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등병 아들 면회
2009년 12월 19일-21일
8월 말에 입대했으니 넉 달만에 아들을 보러 가는 길이다.
무궁화호 1622호 청량리행 저 열차다.
얼마만의 기차 여행인가, 까마득하다.
추운 날씨에
둘 모두 완전무장을 했다
열차가 들어온다.
벌써 눈물이 고인 이 사람.
식당칸에서 맥주를 한잔 했다.
무려 6시간 반이나 걸려 도착한
양평역
오후 4시쯤, 방부터 잡았다.
예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아침 9시 이후래야 면회가 된단다.
처음 보는 참벼루 삼겹살
술이 빠질 수 없지.
아침 일어나 8시 반경에 부대에 도착해 면회 신청을 했다.
아직 이등병이라 부대 입구에 있는 결전회관(사단에서 운영)에서만 면회가 허락되었다.
비염은 괜찮나, 밥은 잘 나오나, 선임들 잘 해주나... 등등등
엄마 혼자 속이 탄다.
곰 같은 이놈, 그저 그렇지 뭐!
모자를 벗었다, 썼다... 이등병이 확실하다.
어젯밤 먹은 삼겹살도 아직 소화가 덜 되었는데
또 삼겹살이다. 메뉴는 많아도 별 게 없다. 그리고 애가 그게 먹고싶다 하니...
옆에 앉아 익은 고기를 계속 애 접시로 나른다.
그저 이쁘기만한 내 아들,
많이 먹어라!
기념 촬영
얼굴이 좀 풀린 거 같다.
배가 부르니 잠이 오는가 보다.
30여년 전, 3년간이나 썼던 군모
이등병 시절은 생각도 안 난다.
뭘 했는지..., 무슨 생각들을 주로 했는지..., 이리저리 끌려다니다 끝난 거 같다.
당시 내가 근무한 곳은 여기보다 조금 북쪽인 파주, 연천 그 일대다.
사단 구역에 북한('북괴'라 했다)의 땅굴이 발견되고,
10.26(중정부장 김재규의 박정희 대통령 암살사건)에, 12.12(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에 의한 정권 탈취)가 터지고
5.18광주사태(당시엔 '광주민주화운동'이란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에 이르기까지,
말년(제대 3개월 전쯤일 게다)엔 북쪽의 무장공비까지 내려와
전방 수 개 사단을 휘저어놓고(매일밤 논두렁 아래 은폐비트를 파고 그 속에서 밤새 보초를 서야 했다) 탄약고에서 훔친 대전차지뢰로
철조망을 폭파한 뒤 유유히 올라가 버린 사건까지
일촉즉발,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는 엄혹한 세월이었다.
그럼에도 남자라면 주어진 군 생활은 꼭 해야한다!고 강변하는 것은
어찌되었던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이고, 무상의 애국심을 가져볼 귀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제대 후엔
나라보다, 단체보다, 옆사람보다 더욱 더 철저한 개인주의로 살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냉혹한 세상이 엄연한 현실이다.
더러는 국가간 스포츠 시합 등에서 전 국민이 한마음으로 응원하는 걸 대단한 '애국심'이라 칭하는데
솔직히 그건 자신의 카타르시스를 위해 흥분한 것일 뿐이고, 또 그런 광란의 스트레스 해소일 뿐이다.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또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솔직히 지금은 우리 때처럼 무조건의, 막무가내의 세월이야 아니질 않겠는가?
아들이 입대하기 전 쓰둔 시를 붙여 본다.
(바로 위 내용들이지만...)
입대하는 아들에게
아들이 군에 간다는 소리에 아내는 벌써 한 달째 전전긍긍이다 사내자식이 군에 가는 일이 무슨 대수냐는 내 말에 배신감마저 느낀다며 아예 날 버려 두고 아들을 따라 입대해버릴 태세인데 저 펄펄 끓는 피에 무슨 보약이 필요하다고 불필요한 예방주사는 또 왜 맞히는지 예비 안경에다 비상금 주머니까지 한마디로 나날 완전군장을 꾸리고 있다 아내는 지금 사선으로 나서는 아들을 엄호하기 위한 5분대기조가 된 비장한 모습이다 그 설레발에 아들도 나날 긴장감이 더해 가는 모습이 역력한데
30년 전, 더플백을 푼 바로 우리 사단에 적의 땅굴이 발견되고, 대통령이 부하의 총에 서거하고, 탱크를 앞세운 신 군부가 서울로 진격하고, 정권을 물려받은 새 대통령이 곧바로 하야하고, 신 군부 수장이 체육관대통령으로 등극하고, 부마사태에다 피의 광주사태가 연달아 터지고, 그 와중에 또 땅굴이 발견되고, 북에서 내려온 무장공비가 전방을 휩쓸고 탄약고에서 대전차지뢰를 훔쳐 철책선을 폭파하여 유유히 북으로 올라가 버린 사태까지 제대하는 날까지 잠잠할 날이 없었던 일촉즉발의 숨막히는 3년을 보내고 나온 내가
아들에게 충고해줄 말은 남자라면 다 가는 군대, 너무 긴장해서도, 너무 긴장하지 않아도 사고나기 십상인 그곳이니 당당하고 침착하게 임하라는 말!
한마디 더 덧붙이자면 네 자식이 군에 갈 즈음엔 이미 통일이 되어 아빠의 이런 충고가 필요하지 않았음 하는 희망사항을!
(2009.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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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아직도 기억한다. 1291***1......
귀대 시간이 가까워 마지막 찍은 사진.
몸 성히 잘 근무해라!
애를 귀대시키고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동대문에 도착
애 엄마 옷이나 하나 사줄 참인데...
밤 날씨가 장난이 아니다.
하룻밤 묵을 방부터 잡고
양평보단 훨씬 깔끔하고 청결하다.
동대문 시장 일대를
밤새
돌고돌아
겨우 아내의 밍크 목도리 하날 사고
다음날 아침, 늦도록 자고
울산행 열차 안
아 그래, 내건 이 모자 하나(단돈 만원)...
사진 촬영 & 편집 : 정소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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