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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슬의 詩내기

평택벌 영가 외 4편 / 『울산작가』 창립 15주년 특집호

by 정소슬 posted Feb 04, 2012

평택벌 영가靈歌

- 이름도 참 예쁜 대추리 도두리에 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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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민 쫓겨난 옥상 외줄에 빨래 하나 널려 있었어 좋은 말로 널려 있지 실은 거꾸로 매달려 있었어 산 깃발인 양 분연히 나부꼈지만 이미 송장이었어 사망진단서에 첨부될 부검까지 끝낸 듯 속이 뒤집혀 있고 뒤죽박죽 엉킨 내장이 최후를 증언하고 있었어 억울함의 길이만큼 빼 물린 혀, 그 혀가 할 말이 남은 듯 말을 걸어왔어 할 말이라기보다 섬뜩한 흥정이더군

 

너무 외롭다고

 

믿었던 주인은 돈만 챙겨 떠나버렸고 남은 건 썩을 일뿐인 빈 몸뚱이 하나라고 거치적대 빠져나가 홀가분해진 이 몸과 하룻밤 어떠냐고 겁나게 짜릿할 거라고 그렇지 않겠냐고 어차피 이 자리 집창촌이 들어설 자리, 밤마다 벌어질 시간屍姦의 땅, 아프간에서도 이라크에서도 대성황 이뤘다는 그 시간屍姦 말이야

 

* 시간屍姦 : 시체를 강간하면서 쾌감을 추구하는 변태성욕.

image : http://suntag.tistory.com/155

 

 

 

 

 

도꾸빤쮸 

mipo_2008.jpg

(2008년 현대미포조선 노동자의 굴뚝농성 모습)

 

지난 봄, 학교 앞에서 사온 병아리가 엄지닭이 되어 알을 낳기 시작했다 세 마리를 사와 둘은 죽고 한 마리 살아남은 게 알까지 낳다니 모이 주는 재미가 쏠쏠하다

 

구구구구…… 모이를 던져 넣으며

닭장에 기대 신문을 읽노라니

 

또, 고공 농성이란다 무려 70미터란다 다시 덮친 불황으로 사회면 기사가 넘쳐나는 통에 그 정도 높이가 아니면 기삿거리로도 취급 안 해줘서일까 70미터라니 아파트 30층 높이에 가깝잖은가, 헌데 난 왜 자꾸 번지점프가 생각나지? 그게 이번엔 굴뚝이라는군 세상의 뜨끈한 등짝에 기대고픈 그들의 절박함을 표현한 거겠지 그런데 신문에 난 기사를 읽다보니 정작 그들의 서럽고 다급한 사연은 없고 자살미수를 꿈꾸는 사회적 병리현상쯤으로 몰아붙이는 일색이구먼 하긴 나도 마찬가지지 귀한 밥을 놓고 투쟁하는 저들 모습에 번지점프를 떠올렸으니

 

살벌한 세상이네 믿을 놈 하나 없지 저들이 피 터지는 데모로 세상을 뒤집어 놓았을 때 맨 앞에서 저들 깃발에다 잉크 물 팍팍 뿌려대던 그들이 아니었던가 세상이 뒤집어졌다고 그간 입고 다녔던 팬티가 뒤집힌 줄 여태 몰랐다며 지금에야 똑바로 입었으니 제발 좀 보아달란 듯이 이 엄동설한에 팬티바람이라니……, 밥그릇을 앞에 놓고 똥구녕 덮개를 얘기하자니 숭고한 밥 냄새는 슬그머니 내려가 버리고 똥 구린내가 밥상 위에 올라앉아선 꼬리를 발딱 세워 세상을 다 쓸 것처럼 흔들어대는군.

 

자 먹어먹어! 구구구구……

에잇 처먹어처먹어! 狗口狗口………….

 

 

 

 

 

아토피

- 적에 대하여

 

 

 

1

나 어렸을 적엔 손톱으로 눌러 피 빨갛게 나오는 놈은 모조리 적이라 배웠다 그래서 밤마다 호롱불 밑에 일제히 옷을 뒤집어놓고 빨간 피 머금은 놈 찾느라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더구나 그놈의 알 서캐란 놈은 핏빛이 안 배인 데다 더 작고 교묘하게 숨어 있어 섶에다 손톱 맞대어 꾹꾹 누르노라면 톡! 톡! 소리내며 터지곤 했는데 그 소리가 마치 뒤란 대숲에 내 또래의 어린 빗방울들이 맨발로 뛰어다니는 소리 같았다, 그런데

 

2

언제부턴가 겨울만 되면 옷 밑이 스멀스멀 가렵다 피 빨간 놈이 적이 아니란 게 탄로 나버린 대명천지에 수십 년 전 사라진 '이(蝨)'란 놈이 부활했을 리도 없고 당시 미군이 들여다 놓은 디디티와 화학비누의 유통기한이 끝났다는 발표도 없었는데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보면 옷 밑이 벌겋다 또 밤새 빨갱이와 사투를 벌인 모양인데, '이'가 땅굴을 팠나? 손톱 밑에 스민 선연한 핏빛으로 보면 어릴 적 그 빨갱이가 틀림없어 황급히 병원을 찾았더니

'아토피'란다 '이'를 없애려 과다 사용한 디디티와 화학비누가 원인일 거란다 스스로 자신을 지킬 생각은 않고 손쉽게 남의 우산 아래 안주하면서 무감각해져 버린 의존의식이 원인일 거란다

 

우리가 우산의 편안함에 잠들어 있는 사이

땅굴을 파고 살 속으로 파고든 적!

 

3

미국과의 '전시작전통수권 환수'에 합의했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표가 있자 이에 반대하는 피켓을 든 전직 국방장관들, 전직 경찰청장들, 전직 외교관들까지 벌떼처럼 들고일어나 데모를 벌였다는 뉴스가

 

한동안 내 손톱 밑을 스멀스멀 기어 다녔다

 

 

gwangjoo_1980.5.jpg

(이 사진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나선 시민들을 중무장한 군인들이 폭력 진압하는 모습이다)

 

 

 

 

 

사타구니가 가렵다

 

 

 

 

사타구니가 가렵다

사랑의 등고선이 접히는 그곳

이제 서로의 체온조차 짐이 된 그곳

도심 공터처럼

애증의 찌꺼기로 몸살을 앓는 그곳

마른 검불이 솟대처럼 서서

언제 올지도 모를 고도를 기다리는 그곳

등고선 지워진 지난 맹세들이

고도가 오고 있다며 잠꼬대를 해대는

 

그곳이 가렵다

너와 나 天命으로 잇댄

사타구니가 가렵다

둘 사이 접힌,

 

접혀

아등바등 구겨진 사랑이 가렵다

 

* 고도(Godot) :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의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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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사람과 도시사람

 

 

 

 

 

해마다 가을이면

어머니 손수 지으신 감이며 고구마며

고추 무 배추 깨 등등…… 바리바리 싸 주시는데

그 중에도 감과 고구마는 꼭 내 처갓집 몫까지

별도로 챙겨주신다

 

벌써 십 수 년째 그 몫을 챙겨 나르다보니

공짜로 얻어오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거니와

마땅히 갚을 길 없이 늘 받기만 해야하는

처가 쪽 입장도 생각 않을 수 없어

나는 자꾸 머뭇거려진다

 

어쩔 수 없나보다!

 

그저 나누는 것이 즐겁고 행복한

엄마는 촌사람.

상대의 입장부터 고려해야 하는

나는 도시사람.

 

- 『울산작가』 창립 15주년 특집호

 

 

울산작가13.jpg

 

Who's 정소슬

pro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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