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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슬의 詩내기

누구나 한 번은 앓았던 '삶이라는 돌림병'

by 정소슬 posted Mar 1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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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은 앓았던 '삶이라는 돌림병'

[경남도민일보] 이서후 기자 (who@idomin.com) | 2020년 03월 17일 화요일

 

현대시, 인간 정신이나 시대 상황을 전염병에 빗대

인간·동물·바이러스는 동류…우리는 우리와 싸워

 

 

 

"하루쯤 앓게 되면/ 육신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한 열흘쯤 앓게 되면/ 목숨의 존귀함을 깨닫게 되고// 한 달포쯤 앓게 되면/ 이 세상 삼라만상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깨닫게 된다// 앓아 본 적이 없는 자여,/ 어찌 삶의 깊은 맛을 짐작할 수 있으리". (임보 '병력(病歷)' 전문)

 

누구는 요즘 날씨가 참 좋다고 말한다.

 

또 누구는 주변에 좋은 친구들이 많아서 행복하다고 한다.

 

새삼 세상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코로나19가 가져온 긍정적인 효과가 아닐까.

 

매번 몸과 마음이 한꺼번에 아픈 걸 보면 병이 인간의 마음에 주는 영향이 적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일까, 현대시에서 질병이 인간 정신이나 시대 상황에 대한 은유로 자주 쓰이는 게 이해된다.

 

"역병이 돌고 있다 멀리서 목탁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린다 모두들 서둘러 귀가하고/ 문을 닫아 걸고 귀를 막는다.// 병을 물리칠 수 있다면,/ 벽을 일으키고 그 절벽마다/ 칼에 힘을 주어 정을 새긴다."

 

송찬호 시인의 '역병이 돌고 있다' 앞부분이다.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민음사, 1989년)에 실린 시다.

 

80년대를 아프게 관통한 시인에게 역병은 독재 정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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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송찬호, 정재학, 정한아의 시집./캡처

 

"마을에 아이들의 이빨이 녹는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네 어른들은 알아차리지 못하네 아이들은 배가 고팠지만 아무것도 먹으려 하지 않았네 학교에서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고 지냈네 동네 지붕마다 달이 박혀 있었네 식초를 마신 여인네들은 지붕에 올라 달을 찢어 아기를 훔쳐가네 아이들은 이빨을 녹여 먹으며 거리를 쏘다녔네 아무도 무리에서 떨어져 나가려 하지 않았네".

 

정재학 시인의 '전염병이 도는 마을' 앞부분이다.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민음사, 2004년)에 실린 시다.

 

여기서 '이빨이 녹는 전염병'이란 현대인의 욕망이나 도시인의 환상 정도로 보면 되겠다.

 

독자의 해석 역시 시의 한 부분이라고 본다면 시를 읽는 이들에게도 '각자의 전염병'이 하나씩 있을 것이다.

 

어느 시대에나 존재한 정신의 전염병들, 그건 우울함이나 슬픔이기도 하고, 회의적이거나 부정적인 마음, 자신감 부족이나 낮은 자존심이기도 하다.

 

그러니 끝내 극복해내야 하는 게 전염병이지만, 끝내 부정할 수는 없지 않을까.

 

"사람들은 모른 척하고 싶을지 모르지만/ 새들도 사람 말을 대충 알아듣는다 (중략) 우린 모두 지구와 같은 성분을 가지고/ 같은 별에 담겼으니까// 그래도 여전히 놀라운 일이지/ 우리가 같은 성분으로 되어 있다니/ 여차하면 서로 먹을 수 있다/ 여차하면 서로 섞일 수 있다".

 

정한아 시인의 '인수공통전염병 냉가슴 발생 첫날 병조림 인간의 기록'의 일부다. <울프 노트>(문학과지성사, 2018년)에 실렸다.

 

인수공통전염병이란 동물도 걸리고 인간도 걸리는 전염병을 말한다. 사스, 메르스가 그랬고, 에이즈도 페스트도, 광견병도 그렇다. 그리고 코로나19도 마찬가지다.

 

여기서는 새와 인간에 대한 이야기지만, 결국 바이러스도 마찬가지다. 여차하면 서로 섞일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같은 성분이니까.

 

어쩌면 지금 우리는 '더 큰 우리'와 싸우는 게 아닐까.

 

이서후 기자

 

출처 :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724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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