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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슬의 詩내기

‘하늘의 바다’를 품은 시인 김형효

by 정소슬 posted Jun 2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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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원도심에 둥지를 마련한 시인의 이야기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의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57) 

[굿모닝충청]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 승인 2017.06.2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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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바다’를 품은 시인 김형효

 

[굿모닝충청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한약방 골목 사이를 누비다보면 익숙한 한약 냄새 사이로 색다른 이국의 향내를 찾을 수 있다. 원도심의 한 모퉁이에서 오래되고 익숙한 우리 향기와 이국적인 독특한 향기가 잘 어울리고 있는 곳을 찾았다.

 

2015년 4월, 네팔에서 발생한 대지진을 기억하는 사람은 몇 없다. 그런데 당시 지인들과 함께 직접 성금을 모아 1년 간 그곳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돌아온 뚝심의 사나이가 원도심에 터를 잡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은 것이다. 그를 만난 곳은 그가 운영하는 네팔 음식점 ‘사가르마타’이다. ‘사가르마타’는 네팔어로 ‘하늘의 바다’라는 뜻을 가진 말로 다름 아닌 에베레스트를 가리킨다.

 

그는 인터뷰 당일 구호활동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 딱 1년이 되는 날이라며 일행을 반갑게 맞았다. 그의 옆에는 네팔인 아내 먼주 구릉 씨가 함께했다. 구릉 씨는 네팔의 한국특파원으로 활동하면서 네팔 몽골리안의 기자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눈앞의 풍경 그대로 시인인 남편과 네팔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 이 둘과 주변은 온통 이야기 거리로 가득 차 있어보였다. 진한 사람 냄새를 풍기는 소탈한 그의 이야기는 스스로 술술 풀렸다.

 

무안에서 태어난 그의 집안은 말 그대로 찢어지게 가난했다. 중학교2학년이던 16살에 그는 서울로 올라가 객지생활이자 직장생활을 시작한다. 그의 말로는 5백 개의 직업을 거칠 만큼 안 해본 일이 없지만 또 그만큼 한 곳에 오래 다니지 못했다.

 

“가장 길게 직장생활한 곳이 1년 3개월입니다. 유독 무시당하는 걸 못 참는 성격 때문이에요. 그래서 길게 다니지 못했죠. 지금도 누구든 사람 무시하는 걸 못 봐요. 누군가의 인격을 무시하는 걸 목격하면 바로 불도그가 되요. 또 나 배고픈 건 이골이나 견뎌지지만 누가 배고파하고 있으면 그것도 잘 못 견디겠구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말이다. 힘겨운 어린 시절과 유전자에 새겨진 연민과 공감이 만든 성격일 것이다. 군 시절, 그는 연애편지 대필자로 이름을 날렸다. 당시 노래책 뒤에 빼곡히 적혀있던 펜팔 주소록을 보고 편지를 쓰는 풍경은 흔했다. 그런데 그가 쓰기만하면 백발백중 답장이 왔다는 것이다. 한 선임병이 그에게 시인이 되어보라는 말을 했다. 그때 그는 처음으로 시인이라는 이름을 마음에 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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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시 공부를 시작했고 원로시인인 김규동 시인의 추천으로 ‘사람의 사막에서’(바리데기)에서라는 시집을 냈다. 그는 시를 쓰면서도 사회 현상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겪었던 아픔들을 발판으로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정당 활동도 해보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늘 갈라져있었다.

 

그는 격월간지 ‘시와 혁명’을 창간한다. 그 인연으로 중국에서 연변도서관 관장을 만날 수 있었고 평양도서관 분원에 있는 북한작가들의 글을 보게 되었다. 의외로 많은 서정시에 놀라고 이 시편들을 우리 사회에도 소개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책을 통해 먼저 정서적 통일을 이루자는 마음이었죠. 그렇게 북한 시집을 발간하고 몇 가지 더 작업을 진행하던 중 갑작스럽게 교통사고가 났어요. 오랫동안 병원신세를 져야만 했죠. 결국 거의 혼자 진행해오던 출판 일을 그만 둘 수밖에 없었고 결국 그간의 삶을 정리하고 금산으로 내려와 머무르다가 네팔 이주노동자를 만났어요. 운명이 또 바뀌는 순간이었죠.”

 

아마도 혼자 견뎌야하는 그만의 겨울이었을 것이다. 나이 어린 네팔 이주노동자는 자기 친구들이 한국어를 공부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자신도 어렵지만 고향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마음에 감동했고 도움이 되고 싶었다. 책을 만들기 위해 같이 고민하던 중 둘은 합심하여 아예 네팔에 가서 책을 만들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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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네팔과 인연을 맺은 김형효 씨는 이후 한국에 오면 네팔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 다시 짐 싸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6개월을 머물던 그는 어느새 네팔어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자연스레 한국과 네팔의 문화와 예술의 교류에 앞장서게 된다.

 

“네팔에서 많은 행사가 있었죠. 그 행사 중 한곳에서 문화부기자로 만났습니다. 지금의 아내인데 그러고도 7년을 그냥 스쳐 지나며 살다가 다시 네팔로 돌아왔을 때 인연이 되었어요.”

 

결혼한 부부는 한국에서 생활하며 한국과 네팔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며 한국에 있는 네팔 사람들이 푸근하게 모일 수 있는 쉼터 역할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네팔에서 일어난 큰 지진 소식을 듣는다.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지만 그중에는 내가 알고 있던 사람들도 많았어요. 아이들이며 친구들이며, SNS를 통해 지인들에게 소식을 전했지요. 본인도 넉넉지 못한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십시일반 마음을 보내 주셨지요. 그런데 물건을 보내면 물건이 사라지고 돈을 보내면 역시 유실되는 부분이 많고 음식을 보내면 중간 과정에서 전달이 안 되는 경우도 있고 폐기되는 경우도 많았어요. 현장소식을 접하며 가슴이 아팠죠. 그래서 제빵 기술이 있는 내가 직접 가서 빵을 만들고 직접 전하자고 작정했습니다.”

 

그는 후원한 분들과 모여 상의하고 구호물자들을 챙겨 당장 네팔로 떠났다. 직접 찾은 현장은 더 큰 어려움이 많았다. 처음에는 그들에게 영양가 있는 따뜻한 빵이라도 만들어 주자는 마음이었지만 데서 출발했지만 재난의 현장에는 더 필요한 것이 많았다. 큰 프로젝트가 된 것이다.

“학교가 있기는 했지만 한 교실에 여러 학년이 같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칸막이를 만들어 교실을 나누는 일 같은 것을 찾아서 했죠. 현장에 도움을 주러 찾아온 외국인들이 있었지만 실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죠. 저는 네팔의 생활을 잘 알고 있었기에 실제 필요한 것을 찾아가는 가교역할을 할 수 있었어요. 여성들에게 필요한 위생용품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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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뜨거운 가슴과 발을 가진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의 아픔에 금방 가슴이 뜨거워지고 또 발은 주저함 없이 움직였다. 그에게 행동하지 않는 감동은 의미가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 온 후 김 씨 부부는 네팔 음식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현실적인 생활의 터전이 되기도 했지만 네팔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네트워크를 만드는 구심점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마침 예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던 대전 원도심에 자리가 났다. 김 씨가 다른 사람에게 권했던 자리였지만 우연찮게 본인이 직접 하게 된 것이다. 대전 원도심과의 인연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대전의 전국의 중심이잖아요. 전국에 흩어져 사는 네팔 사람들이 만날 장소로 이만한 조건이 없죠.”

 

 ‘사가르마타’는 이런 이야기를 가지고 4월 1일 처음 문을 열었다. 이 공간은 네팔 음식점이기도 하면서 네팔 사람들의 서포터 역할을 하는 김형효 씨가 머무는 것이기도 하고 네팔인들이 타국 생활의 어려움을 나누고 외로움을 다독이는 쉼터의 기능도 하고 있다. 그래서 이곳은 주말이면 더 많은 방문자로 들썩인다.

 

“한국의 공공기관과 처리해야하는 일은 이들에게 아주 어려운 일이죠. 말도 안 통하고 행정 절차도 다르니까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이 내게 그랬듯 편안하고 친숙하게 돕는 거죠.”

 

그를 만나는 동안에도 한 네팔 청년이 병원을 가야하는데 어찌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하며 그를 찾았다. 그는 바로 뭔가 친절하게 일러주고 자리로 돌아왔다. 이야기의 주제는 실내에 걸린 그림들로 옮아갔다.

 

“이 공간에서 네팔 작가들의 작품도 전시하고 시낭송도 합니다. 네팔 고전음악 연주회도 가질 예정이구요. 비록 작고 소박하지만 다양한 국제 문화인들이 어울려 소통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을 겁니다.”

 

그는 한국판 하늘의 바다가 자리 잡은 대전의 원도심에 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원도심이 성장하려면 먼저 좀 더 밝은 이미지가 있었으면 해요. 그리고 이 주변으로 베트남, 캄보디아, 등 다양한 나라의 음식점들이 생기고 있어요. 외국 식료품점도 늘고 있고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자연 발생적으로 생기는 거죠. 말하자면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특화거리가 되고 있어요. 이런 특성을 잘 살려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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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이 전국으로 흩어져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살리면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중심지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같은 이유로 이국적인 문화와 음식들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레 국제음식축제공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자라고 있으며 자연적으로 유입되는 외국 사람들을 중심으로 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충분히 귀 기울여볼 대목이다.

 

많은 사람이 더 편하게, 잘 먹고 사는 일만을 생각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가치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시인 김형효에게는 함께 행복한 이웃들이 바로 그 가치이고 하늘의 바다는 그들의 중심이 되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and332@hanmail.net

 

 

출처 : http://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65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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