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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슬의 詩내기

[세상보기] 허공에 뿌려진 명함

by 정소슬 posted Jul 2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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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보기] 허공에 뿌려진 명함

[중도일보] 면번호 : 23면 | 입력 : 2017-07-27 15:01   수정 : 2017-07-27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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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정 대전작가회의 회장

 

젊은 처자들이 시집 한두 권씩 품에 끼고 다니는 한 때 시인이라고 말하면 감탄하던 시절이 있었다. 한다리 건너면 시인 친구가 난무하는 지금에 그 시절을 추억하자는 뜻은 아니다. 시인이 3만 명이 넘는 시대에 살고 있기에 시정신에 대해 생각해 본다. 가끔 강연을 가거나 시창작 수업을 할 때 하는 말 중 “도둑님이 많은 것보다 시인이 많은 것이 그래도 더 좋은 것 아니냐.” 너스레를 떤다. 혹여 이 글을 읽고 시인을 어디다 비교하느냐고 화를 내시는 분들이 계실런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시를 배우고 시를 쓸 수 있는 시대에, 그래도 시인이라고 우리 사회에서 아직 눈길 주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주위 사람들이 나의 농담에 파르르 할 때마다 생각해 본다. 우리가 아는 시와 시인에 관한 오래된 선입견은 어디에서 왔을까 하고. 그러다 보니 수백 년 전부터 평생 시를 썼던 선비들의 생각이 가 닿았다. 과거 시험도 시로 보고, 정치도 시로 하던 조선시대 선비들. 뜻이 맞지 않으면 평생을 산중에 살며 농사를 짓고 시를 썼던 선비들. 그러다 지사라는 말도 선비라는 말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고 내가 가진 시인이라는 명함이 무거워졌다.

 

강의를 하다 보면 당연하게 나오는 질문이 좋은 시에 대한 이야기와 시정신에 대한 질문이다. 어떤 시가 좋은 시인지에서 출발한 질문은 결국 시정신으로 향한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시정신의 또 다른 이름을 선비정신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조선의 선비들이 스쳐간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왕 앞에서 할 말은 하고 옳다고 판단했을 때는 굽히지 않는 모습이 그려진다. 조선에 이런 선비들이 있었다. 이름 없이 살다 갔더라도 세상 눈치 보지 않고 기개를 세우며 살다간 선비들이 있어 시인과 이미지가 결합되어 내가 가끔 시인이라는 명함을 팔아먹고 다닐 수 있다.

 

조선의 선비는 선비가 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다. 요즘으로 말하면 기숙학교에 다니면서 선비가 갖추어야 덕목을 익혀 갔다. 농사도 짓고 음식도 만들고 물론 글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한국화를 하는 지인에게 어린 시절 서당에 다녔던 이야기를 들었다. 집을 떠나 서당에 들어가(1960년대) 공부도 하고 농사도 짓고 제사 음식도 만들고, 추수가 끝나면 고향에 쌀을 보냈다고 한다.

 

조선의 선비 하면 떠오르는 분들이 저마다 있을 것이다. 그 선비들이 백성을 지켰고 때로는 국난을 극복하는 데 힘을 보탰다. 이런 선비가 되기 위해 조선사회는 어떤 교육을 했는지 지인을 통해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그냥 글공부만 해서 선비가 되어 출사를 한 관리와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출사를 해 백성의 마음을 이해하고 함께한 관리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필자 역시 조선의 선비 중 한 명을 소개한다면 조광조가 떠오른다. 그는 다양한 친구가 있었다. 계급 사회에 끼지 못했던 백정이나 가파치들과 어울려 세상을 이야기하고 그들의 말을 들으려 노력했다. 선비라고 글만 읽었던 것도 아니고 출사를 해서 탁상공론만 외쳤던 것도 아니다. 실제 백성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삶을 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떻게 정치를 해야 백성이 행복해 질 수 있을까 고민하고 고민한 인물이다.

 

조선의 선비만큼은 아니어도 시인으로서 자존감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 자존감으로 다양한 글감을 만나고 그 글감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며 성찰도 해야 한다. 그래야, 시인이라는 명함이 부끄럽지 않고 어느 술집에 앉아 막걸리 한 사발 얻어먹더라도 폼이 나는 것이다. 시인이 시만 잘 쓰면 된다고 생각하는 시인이 혹여 있다면 근대문학 100년의 중심에 있었던 몇몇 선배 시인(작가)들의 삶(친일·독재 미화)을 한 번 정도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시정신이 없는 시가 얼마나 허무하고 사상누각으로 지어졌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분들이 쓴 시가 작금의 현실에서 독자들에게 통용되고 있다고 해도 그 시가 시정신을 담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어느 자리에 가면 시인이라는 명함 내놓고 싶다. 그럴 때마다 시정신이 발목을 잡는다. 내 시정신은 아직도 허공에 뿌려진 명함 같기 때문이다.

 

김희정 대전작가회의 회장  

 

 

출처 : http://www.joongdo.co.kr/jsp/article/article_view.jsp?pq=201707272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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