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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슬의 詩내기

[일제 강점을 통해 배우다] (6) 일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의열단’

by 정소슬 posted Nov 2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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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을 통해 배우다] (6) 일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의열단’

결사 의지로 일제에 공포 안긴 ‘항일 불꽃’

약산 김원봉 등 신흥무관학교 출신 중심

1919년 중국 길림성서 조직돼 독립 결의

[경남신문] 기사입력 : 2019-11-25 20:52:13

 

 

 

  

일제강점기 자유를 빼앗긴 우리 민족은 모든 것을 잃었다. 넓은 들은 물론 그 벌판에 찾아온 ‘봄조차 빼앗기겠다’고 노래한 시인의 마음이 당시를 대변한다. 이러한 절망의 한가운데서 3·1운동이라는 민족의 저항이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까지 확산됐으나, 돌아온 것은 허울뿐인 ‘문화통치’였다. 문화통치는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육성해 우리 민족을 이간·분열시키는 것으로 일제에 대한 저항을 약화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문관 총독의 임명 가능, 한글 교육 허용,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부분적으로 허용했으나 본질은 그렇지 못했고, 우리 민족끼리 서로 다투는 형국이 만들어졌다.

 

3·1운동의 결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이라는 역사적 성과물도 나타났으나, 임시정부는 여전히 다른 나라의 힘을 통해 조국의 독립을 이루려는 ‘외교론’을 주된 노선으로 정했다. 반대로 평화적 시위로는 독립이 불가능하다고 여긴 많은 사람들은 무장투쟁만이 일제를 몰아낼 방도라 여겼다. 특히 젊은이들은 총칼을 들고 직접 싸워야 한다는 생각에 국외로 망명해 1920년에는 봉오동과 청산리 등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무장투쟁만이 조국의 독립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일제 강점기 초기부터 있었다. 일제의 무단통치로 인해 드러내지 못했으나, 비밀결사의 형태로 국내에서 활동했다. 그들 단체 중 ‘대한광복회’가 1918년에 적에게 발각돼 해산당하자 그 근거지를 국외로 이동했다. 대한광복회는 1910년대 국내에서 조직된 비밀결사로 친일부호를 처단하고 그 자금으로 군대를 결성해 일본과 직접 싸우겠다는 의지를 품고 있었다. 조직이 드러나자 그들이 망명한 곳은 길림이었다. 길림은 송화강 상류의 교통 요지로 많은 애국지사들이 일찍부터 망명한 곳으로, 대한광복회는 이곳 길림에서 ‘대한독립의군부’를 결성했다. 이 단체는 1919년 ‘대한독립선언’을 발표해 무장투쟁을 선언했으며, 임시정부 수립과 때를 같이 해 단체의 명칭을 ‘조선독립군정사’로 개칭했다.

 

무장투쟁을 전개하려면 대규모의 병력과 장비, 일정한 숙영지 겸 근거지, 조직편제와 지휘체제 등이 갖추어져야 한다. 그러나 남의 나라에서 이런 조건을 갖추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에 별동대 조직의 기습행동으로 적에게 타격을 주는 항전이 필요하다고 여겼고, 이를 위해 조선독립군정사에서는 ‘의열단’을 조직키로 했다.

 

조선독립군정사의 백민 황상규를 비롯한 지도층들은 결사대를 책임지고 지휘하며 인원을 규합하고 실무를 담당할 인물로 약산 김원봉을 지목했다. 이에 남경에 머물러 있던 약산 김원봉을 길림으로 불러와 신흥무관학교에 입교시켜 동지를 규합해올 것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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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에 항거한 의열단의 주요 인물들.

 

신흥무관학교 출신이 대부분인 의열단은 1919년 11월 10일 새벽, 길림성 파호문 밖 화성여관(반씨농가)에서 조직됐다. ‘천하의 정의로운 일을 맹렬히 행할’것과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칠 것을 피로써 결의했다. 창단 단원 10인(최근 학설) 중 4인이 밀양 출신이며 이들을 지도하고 후원한 많은 이들 역시 동향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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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단 초기에 활동한 13인.

 

반드시 파괴해야 할 5파괴(5당파)와 죽여도 되는 7가살을 정하고 10조의 공약을 정했다. 단장을 ‘의백’이라 해 형제애적 준혈연 관계로 맺어졌고, 수평적 연대로 운명공동체적 의식을 가진 이들은 23차례에 걸친 대일투쟁을 통해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1920년 3월부터 6월까지 이루어진 의열단 제1차 국내기관총공격 거사는 조직된 지 4개월여밖에 되지 않은 단체가 기획하고 실행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밀고에 의해 20명의 단원들이 체포됐고, 일제에게 빼앗긴 무기는 폭탄 16개, 권총 2정, 실탄 100여 발이었다. 이 많은 무기를 압수하고 단원들을 체포한 일제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단원 중에 황상규는 혀를 깨물어 백지기소를 했고, 석정 윤세주는 가장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재판정에서 당당한 모습을 견지했다.

 

단원들이 대거 체포돼 징역살이를 하고 있어 일제는 의열단이 궤멸됐다고 여겼으나 1920년 9월 14일, 박재혁이 고서상인으로 분장해 부산경찰서에 나타나 경찰서장을 암살했고, 12월 27일에는 최수봉이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던졌다. 뿐만 아니라 1921년 9월 21일 김익상의 조선총독부 폭파의거는 일제에게 극도의 공포를 심었다. 조선총독부를 폭파하고 유유히 빠져나가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의열단! 일제가 끝내 찾지 못했던 김익상은 일주일 뒤 북경의 의열단 본부에 나타났고, 그 다음해인 1922년 3월 28일 일본육군대장 다나카 기이치 암살의 제2선 주자로 활동하다 체포됐다. 그의 체포 소식을 들은 친일경찰 김태석이 한 달을 출장 와 조사할 정도였다.

 

1923년 1월, 적들과 서울 한복판에서 시가전을 벌인 김상옥! 그는 1월 22일 효제동에서 제1진 권총 든 형사, 제2진 장총 든 집총대, 제3진 기마대, 제4진 헌병대 및 자동차대로 배치된 일본 경찰들과 3시간에 걸친 접전을 벌였다. 이 사건은 일제 강점기 동안 국내에서 일어난 가장 치열한 전투로 기록됐으며, 마지막 한 발로 자결, 순국한 의열단의 정신을 잘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 외 제2차 국내폭파거사 및 나석주의 식산은행과 동양척식회사 폭파 거사, 김지섭의 동경이중교 폭파 거사 등 자신의 목숨을 담보하며 싸웠던 의열단원들은 1920년대 우리 민족의 희망이었다.

 

그러나 자금 부족, 테러집단이라는 비난과 변해가는 국제 정세 속에서 의열투쟁만으로는 조국의 광복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단원들은 본격적인 전술과 전략을 배우기 위해 중국 국민당 정부가 설립한 황포군관학교(중앙육군군관학교)에 입학해 군사교육을 수료한 뒤 중국 육군 장교로 복무했다. 1932년 이후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개교해 우리의 손으로 우리의 장교를 길러냈다.

 

1935년 7월 5일, 중국 내에서 수립된 민족유일당 단체인 ‘민족혁명당’을 조직하면서 의열단은 해체를 공식 선언했다. 그러나 의열단원들은 이후 중일전쟁(1937)이 발발하자 조선인만의 독자 군대인 조선의용대를 창설해 일본과 직접 전투, 대적심리전 등에 참여해 일제가 항복하는 순간까지 적과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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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단의 후신인 조선의용대 창립 당시.

 

일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의열단은 일제 강점 초기 비밀결사로 조직된 대한광복회의 뜻을 이어 조직됐으나, 그 목적과 활동 내용이 넓어졌고 변해가는 국제정세 속에서 순간순간 그 형태와 투쟁 내용을 변화시키면서도 끝까지 변절하지 않고 싸웠던 그 시대 최고의 투사들이 조직한 단체였다.

 

그리고 2019년 11월 10일(일)은 그들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그들이 100년이라는 무게로 다가온다.

 

최필숙 밀양고등학교 교사

 

사진= 의열단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출처 : 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131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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