로 팔려간 그녀는 탈출을 시도해 통도사의 비구니가 되었다. 신분이 탄로나 아버지와 친분이 있던 밀양부사 정병하의 소개로 밀정 마쓰오의 도움으로 일본에 건너갔다. 1886년 12월 안경수의 도움으로 일본 오사카 천황사 소학교에 편입했고, 김옥균을 만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연결돼 이토의 양녀가 됐다. 그리고 이토로부터 다야마 사다코(田山貞子)란 이름을 얻었다. 18세가 되던 1887년부터 승마 수영 사격 변장술 매복술 등 첩자 활동 훈련까지 받았고, 1894년 일본의 조선공사 하야시의 통역관 신분으로 귀국해 밀정 노릇을 했다. 청일전쟁 중 이토의 밀서를 고종에게 전달한 사건으로 부산 절영도에 유배되기도 했다. 엄비를 통해 고종과 가까워진 그녀는 조선의 기밀정보 유출, 을사늑약 체결 등에 관여했다.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박탈한 일제는 통감부를 설치해 외교문제를 관할했고, 초대 통감으로 이토 히로부미가 부임하자 ‘흑치마’라 불릴 만큼 그녀의 치맛바람이 거셌다. 그녀의 오빠 배국태는 한성판윤(현 서울시장)에, 동생은 경무 감독관으로 승진했다. 헤이그 특사 사건 이후 고종 퇴위에도 관여한 배정자는 이토의 죽음 소식에 병석에 누웠으나, 한일병탄 소식에 누운 채 소리 높여 ‘일본 천황 만세’를 불렀다고 한다.

 

이토의 사망 후 그녀의 권세는 꺾일 것이라 예상했으나 그녀는 아카시 조선주둔 헌병사령관과 가까워지면서 권력을 유지했다. 1915년에는 다이쇼(大正)천황 즉위 기념 대례기념장을 받았고, 1918년 이후 하얼빈 주재 일본총영사관 밀정으로 파견돼 만주에서 독립운동가 탄압에 앞장서자 당시 ‘독립신문’에는 요녀 배정자가 서간도 각지를 순찰한다고 보도했다. 1920년대에는 경무국 촉탁으로 임명돼 조선총독부로부터 토지와 봉급을 받았다. 1940년대에는 70이 넘은 나이임에도 조선 여성 100여명을 ‘군인위문대’라는 이름으로 남양군도까지 끌고 가 일본군 성노예 생활을 강요했다. 같은 여성의 입장이면서 손녀보다 더 어린 소녀들을 배에 싣고 성노예로 팔아넘긴 그녀의 만행은 해방 후 만들어진 ‘반민족행위자 처벌법’에 의해 여자 친일 1호로 체포돼 법정에 서게 만들었다. 반민특위의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고령이란 이유로 보석 석방된 배정자는 6·25전쟁 중에 손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영화 속 배정자는 이토 히로부미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독립군 박범진을 사랑했다고 하나 이는 영화 속의 이야기이다. 현실의 배정자는 일본을 위해 자신의 몸과 영혼은 물론 다른 한국인들까지 팔아넘긴 뼛속까지 친일파였다. 어린 시절 자신의 불행에서 벗어나고자 친일을 했고 민족 앞에 지은 죄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

 

밀양고등학교 교사 최필숙

 

출처 : 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1296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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